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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감산 뒤통수 맞은 미국 “사우디가 러시아 선택”…베네수엘라 제재 풀어 석유 공급 확대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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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동과 미국이 글로벌 석유 공급량을 놓고 힘겨루기에 나섰다.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등 23개 산유국이 지난 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 회의에서 다음 달부터 하루 최대 200만 배럴 감산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최대 감산 폭이다.

미국은 다음 달 1000만 배럴의 전략 비축유를 추가로 방출하고 베네수엘라 석유 수출 제재를 해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로선 석유 공급 부족에 따른 인플레이션 심화 우려를 좌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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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행정부가 그간 베네수엘라에 가했던 제재를 완화해 미 석유 기업 셰브런의 현지 석유 생산·수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에 대한 대가로 2024년 대선에서 공정한 선거를 치르기 위해 야당과 대화를 재개할 예정이다.

베네수엘라는 1990년대 하루 최대 320만 배럴을 생산한 주요 산유국이었지만, 최근 10여 년간 투자 부족과 관리 부실로 인해 석유산업이 붕괴하다시피 했다. 베네수엘라는 하루 45만 배럴을 생산 중이며, 이는 OPEC+ 생산량의 약 1%에 해당한다.

셰브런이 다시 생산을 주도하고 미국 정부가 수출을 승인하면 베네수엘라는 수개월 내 원유 공급량을 두 배로 늘려 2000년대 초반의 석유시장 영향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WSJ는 관측했다. 미국·베네수엘라 간 협의는 이달 말 구체적 성과가 있을 전망이다. 프란시스코 모날디 미국 라이스대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혼란을 겪는 가운데 베네수엘라를 끌어들이는 전략은 새로운 에너지 공급원을 확보하려는 미국과 유럽에 장기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은 OPEC+의 근시안적 감산 결정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번 발표로 OPEC+가 러시아와 협력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OPEC+의 감산 조치로 러시아는 원유 가격 상승을 등에 업고 전쟁 자금 조달이 손쉬워진 반면 인플레이션, 경기 부진과 씨름 중인 미국·유럽은 심각한 에너지 비용 상승에 직면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에너지애스펙트의 암리타 센 수석 애널리스트는 뉴욕타임스(NYT)에 “OPEC+의 감산 결정은 매우 정치적”이라며 “EU의 원유 가격 상한제에 대한 OPEC+의 불만을 보여주는 분명한 신호”라고 말했다. 컨설팅업체 엔베루스의 빌 파렌 프라이스 분석가는 “사우디는 석유 시장 관리라는 명목으로 러시아 편을 들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감산 소식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중간 선거에 전력 중인 미국 민주당에도 악재다. NYT에 따르면 네바다주·오리건주·알래스카주 등은 지난 1주간 기름값이 갤런당 최소 40센트 올랐다.

톰 말리노프스키 민주당 하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감산은 적대 행위”라면서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미군과 미사일방어시스템을 철수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의원은 CNBC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사실상 미국 대신 러시아를 선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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