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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불꽃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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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이것은 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천신(天神)이 시켜서 그런 것이다.” 일본 사신이 조선의 군기감이 선보인 불꽃놀이에 놀라 이렇게 말했다는 조선왕조실록(정종 1년, 1399년) 기록이다. 불꽃놀이 원조는 중국이다. 7세기 초 원시적인 불꽃(연화)이 있었고, 9세기 화약제조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불꽃놀이를 고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에 불꽃놀이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태종 때부터는 화약을 이용한 불꽃놀이가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누구보다 불꽃놀이를 즐긴 건 조선 성종이었다. 성종 8년(1477년) 궁중 후원에서 열던 불꽃놀이에서 네 명이나 죽는 사고가 났다. 대사헌 이계손 등이 “관화(觀火)는 놀이”라며 불꽃놀이를 정지하라 청했으나 성종은 “군무(軍務)에 관계되는 일”이라며 들어주지 않는다.

성종 21년(1490년), 신하들은 또다시 불꽃놀이가 소모적인 일이라며 그만두라 건의한다. 성종은 유희에 가깝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군대와 나라의 중대한 일”이며 “재앙을 없애고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라며 거절한다. 성종 22년(1491년), 성종 24년(1493년)에도 신하들이 재차 불꽃놀이를 없애라 건의했으나 성종은 강행했다.

성종의 핑계처럼 불꽃놀이는 질병과 재액을 쫓는 벽사와 정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더불어 군사 기술, 화학의 발전과 궤를 나란히 한다. 세종실록 13년(1431년) 기사에는 재상 허조가 “불 쏘는 것의 맹렬함이 중국보다 나으니 명나라 사신에게 불꽃놀이를 보여줘서는 안 된다”고 아뢰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에 화약 제조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해안지역 수령들이 화약을 굽지 못하게(세종 8년, 1426년) 하기도 한다. 불꽃놀이는 반대로 군사 기술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사신들을 불러 불꽃놀이를 구경시켰다는 실록 기사도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세계 불꽃축제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에서 3년 만에 열렸다. 주최 측인 한화는 한풀이하듯 화려한 불꽃을 선보였다. 이튿날 새벽, 북한은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두 발을 동해상으로 쐈다. 화약은 살상 도구가 될 수도, 사람들을 위무해주는 예술이 될 수도 있다. 불꽃놀이로 재액과 질병이 썩 물러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