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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공격 훈련, 김정은 직접 지휘했다…한·미에 최고수위 협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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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미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핵무기 고도화 의지를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0일 김 위원장이 ‘전술핵 운용 부대’의 군사 훈련을 참관하면서 "최강의 핵대응태세를 유지하며 핵 전투 능력을 백방으로 강화하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또 한ㆍ미를 적으로 규정하며 "적(敵)들과 대화할 내용도 필요성도 없다"고도 했다.

북한이 ‘전술핵 부대’의 존재를 관영 매체를 통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핵무기 관련 훈련을 김 위원장이 직접 지휘한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는 점에서, 북한이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부각하며 한·미를 향한 협박의 수위를 최고조로 높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조선인민군 전선 장거리포병구분대들과 공군 비행대들의 화력 타격 훈련이 10월6일과 8일에 진행되었다"라고 전했다. 훈련을 지휘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전쟁준비태세 및 군사적 대응능력 강화는 필수불가결한 요구"라고 말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조선인민군 전선 장거리포병구분대들과 공군 비행대들의 화력 타격 훈련이 10월6일과 8일에 진행되었다"라고 전했다. 훈련을 지휘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전쟁준비태세 및 군사적 대응능력 강화는 필수불가결한 요구"라고 말했다. 노동신문. 뉴스1.

"핵 전쟁 주도권 쟁취"

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9일까지 전술핵 관련 훈련을 현장 지휘했다. 한·미·일이 동해상에서 진행한 합동 훈련에 대한 맞대응 성격의 도발이다. 훈련을 직접 지휘한 김 위원장은 "이번에 진행한 실전훈련들을 통해 임의의 전술핵 운용 부대들에도 전쟁 억제와 전쟁 주도권 쟁취의 막중한 군사적임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확신을 더욱 확고히 가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는 북한이 지난달 9일 법에 명시한 '핵 버튼'을 누를 수 있는 다섯 가지 조건 중 하나인 '유사시 전쟁 주도권 장악'과 맥을 같이하는 말이다. 이번 훈련이 단순한 억제를 넘어 정세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술핵의 선제적 사용까지 염두에 두고 실시됐음을 강조한 말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특히 "핵 전투 무력이 전쟁 억제력의 중대한 사명을 지닌데 맞게 임의의 시각, 불의의 정황 하에서도 신속 정확한 작전반응능력과 핵정황 대응 태세를 고도로 견지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달 25일부터 보름간 이틀에 한 번꼴인 7차례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무기의 종류와 발사 위치, 발사 시간 등을 바꿔가며 도발을 지속했다. 김 위원장의 주장은 이러한 방식의 연쇄 도발을 감행한 이유가 자유자재로 대남 핵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강조한 의미로 해석된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향후 핵 사용의 문턱을 대폭 낮추겠다는 도발적인 의미일 뿐 아니라 미국을 향해 이제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비핵화 협상이 아닌 군축 협상을 고려해야 한다는 공세적인 주장을 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북한은 노동당 창건 기념일(10월 10일ㆍ쌍십절)인 이날 보도를 통해 최근 보름 사이 감행했던 7차례 무력 시위의 일정을 비교적 상세히 공개하며, 사실상 한반도 전역과 미국의 군사 자산을 겨냥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9일까지 발사 장소와 시각을 달리 하며 6차례에 걸쳐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했고, 5년만에 처음으로 일본 상공을 넘어 태평양까지 향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쐈다. 각각 한반도 일대와 미군의 태평양 괌 기지 등을 목표로 한 도발로 풀이된다.

이설주 여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지난달 29일부터 보름간 진행된 전술핵운용부대 군사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이설주 여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지난달 29일부터 보름간 진행된 전술핵운용부대 군사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한ㆍ미 탓하며 대화 차단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사실상 선제 핵공격까지 전제한 이번 훈련을 강행한 이유를 끝까지 '한ㆍ미의 탓'으로 돌렸다. 그는 "지금 이 시각도 적들의 분주한 군사적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며 "미국과 남조선정권의 지속적이고 의도적이며 무책임한 정세 격화 행동은 부득불 우리의 더 큰 반응을 유발시키게 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달 23일 미 핵항모 '로널드 레이건호'가 부산에 입항해 한ㆍ미, 한ㆍ미ㆍ일 연합 해상훈련을 하는 내내 북한이 실시했던 비난과 맞춤형 도발이 김 위원장의 직접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당시 북한의 외무성, 국가항공총국, 국방성은 릴레이 입장을 내고 연합 훈련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대화와 협상에 대해서도 명확한 거부 의사를 피력했다. "적들이 군사적위협을 가해오는 속에서도 여전히 계속 대화와 협상을 운운하고 있지만, 우리는 적들과 대화할 내용도 없고 또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면서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절대로 먼저 핵 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밝혔지만, "대화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는 표현은 이보다 더 명확한 거부 의사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에 호응할 의사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1년 전인 지난해 쌍십절(10월 10일)에 "우리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며 한·미를 주적으로 명시하는 데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태도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최근 한ㆍ미 연합훈련 등 확장억제 강화, 지난해 한ㆍ미 미사일 지침 해제 이후 한국의 전력 증강 등 일련의 상황에 대해 북한 내부의 초조함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김정은 총비서의 지도 하에 전술핵운용부대들의 군사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김정은 총비서의 지도 하에 전술핵운용부대들의 군사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핵 부대' 언급 처음

북한 매체는 이날 김 위원장의 발언과 함께 최근 보름 간 무력 시위의 사진과 무기의 제원 등을 상세히 공개했다. 지난달 25일 첫 도발에 대해선 "서북부 저수지수중발사장에서 전술핵 탄두 탑재를 모의한 탄도 미사일 발사 훈련이 있었다"며 "훈련의 목적은 전술핵 탄두 반출 및 운반, 탄도미사일 발사능력 숙련 등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4일에는 "신형 지상 대 지상 중장거리 탄도미사일로 일본 열도를 가로질러 4500㎞계선 태평양상의 설정된 목표수역을 타격하도록 했다"고 밝혔고, 6일에는 "초대형 방사포와 전술 탄도 미사일 명중 타격 훈련이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정부는 특히 북한 매체가 '전술핵 운용 부대'를 직접 언급한 건 사실상 처음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은 앞서 6월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전선(전방) 부대들의 작전 임무 추가와 작전 계획 수정을 논의했다"고 밝혔는데, 이때부터 소형 핵탄두를 탑재한 신형 전술유도무기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최전방 부대에 쓰기로 작전 계획을 세운 뒤 실제 실행에 옮겼다는 지적이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은 단거리미사일과 전술핵을 결합하여 배치할 계획을 이미 세우고 언제 할지 타이밍을 재고 있었던 셈"이라며 "한ㆍ미, 한ㆍ미ㆍ일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는 이런 훈련을 위한 명분이고 정당화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북한은 이날 미사일 발사 및 전술핵 운용 부대 훈련 관련 보도를 대외용 조선중앙통신과 대내용 노동신문에 모두 실었다. 미사일을 쏘고도 관영 매체에서 사후 보도를 생략하던 지난 5월부터의 관행을 깬 셈이다. 이에 대해선 국경 봉쇄와 만성적인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이 쌍십절을 맞아 내부 결집 수단이 필요했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0일 보도한 당 창건 기념일 77주년을 경축 선전판.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0일 보도한 당 창건 기념일 77주년을 경축 선전판.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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