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컵 분실하고 가짜 금메달 저주…사연 많은 아시안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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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호 26면

[스포츠 오디세이] 2023 아시안컵 유치 총력전

1960년 제 2회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한국 선수들이 김용식 감독(왼쪽 둘째)을 선두로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사진 박경화]

1960년 제 2회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한국 선수들이 김용식 감독(왼쪽 둘째)을 선두로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사진 박경화]

2012년 1월 어느 날, 나는 서울 공릉동 태릉선수촌 내 국제스케이트장에서 취재원을 만나고 있었다. 이 건물 2층에는 한국체육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재미삼아 박물관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던 나는 한 귀퉁이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은제 트로피를 발견했다. 크기도 작은 데다 아무런 설명도 없고, 산화와 부식 작용 때문에 더욱 볼품이 없는 그 트로피를 한참 들여다봤다. 그런데 희미하게 ‘ASIAN CUP’과 ‘1956’이라고 쓴 글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혹시?’ 하는 직감이 스쳤다. 대한축구협회가 1956년에 열린 제 1회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잃어버려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이었던 나는 축구담당 기자에게 꼼꼼하게 취재해 보라고 지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축구협회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초대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였다.

이란과 5회 연속 8강서 대결 진기록

제1회 아시안컵 우승 기념사진. 작은 트로피가 분실 소동 끝에 되찾은 것이다. [중앙포토]

제1회 아시안컵 우승 기념사진. 작은 트로피가 분실 소동 끝에 되찾은 것이다. [중앙포토]

더욱 기가 막힌 건 축구협회가 대한체육회에 이 트로피를 기증하고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박물관 관계자는 “1985년에 대한체육회가 ‘뿌리 찾기’ 캠페인을 벌이면서 축구협회로부터 56년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기증받았고, 박물관이 문을 연 2000년부터 줄곧 전시했다”고 말했다.

엄밀히 말해 이 트로피는 1956년 홍콩에서 우리 선수들이 들어 올렸던 그 ‘아시안컵’은 아니다. AFC는 우승컵을 영구 보존하지 못하게 했다. 대신 실물보다 작지만 모양은 같은 순은(銀) 컵을 만들어 우승팀에 수여했다. 한국체육박물관에 있던 트로피는 당시 선수 중 한 명이 받은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스토리는 2012년 1월 18일자 중앙일보 단독 보도 〈애타게 찾던 1956년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 눈앞에 있었네〉로 세상에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3개월 뒤 이 트로피를 국가등록문화재 493호로 지정했다.

안타까운 건 1960년 제 2회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우승컵조차 제대로 보관, 관리하지 못하는 ‘아시아의 호랑이’에 화가 났는지 이후 63년 세월 동안 아시안컵은 대한민국에 한 번도 안기지 않았다.

제2회 아시안컵 우승 멤버들을 위해 2014년 축구협회가 제작한 순금 메달. [중앙포토]

제2회 아시안컵 우승 멤버들을 위해 2014년 축구협회가 제작한 순금 메달. [중앙포토]

2022년 가을, 대한민국은 또다시 아시안컵을 애타게 부르고 있다. 이번에는 아시안컵의 국내 개최를 위해서다. 1960년 이후 한국은 아시안컵을 개최한 적이 없다.

중국이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2023년 제 18회 아시안컵 개최권을 반납함으로써 한국이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현재는 한국과 카타르의 싸움으로 좁혀졌다. 올해 11월 2022 FIFA 월드컵을 개최하는 카타르는 월드컵 경기장과 분위기를 아시안컵에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게다가 바레인 출신 회장을 중심으로 AFC 집행부를 중동세가 장악하고 있다. 개최지는 10월 1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AFC 집행위원회(23명)에서 투표가 아닌 거수로 결정된다.

