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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사준 PC...시골소년이 '화이트해커' 수사 넘버1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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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몸캠피싱 피해자가 200만원을 보냈다는 계좌를 추적하던 5년 차 수사관에게 수상한 계좌가 포착됐다. 27개 계좌에서 입금된 피해금 총 55억여원이 하나로 모인 계좌였다. “팀장님. 범행자금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계좌 같은데요.” 이 돈은 다시 59개의 인출계좌로 분산됐다. 인출책의 동선을 쫓던 수사팀은  범죄조직 은신처를 특정해내고 잠복수사에 돌입했다. 지난 2018년 7월 강원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팀이 몸캠피싱과 조건만남 사기 등으로 3700여명에게서 55억원을 뜯어낸 중국조직을 일망타진한 사건이다. 인출책뿐만 아니라 국내 자금관리책과 대포통장 모집책 등 6명을 한꺼번에 구속한 것은 드문 사례다.

지난 6일 강원도 춘천 강원경찰청에서 만난 사이버테러수사팀의 최봉철 경사. 위문희 기자

지난 6일 강원도 춘천 강원경찰청에서 만난 사이버테러수사팀의 최봉철 경사. 위문희 기자

제2회 폴-사이버 챌린지 ‘대상’ 수상

당시 수사팀에서 계좌분석과 통신추적을 담당했던 수사관이 최봉철(38) 강원청 사이버테러수사팀 경사다. 그는 지난달 2일 경찰청이 주최한 ‘2022 폴-사이버 챌린지’에 김동현 경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 연구사(34)와 2인조 팀으로 출전해 1등(대상)을 차지했다. 올해로 2회째인 폴-사이버 챌린지는 사이버공간상에서 범죄자를 추적하고 검거하는 역량을 겨루는 대회다. ‘화이트 해커’와 비슷한 개념이다. 지난 6일 강원도 춘천 강원청에서 만난 최 경사는 4년이 흘렀지만 ‘몸캠피싱’ 사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사이버범죄 수사로 꼽았다. 그는 “아무리 사이버 추적기법이 뛰어나도 현장 수사와 접목되지 않는다면 범죄자 검거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며 “다른 수사관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적법한 수사 절차를 숙지하고 있어야 증거물 확보도, 범인 검거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7월 강원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팀에 검거된 몸캠피싱 사기 조직과 피해자 간 대화 내용. 중앙포토

지난 2018년 7월 강원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팀에 검거된 몸캠피싱 사기 조직과 피해자 간 대화 내용. 중앙포토

시골에서 살았지만, 컴퓨터 사준 경찰관 아버지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2010년 강원대 컴퓨터과학과를 졸업한 최 경사는 2013년 사이버수사 경력 채용(경장)으로 경찰에 입직했다. 그가 처음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초등학교 4학년이던 11살 때였다. 강원도 춘천, 인제, 양구 등지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한 아버지가 컴퓨터 한 대를 사준 것이다. 최 경사는 “어렸을 때 주로 시골에서 살다 보니 아버지께서 ‘이런 것도 접해보라’며 그때 기준으로도 상당히 비싼 컴퓨터를 사주셨다”고 떠올렸다. 처음엔 PC통신이 재밌고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연구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서 컴퓨터 동아리 활동을 하며 C언어를 접하게 됐다. 2003년 대학교 신입생 땐 4학년 선배와 의기투합해 정보보호 동아리를 창단하고 프로그래밍 전반과 리눅스로 관심사를 넓혀갔다.

최 경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엔 경기도 분당의 한 정보보호 업체에서 근무했다. 그곳의 침해사고대응팀(Computer Emergency Response Team·CERT)에 있으면서 침해사고 분석과 보안솔루션 실무 업무를 익혔다. 최 경사는 현재 강원청에서 해킹, 악성코드 유포,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과 같은 사이버테러형범죄를 담당하고 있다. 사이버범죄는 관할이 없어 어느 지방경찰청이든 첩보가 있으면 발생 사건뿐만 아니라 인지 수사에 나설 수 있다. 최 경사는 2005년 전문수사관 제도가 도입된 이래 총 16개 사이버수사 분야 중 해킹(2017년), 사이버도박(2019년), 악성코드(2021년) 등 3개 분야에서 전문수사관 인증을 받았다. 해당 사건 담당 경력과 피의자 검거 숫자가 충분해야 발급되는 자격이다.

지난해 국정원 주최 대회에서도 4위 입상 

최 경사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성적에 얽매이지 않고 각종 사이버대회에 참가한다고 했다. “사이버테러 수사 분야는 다양한 침해사고 상황과 해킹 및 악성코드에 대해 경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국가정보원이 주최한 ‘사이버공격방어대회’에도 김동현 연구사와 한팀으로 출전해 본선에서 4위를 차지하고 특별상을 받았다. 이 대회는 국가·공공기관 담당자 등을 대상으로 열리는 국내 최대규모의 사이버보안대회다. 최 경사는 “한번 잘못된 함정에 빠지면 시간 내에 문제를 못 풀 수 있다. 쉬운 문제 3개보다 어려운 문제 1개를 해결하는 식의 전략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대회 참가의 즐거움을 설명했다.

내년이면 10년 차 수사관이 되는 최 경사는 “다양한 사건들을 접할수록 업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보다 오히려 자중하고 신중하게 된다”면서도 “사이버범죄 수법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만큼 개인적으로 사이버 추적기술을 발전시키고 미래에는 사이버범죄를 당하는 국민이 없도록 범죄 예방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6일 강원도 춘천 강원경찰청에서 만난 사이버테러수사팀의 최봉철 경사. 위문희 기자

지난 6일 강원도 춘천 강원경찰청에서 만난 사이버테러수사팀의 최봉철 경사. 위문희 기자

“아무리 해킹 실력 뛰어나도 정보통신 윤리 가장 중요”

최 경사에게 종종 ‘사이버수사관은 어떻게 되나요’라고 물어오는 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해킹이나 악성 프로그램 공격으로 경찰에 입건 돼 어린 나이에 피의자 신분으로 최 경사를 마주친 이들이다. “정보통신 윤리가 제일 중요하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잘못된 쪽으로 빠지면 안 된다”는 게 최 경사가 들려주는 말이다. 최 경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재택 수업과 원격 교육이 실시되면서 학생들 혼자 컴퓨터 하는 환경에 노출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며 “어른들이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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