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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원격진료 관련 법제화, 더 미뤄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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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

원격진료는 얼굴을 마주하는 대면 진료여야 한다. 비접촉이지 비대면이 아니다. 전화 진료와는 다르다. 지금의 기술력으로 화상을 통해 얼굴을 마주 보면서 다양한 진단 장비를 동원하는 원격진료를 이미 구현할 수 있다. 환자를 직접 마주하지 않고 진료하는 것처럼 표현되는 비대면 진료와 원격진료는 구분해 논의해야 한다.

원격진료는 기존 진찰행위의 미흡한 버전이 아니다. 기술 발전에 따라 등장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안전성·유효성·비용효과성 검증이 필요하다. 안전하거나 유효하지 않다면 국민을 대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비용효과적이지 않다면 건강보험이 수가(의료 서비스 비용)를 지불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의료계가 ‘원격진료 행위 가이드라인’을 정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 스스로 위험하지 않다고 결정한 것만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이것이 면허제도의 취지다. 아직 연구가 부족하지만, 근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술발전, 원격진료 앞당겨 구현
비접촉 진료지 비대면진료 아냐
민·관 합동 조직 만들어 논의하길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플랫폼 규제는 그다음 문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 ‘원격진료 플랫폼 업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플랫폼 업체의 허가나 신고 기준이 없으니 정확한 현황 파악도 안 돼 있다. 규제가 모호할 수밖에 없다. 원격진료에 대한 법적 정의가 없기 때문에 원격진료 플랫폼을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원격진료 플랫폼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규제하기 위해서라도 원격진료에 대한 법제화를 우선해야 한다.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미 원격진료 활성화가 대세다. 소비자들은 이미 집 앞 상가에 구매할 물건이 있는데도 퇴근길에 들르지 않는다. 집에 가서 스마트폰으로 주문한다. 동네 의원이 있으니 원격진료가 필요 없다는 논리로는 소비자를 설득하기 어렵다. 소비자들은 1차 의료로 원격진료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원격진료 의사가 검사해야 한다고 할 때만 병·의원에 가면 되기 때문이다. 원격진료가 도입된다면 관련 부가가치는 상상 이상이 될 것이다. 이동이 불편한 환자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고, 병원 직접 방문을 꺼리는 환자들에게는 적정한 시간에 진료를 제공할 수 있다. 중증으로 진단된 환자들은 대형병원 방문 없이도 2차 의견을 구할 수 있다. 지방 환자들이 서울에 오지 않고도 대형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미국의 MGH와 스탠퍼드 메디컬은 원격 2차 의견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시행 중이다. 의료 분야를 넘어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장애인 복지 시설과 노인요양 시설에서 발생하는 환자를 신속하게 진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격진료가 더 안전하게 정착하도록 하려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함께 시행해야 한다. 검사해야 할 환자를 병·의원에 보내지 않고 약을 처방하는 의사들에 대한 감시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는 환자들이 알 수 없으니 의사단체가 스스로 할 일이다. 정부가 권한을 더 적극적으로 의사단체에 넘겨줄 필요가 있다. 환자에게는 원격진료의 한계를 설명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원격진료가 모든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료 사고의 책임 문제 등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서양의학이 화학의 발전과 약의 등장으로 지금까지 진화해 왔다면, 앞으로 의학 발전은 정보기술(IT)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규제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원격진료, 그것을 통해 생산되는 데이터, 그리고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예측 시스템으로 세계 의학을 선도할 수 있다.

물론 의료계가 당장 수용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근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룰 일은 아니다. 할 수 있는 부분부터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차분히 근거를 만들어 가면 된다. ‘원격진료 근거창출 사업단’과 같은 민·관 합동 조직이 필요하다. 국회와 정부의 결단이 필수적이다. 의료계의 협력도 필수적이다. 누가 주도하든 더 적극적인 협력의 마당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미래가 더 빨리 왔다. 주춤거릴 시간이 없다. 역사적으로 이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