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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유발성 '불멸의 화학물' 검출…수돗물서 美기준치 최고 3500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수돗물 속에 든 미량의 과불화화합물도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수돗물 속에 든 미량의 과불화화합물도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국내 수돗물에서 사람에게 암을 유발할 수도 있는 유해물질인 과불화(過弗化) 화합물이 미국 기준치의 최고 3500배까지 검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과불화 화합물에 대한 국내 수돗물 기준은 없지만, 미국 환경보호국(EPA)이 지난 6월 제시한 새 환경 기준과 비교하면, 국내 대부분의 정수장 수돗물이 이 기준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불화 화합물은 분해가 잘 안 되어 '영원한 화학물질, '불멸의 화학물질'로 불린다.

분해 안 되는 '불멸의 화학물질' 

미국 미시간 주 워츠스미스 공군기지 인근에서 발견된 거품. 과불화화합물이 포함된 이 거품이 댐으로 유입되면서 문제가 됐다. 2018년 6월에 촬영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미국 미시간 주 워츠스미스 공군기지 인근에서 발견된 거품. 과불화화합물이 포함된 이 거품이 댐으로 유입되면서 문제가 됐다. 2018년 6월에 촬영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미 EPA는 지난 2016년 과불화 화합물 가운데 과불화 옥탄산(PFOA)과 과불화 옥탄설폰산(PFOS)에 대해 먹는 물 수질 기준으로 각각 L당 70ng(나노그램, 1ng=10억분의 1g), 즉 70 ppt (ppt=1조분의 1)로 정했다.

지난 6월 EPA는 "건강 영향 등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고려할 때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PFOA에 대해서는 0.004 ppt, PFOS에 대해서는 0.02 ppt의 잠정 기준치를 제시했다. 각각 기존 기준의 1만7500분의 1과 3500분의 1로 강화한 것이다.

미 EPA는 올 연말에 두 물질에 대한 음용수 기준을 정식으로 제안하고, 내년에 확정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기준치는 잠정 기준치보다 완화될 수도 있지만, 제시된 잠정 기준치가 대폭 강화된 탓에 기존 기준치보다는 크게 강화될 전망이다.

미 EPA는 "미국 내에서도 새 기준치가 기존 분석 방법으로 검출할 수 있는 한계보다 낮을 수도 있어 기준치가 바뀔 수 있다"면서도 "기준치가 최소 보고 수준(MRL)보다 높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량한계 미만이라고 해도 결코 안심할 수 없기 때문에 검출 가능한 최소 수준 자체를 바로 기준치로 삼겠다는 의미다.

55개 정수장 수돗물에서 검출

지난해 국립환경과학원이 전국 70곳의 정수장 수돗물을 분석한 결과, 최소한 55곳에서 과불화 화합물인 PFOA가 검출됐다. [중앙포토]

지난해 국립환경과학원이 전국 70곳의 정수장 수돗물을 분석한 결과, 최소한 55곳에서 과불화 화합물인 PFOA가 검출됐다. [중앙포토]

환경기준은 없지만, 국내에서도 수돗물의 PFOA와 PFOS를 감시 항목으로 정하고 오염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있고, 기존 미국 기준치 70 ppt를 적용하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해 말 내놓은 '수돗물 중 미(未)규제 미량 유해물질 관리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70개 정수장 수돗물에서 PFOA를 조사한 결과, 55곳(79%)에서 PFOA가 검출됐다. 15곳은 정량한계인 0.5 ppt 미만이었고, 정량한계 이상인 55곳에서는 0.5~14 ppt 농도로 검출됐다.

기존 미국 기준치 70 ppt를 초과한 곳은 없었지만, 검출된 곳은 모두 미국 잠정 기준치를 초과했다. 최고치인 14 ppt는 이 기준치의 3500배였다.

정량한계 미만일 경우는 오염물질이 검출됐더라도 의미 있는 수치가 아니라고 판단해 '불검출'로 표시하게 된다.
하지만 국내 정량한계 자체가 미국 잠정 기준치보다 크게 높아 정량한계 미만이라도 미국 잠정 기준치를 초과하는 PFOA가 존재할 가능성도 크다.

PFOS는 70곳 가운데 59곳에서 정량한계 0.05 ppt 미만으로 검출됐고, 11곳(16%)은 정량 한계를 웃돌았다.
검출된 농도는 1.1~15.6 ppt였고, 최고치인 15.6 ppt는 미국 잠정기준치 0.02 ppt의 780배에 이르렀다.

환경부는 본지에 구체적인 측정치는 공개했지만, 조사대상 정수장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방류수·하천에서도 검출돼

대구 금호강. 이곳에서는 과불화화합물의 일종인 PFOA가 높게 검출됐다. 뉴스1

대구 금호강. 이곳에서는 과불화화합물의 일종인 PFOA가 높게 검출됐다. 뉴스1

수돗물에서 PFOA와 PFOS가 검출된 것은 현재 국내 하천이나 오·폐수처리장 방류수에서도 이들 물질이 검출되기 때문이다.

한국환경공단이 발표한 '2021년도 잔류성 유기 오염물질 측정망 운영결과 보고서'를 보면 전국 36곳의 하천 조사지점 가운데 13곳(36%)에서 PFOA가 검출됐다. 대구 금호강에서는 42.8 ppt, 안성천 하굿둑에서는 46.8 ppt가 검출됐다.

