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전격 감산…Fed, 긴축완화로 전환 더 멀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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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발(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다시 불이 붙을 태세다. 산유국이 원유 공급 밸브를 죄면서다. 물가를 들쑤실 ‘오일 쇼크’에 ‘닥치고 물가’를 외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노선 변화는 요원해졌다. 에너지 수입국인 한국도 직격탄을 맞게 됐다. 수입 물가가 뛰며 인플레 압력이 커질 수 있어서다. 정부가 주장했던 ‘10월 물가 정점론’도 무색해졌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23개국 산유국 연합체인 OPEC+는 5일(현지시간) 월례 장관급 회의를 연 뒤 낸 성명에서 다음 달 일일 원유 생산량을 이달보다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루 200만 배럴은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2%에 해당하는 양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감산 폭으로는 최대다. 경기 침체 우려 속 원유 수요 감소에 따른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한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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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감산량을 100만~200만 배럴로 예상했던 시장은 ‘오일 쇼크’에 빠졌다. 산유국이 가장 센 감산 카드를 내놨기 때문이다. 하향 곡선을 그리던 국제유가는 바로 반등했다. 감산 논의를 앞둔 지난 4일 서부텍사스유(WTI) 11월물은 전날보다 3.46% 뛴 배럴당 86.52달러에 마감했다. 감산 결정을 발표한 5일에는 1.43% 오른 배럴당 87.7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북해산 브렌트유는 100달러 선에 빠르게 다가가고 있다. 브렌트유 12월물은 지난 4일 전날보다 3.31% 오른 배럴당 91.80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5일(현지시간)에는 1.7% 더 오른 배럴당 93.37달러를 기록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미국은 비상이다.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 억제에 사활을 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감산 결정 직후 “근시안적인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바이든 정부가 국제유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물가의 흐름을 좌우할 주요 요인이라서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이 지난 6월(9.1%) 이후 7월(8.5%)과 8월(8.3%)에 연속 하락한 건 국제유가 하락의 영향이 컸다.

‘인플레와의 전쟁’ 중인 중앙은행의 계산은 더 복잡해지게 됐다. 국제유가가 인플레에 기름을 부어 물가가 재반등하면 Fed는 긴축 고삐를 더 죌 수밖에 없다. 마이클 에브리 라보뱅크 글로벌 전략가는 “경기 침체 위기로 수요가 줄자 감산을 통해 공급을 줄이면서 국제유가가 더 뛰는 이상 ‘Fed 피벗(Pivot·노선 선회)’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Fed 인사의 목소리도 강경하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5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인플레 억제에 단호하게 나설 것”이라면서 “시장의 금리 인하 전망이 현실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주장해 온 ‘10월 물가 정점론’도 무색해질 전망이다. 지난달 CPI 상승률이 5.6%를 기록하며, 7월(6.3%) 이후 둔화해 ‘피크 아웃’(정점 통과)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지만 국제유가 상승으로 수입 물가가 뛰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원유 가격이 상승하면 에너지 수입국인 한국의 무역적자가 확대될 뿐만 아니라 수입 물가를 밀어 올려 물가 상승 압력도 커진다”며 “여기에 미국의 긴축 완화도 기대할 수 없게 된 만큼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에 속도를 더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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