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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은 기본, 월급루팡·내로남불…별의별 '오피스 빌런' 처단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공기업 직원 A씨는 자신보다 어린 여성 B씨가 상급자로 있는 것에 대해 회사 내에서 공공연하게 불만을 표시해왔다. 다른 직원이 있는 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을 하는가 하면, B씨를 빼고 단체 메신저 방을 만들고 업무를 공유하며 사실상 B씨를 따돌렸다. 그는 자신보다 13살 어린 남성 신입직원 C씨에게도 성적 수치심을 느낄 질문을 하고, C씨가 답변을 피하면 욕설을 했다. 회식자리에서 만취해 C씨 목을 조르거나 때리고, 도박사이트를 개설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업무처리와 관련해선 C씨를 심하게 질책하거나 고압적으로 말했다.

문제가 커지자 해당 공기업은 A씨를 면직 처분했고, A씨는 조치가 과도하다며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법정에서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진 일이었고, 10년간 성실하게 근무했다“는 점을 내세워 해고조치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울산지법 민사11부는 지난달 A씨의 언행이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사진: 고용노동부 일생활균형

사진: 고용노동부 일생활균형

정도는 다르지만, 어느 회사에서나 조직과 동료에게 피해를 주는 문제 직원이 있다. 5일 취업ㆍ인사관리 전문기업 인크루트에 따르면 이런 직원을 요즘 ‘오피스 빌런’이라고 부른다. 사무실(Office)과 히어로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인 빌런(Villan)을 합친 신조어다.

가장 심각한 오피스 빌런은 A씨처럼 부적절한 언행이나 갑질행태를 일삼는 상사ㆍ동료가 꼽힌다. 지속적으로 동료나 부하 직원을 못살게 굴고 업무를 방해하는 오피스 빌런도 있다. 이런 직원은 주변 동료에게 상처를 주고, 기업 인사운영을 어렵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법적 책임 문제까지 야기한다는 점에서 조직 내 관리 대상 1순위로 꼽힌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는 “사회적 문제로 비화하는 수준의 오피스 빌런은 드물지만, 수가 적다고 가볍게 보면 안 된다‘”며 “회사를 나간 뒤에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 행위를 회사 탓으로 돌리면서 회사와 동료 직원들을 고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이어 “회사는 제보가 접수되면 우선 충실하게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절차를 지키면서 조사ㆍ조치에 나서야 한다”며 “회사의 조치는 사내 다른 직원들의 지지를 얻어야 하며, 한번 결정한 대응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관철해야 추가적인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내로남불’형 직원도 대표적인 오피스 빌런으로 분류된다. 프로젝트나 성과가 잘 나오면 공을 자기에게 돌리고, 결과가 미진하면 나오면 ‘남 탓’으로 책임을 다른 이에게 뒤집어씌운다. 회사에서 일은 제대로 안 하고 실적도 못 내는데, 월급은 따박따박 받아가는 ‘월급 루팡(도둑)’형도 주요 유형으로 꼽혔다. 이밖에 ▶자신이 직접 검색하면 되는 내용을 굳이 남에게 물어보는 등 사소한 것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핑거 프린세스’(손가락 공주님)형 ▶무리한 업무 요청ㆍ협조를 남발하는 ‘내일은 네일’형 ▶업무보다 사내연애, 이성 탐색에만 관심을 쏟는 ‘하트 시그널’형도 사내에서 기피하는 유형이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차기 대한경영학회장)는 이에 대해 “일종의 ‘무임승차자’ 직원 때문에 조직 운영에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며 “상벌 체계를 확실히 하고 성과 중심의 보상체계를 구축해 이들을 걸러내는 것이 원론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어 “직원들이 회사 인사팀 등과 언제든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소통 창구를 마련하고, 위계적일 조직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는 것이 오피스 빌런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직접적인 피해 강도는 약하지만, 달라진 근무환경에 맞춰 새롭게 등장한 오피스 빌런 유형도 있다. 비대면 업무가 일상화하면서 ‘재택근무 유령’형(재택근무를 하면서 메신저ㆍ전화통화 등 연락 두절), ‘화상회의 민폐’형(회의 참여 지각, 과도한 소음, 잠옷 착용 등으로 민폐) 등이 나타났다. 얻어먹기만 하고, 본인은 밥을 사지 않는 ‘짠돌ㆍ짠순이’형, 지나친 노출이나 파격적인 패션으로 눈 둘 곳을 잃게 만드는 ‘패션 테러리스트’형도 불쾌감을 유발하는 유형으로 분류됐다. 과거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고, 훈수를 두는 ‘라떼이즈홀스’(나 때는 말이야)형은 요즘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꼰대 상사’의 전형이다.

이런 오피스 빌런은 최근 기업의 인사ㆍ노무관리에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그대로 뒀다간 회사 분위기를 흐리고, 조직 성과에 발목을 잡으며, 기업 이미지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변화한 사회 분위기에 맞춰 주요 기업이 괴롭힘이나 조직 내 질서 훼손 등에 과거보다 강도 높은 인사 조처를 단행하면서 이에 반발하는 극단적 ‘오피스 빌런’과 법적 분쟁을 벌이는 경우도 늘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이 오는 7일 ‘오피스 빌런 대응법’을 주제로 준비한 웨비나에는 회사 인사ㆍ노무 담당자 등 2000명 이상이 참석을 신청하기도 했다.

정연우 인크루트 홍보팀장은 ”각종 연구를 보면 오피스 빌런을 방치할 경우 다른 직원에게 전염되는 식으로 회사 내 부정적 행동이 늘게 되고, 유능한 직원의 퇴사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이어 “오피스 빌런을 물리치는 ‘오피스 히어로’로 역할은 회사가 해야 한다”며 “사내 교육ㆍ캠페인ㆍ면담 등 예방적인 조치를 강화하고, 사고 발생 시 이를 해결할 인사 조치나 법률 자문도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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