PFOS는 30곳 중 4곳(11%)에서 검출됐고, 영산강 나주교에서 8.4 ppt, 안성천 하굿둑에서 7.1 ppt, 미호천(미호강)에서 7.6 ppt가 검출됐다.

환경공단은 보고서에서 수질 시료 분석의 정량한계는 PFOA가 1.12 ppt, PFOS는 0.937 ppt라고 밝혔다. 하천과 수돗물이란 차이는 있지만, 정량한계 자체가 각각 미국 잠정기준치의 280배와 47배에 이른다.

화재 진압용 소화제 속에도 과불화화합물이 들어 있다. [미 국립보건원(NIH)]

화재 진압용 소화제 속에도 과불화화합물이 들어 있다. [미 국립보건원(NIH)]

또, 환경부의 '낙동강 수계 산업단지 미량 유해물질 조사 및 인벤토리 체계 구축'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 하수·폐수처리장 방류수에서는 PFOA가 최대 906 ppt, PFOS는 최대 516 ppt가 검출됐다.

낙동강 물금취수장 상류에는 공공하수처리장 49곳과 공공폐수처리시설 40곳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각각 4곳만 조사한 결과다. 당시 조사에서 정량한계는 PFOA가 1.1 ppt, PFOS는 0.7 ppt였다.

오·폐수처리장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채 강으로 들어가서 강과 하천이 오염되고, 이로 인해 수돗물에서도 과불화 화합물이 검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수원수 오염되지 않도록 해야

경북 구미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물이 낙동강으로 합류하고 있다. 2018년 당시 낙동강과 수돗물에서 과불화 화합물이 검출돼 식수 불안 문제를 야기했다. 연합뉴스

경북 구미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물이 낙동강으로 합류하고 있다. 2018년 당시 낙동강과 수돗물에서 과불화 화합물이 검출돼 식수 불안 문제를 야기했다. 연합뉴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분석 방법을 개선하는 등 수돗물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또 수돗물에서 이들 물질이 검출되지 않도록 상수 원수 수질부터 개선하고, 이후 정수처리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수자원 통제위원회'는 현재도 수돗물 내 PFOA가 5.1 ppt 이상, PFOS가 6.5 ppt 이상이면 해당 지역 수자원 기관이 위원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캘리포니아 환경 건강 위험 평가국은 인간 신장암 데이터를 기반으로 PFOA에 대해서는 0.007 ppt, 간과 췌장 종양에 관한 동물 데이터를 기반으로 PFOS에 대해서는 1 ppt의 공중 보건 목표(PHG) 초안을 발표한 바 있다. 규제치는 아니고 공중 보건 보호를 위한 참고치 성격을 띠고 있다.

임희자 낙동강 네트워크 공동집행위원장은 "2018년 낙동강 수계 강물과 수돗물에서 처음 과불화 화합물이 검출됐는데, 당시에는 적용할 기준도 없다며 넘어갔고,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공장 폐수 등에 대한 배출허용 기준이 없다 보니 강이 무방비로 오염되고, 나중에 오염된 물을 정화해 수돗물을 만드느라 돈을 많이 들이는 상황"이라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공장 등에 대한 배출 규제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 경남 창원시 수돗물을 취수하는 낙동강 본포취수장 앞에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낙동강네트워크]

지난 7월 경남 창원시 수돗물을 취수하는 낙동강 본포취수장 앞에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낙동강네트워크]

아울러 정량한계 미만이라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고, 정밀 분석 방법 도입해서 정량한계를 낮추고 미량까지 검출해 시민의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세균 녹조 독소의 수돗물 검출 여부를 둘러싸고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논쟁에서도 정량한계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리기구 테플론 코팅 등에 사용돼

후라이 팬 코팅 등에 사용되는 과불화화합물의 일종인 PFOA의 분자 구조. [자료 미 국립보건원(NIH)]

후라이 팬 코팅 등에 사용되는 과불화화합물의 일종인 PFOA의 분자 구조. [자료 미 국립보건원(NIH)]

과불화 화합물은 탄화수소의 기본 골격 중 수소가 불소로 치환된 형태의 물질로서, 과불화화합물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4000종 혹은 7000종이 넘는 다양한 물질을 포함한다. 과불화화합물은 안정한 구조로 인해 열에 강하고 가수분해·광분해·생분해가 잘 안 된다.

PFOA는 전선용 절연체, 소방용 거품보다는 주로 조리기구의 테플론 코팅 (PTFE), 합성섬유(고어텍스) 등으로 사용됐다. 물에 잘 녹는 성질이 있어 체내 혈장 단백질 등과 결합해 농축되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 11월 9일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국내 화장품 내 과불화 화합물 분석 및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조사 대상 절반 이상의 화장품에서 코팅 프라이팬의 원료인 '과불화 화합물'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뉴스1

지난해 11월 9일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국내 화장품 내 과불화 화합물 분석 및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조사 대상 절반 이상의 화장품에서 코팅 프라이팬의 원료인 '과불화 화합물'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뉴스1

PFOS는 글로벌 화학물질 제조사인 3M에서 개발했고, 직물·가구·카펫에 얼룩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바르는 코팅제의 일종으로 사용됐다. 금속을 도금할 때나 소방용 거품(foam) 형태로 화재 진압 때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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