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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삼킨 횡성 산사태…“태양광 패널타고 빗물 쏠려 붕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난 8월 9일 집중호우가 내린 강원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주택 한 채를 덮쳐 70대 노인이 숨졌다. 당시 산사태 현장 위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모습. [연합뉴스]

지난 8월 9일 집중호우가 내린 강원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주택 한 채를 덮쳐 70대 노인이 숨졌다. 당시 산사태 현장 위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모습. [연합뉴스]

지난 8월 집중호우 때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70대 노인이 매몰돼 숨진 가운데 300㎜가 넘는 많은 강우량에 더해 무분별한 산지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가 산사태의 주요 원인일 수 있다는 산림청 조사결과가 나왔다.

4일 국민의힘 전봉민 의원이 산림청으로부터 받은 ‘횡성 둔내사면 붕괴지 원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산사태가 발생하기 하루 전인 지난 8월 8일부터 사고 당일인 9일 낮 12시까지 횡성 지역엔 272.5㎜의 많은 비가 내렸다. 또 2주 전부터 내린 비의 양(선행 강우량)도 97.5㎜로 적지 않았다. 단기간에 370㎜의 집중호우가 내린 것이다.

산사태 발생 지역인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 일대에는 3년 전 2만㎡ 부지에 태양광 패널 200여 개가 들어섰다. 문제는 많은 양의 빗물이 비스듬한 태양광 패널을 타고 한쪽 경사면 쪽으로 유입됐다는 점이다. 산림청 조사단은 이 경사면을 산사태 발생 위치로 보고 있다. 조사단은 경사면에 집중된 빗물로 상층부 지반이 하중을 이기지 못해 붕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태양광 시설 중심부엔 배수로가 ‘일자’로 길게 설치돼 있었으나 일부 토사가 쌓여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조사단 설명이다.

또 애초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는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부터 지반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였다. 당시 벌채를 하고 뿌리를 뽑은 뒤 흙을 쌓는 성토, 지반 다지기를 거쳐 공사 용지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어 콘크리트 블록을 쌓았는데 사고 조사 과정에서 기초공사에 쓰이는 말뚝은 확인되지 않았다. 지반이 튼튼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사가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횡성 산사태 피해면적은 0.96㏊다. 이 가운데 산림이 0.25㏊이고, 나머지 0.71㏊는 농경지 등이다. 피해 지역 폭은 20~40m, 길이는 310m에 달한다. 산사태가 나면서 마을 쪽으로 흘러내린 토사는 산 아래 A씨(71) 집을 덮쳤고, 그는 수색 4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반면 태양광 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은 주변 산지 경사면은 같은 강우량에도 붕괴하지 않았다. 조사단은 “소나무와 기타 활엽수 등이 자라고 있어 빗물 차단과 말뚝 설치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산림청은 횡성 산사태 조사 보고서를 통해 복구방안으로 산지 태양광 시설 하중(무게)을 분산하는 등 근본적인 지반 안정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태양광 시설 공사가 허술하게 진행된 곳은 실제로 산사태가 발생한 횡성뿐 아니다. 올 초 산림청이 산사태 위험성이 있는 산지 태양광 공사시설 320곳을 조사한 결과, 8곳을 제외한 312곳에서 보완사항이 지적됐다.

전봉민 의원은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산지 태양광 시설을 전수 조사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문제가 발견된 곳은 원상 복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등에 따른 산사태 위험성 등을 충분히 알고 있다”며 “전국에 설치돼 있는 태양광 시설의 안전 여부를 점검하고 산림청·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와도 긴밀히 협력해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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