한국 정부는 ‘축구는 축제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스포츠와 K컬처가 융합된 축제로 아시안컵을 승화시켜 아시안컵의 지평을 넓히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과 아시안컵에 얽힌 흥미 넘치는 스토리텔링을 구축하고, 왜 아시안컵이 한국에서 열려야 하는지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아시안컵’ 스토리 라인을 풍성하게 해 줄 얘깃거리가 또 있다. 이른바 ‘가짜 금메달의 저주’다.

역대 아시안컵 한국 성적표

역대 아시안컵 한국 성적표

한국은 1956년 초대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여세를 몰아 2회 대회 개최권을 확보했다. 이 대회를 위해 급히 지은 축구장이 서울 효창운동장이다. 지역예선을 거친 세 팀과 개최국이 리그전을 벌인 대회에서 한국은 남베트남·이스라엘·대만을 연파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조윤옥은 득점왕에 올랐다.

1회 대회 우승 멤버들은 순금 메달을 받았다. 2회 우승팀 선수들도 당연히 순금 메달을 받은 줄 알았는데 선수 한 명이 “진짜 순금인지 긁어보자”고 해서 도금한 메달인 게 드러났다. 분노한 선수들은 ‘아시아의 황금다리’ 최정민의 주도로 전원 메달을 반납했다.

이 사건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자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메달을 만든 금은방 주인은 “처음에 (축구협회에서) 순금 메달을 주문했는데 대금을 받고 보니 도금값 밖에 안 돼 그렇게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축구협회는 “돈이 없어서 그랬으니 다음에 순금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발뺌했지만, 집행부가 바뀌며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됐다.

그 때부터 ‘가짜 금메달의 저주’가 시작됐다.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동안 한국 축구는 아시안컵에서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급기야 축구협회는 축구 원로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2014년에 23개의 순금 메달을 제작해 생존자와 가족 등에게 전달했다. 그럼에도 아직 가짜 금메달의 저주는 깨지지 않고 있다.

한국 축구는 아시안컵에서 숱한 진기록과 징크스를 쌓아왔다. 가장 눈에 띄는 기록은 숙적 이란과 5회 연속 8강에서 만난 것이다.

첫 8강 대결은 1996년이었다. 전반 2-1로 앞선 한국은 후반 알리 다에이에게 4골을 얻어맞고 2-6으로 참패했다. 당시 박종환 감독의 강압적인 지도 방식에 불만을 품은 선수들이 태업을 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축구팬, 홈서 63년 저주 깨지길 희망

9월 27일 카메룬전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등장한 아시안컵 유치 기원 문구. [연합뉴스]

9월 27일 카메룬전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등장한 아시안컵 유치 기원 문구. [연합뉴스]

2000년에는 후반 종료 직전 수비수 김상식의 극적인 동점골로 연장에 들어간 뒤 이동국이 골든골을 터뜨려 2-1로 승리했다. 2004년에는 난타전 끝에 3-4로 졌고, 2007년에는 골키퍼 이운재의 활약에 힘입어 승부차기에서 이겼다. 2011년은 연장전에서 터진 윤빛가람의 환상적인 중거리 골로 1-0 승리를 거뒀다.

재미있는 건 한국과 이란, 어느 팀이 이겨서 올라가든 준결승에서는 반드시 졌다는 점이다. 아시아 축구 맹주의 자존심을 건 혈투 후유증이 그만큼 컸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징크스는 2007년 이후 토너먼트에서 한국을 꺾은 나라가 우승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아시안컵에서만은 ‘우승 도우미’가 됐다는 뜻이다. 2007년 이라크, 2011년 일본은 준결승에서 한국에 승부차기로 이긴 뒤 우승했다. 2015년 호주는 결승에서 한국을 꺾었고, 2019년 카타르는 8강에서 한국에 승리하고 우승까지 질주했다.

축구팬들은 “이번 생에서 우리가 아시안컵을 들어 올리는 걸 볼 수 있을까”라고 자조한다. 다시 찾은 초대 우승컵의 기운이 함께하고, 가짜 금메달의 저주가 풀리면 ‘63년간의 기다림’은 끝을 보게 될 것이다. 그 현장이 홈 경기장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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