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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정량 한계' 억지로 높인 뒤 "수돗물 남세균 독소 불검출"주장

중앙일보

입력

대구시민 50%가 마시는 수돗물을 원수를 취수하는 매곡취수장 앞 낙동강에 녹조가 진하게 발생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대구시민 50%가 마시는 수돗물을 원수를 취수하는 매곡취수장 앞 낙동강에 녹조가 진하게 발생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지난여름 녹조가 극심했던 낙동강에서 취수해 만든 수돗물에서 남세균 독소가 검출됐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에서는 수돗물에서 독소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거듭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에도 환경부 기자들에게 백 브리핑을 하면서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환경부가 '정량 한계'를 억지로 높이는 방식으로 검출된 사실을 불검출된 것처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염물질을 분석할 때는 일정 농도 이상일 때만 의미 있는 수치로 인정하는 데, 그 한계값을 정량한계라고 한다. 정밀한 측정기기에서는 낮은 값도 측정되지만, 정량한계 아래 측정치는 검출로 인정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 정량한계는 0.15 ppb

남세균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의 구조. 짙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ADDA)는 다양한 마이크로시스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인데, 효소결합면역흡착분석법(ELISA)에서 항체가 작용하는 부분이다.

남세균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의 구조. 짙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ADDA)는 다양한 마이크로시스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인데, 효소결합면역흡착분석법(ELISA)에서 항체가 작용하는 부분이다.

환경부가 '불검출'을 주장하는 근거는 환경단체에서 사용한 '효소 결합 면역 흡착분석법(ELISA)'의 경우 정량한계가 0.3ppb인데, 환경단체가 수돗물에서 측정한 수치는 이보다 낮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에서 ELISA 법에 대해 '최소 보고값(Minimum Reporting Level, 표시한계)'으로 0.3ppb를 제시했다는 게 환경부 주장의 근거다.

환경부는 또 자체적으로 ELISA 방법으로 수돗물을 분석했을 때, 그리고 이 정량한계를 적용했을 때 독소가 전혀 검
출 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지난 7월 환경단체가 대구 정수장 3곳 수돗물에서 검출한 마이크로시스틴 독소 농도는 0.226~0.281ppb인데, 환경부 주장대로라면 모두 불검출이 된다.

하지만, 환경부 주장과 달리 지난 2017년 미국수도협회(AWWA)의 저널에 게재된 논문에서 남가주 메트로폴리탄 수도국(Metropolitan Water District of Southern California) 관계자는 ELISA 방법으로 수돗물에서 남세균 독소를 측정할 때 최소 보고값(정량한계)이 0.15ppb라고 밝혔다.

미국 남가주 매트로폴리탄 수도국 관계자가 쓴 논문에 실린 표. [AWWA, 2017]

미국 남가주 매트로폴리탄 수도국 관계자가 쓴 논문에 실린 표. [AWWA, 2017]

또, 0.15~5ppb 범위에서는 충분히 측정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캘리포니아 기준을 적용하면 대구시 수돗물에서 남세균 독소가 검출된 것이다.

0.3ppb는 정밀검사 시행 기준

낙동강 유역 일부 수돗물에서 녹조를 일으키는 남세균 독소가 검출됐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에 대해 환경부가 반박하고, 환경단체가 재반박하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포토]

낙동강 유역 일부 수돗물에서 녹조를 일으키는 남세균 독소가 검출됐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에 대해 환경부가 반박하고, 환경단체가 재반박하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포토]

EPA의 분석 방법 자료를 보면 정량한계가 고정된 값이 아니라 각 실험실에서 자체 여건에 따라 평가해 결정하는 수치다.

환경부에서 주장하는 0.3ppb도 EPA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EPA에서는 1단계로 ELISA 방법(546방법)으로 200여 가지에 이르는 마이크로시스틴의 총량, 즉 총 마이크로시스 틴 농도를 검사하도록 한다. 총 마이크로시스틴이 0.3ppb 이상으로 나왔을 때 2단계로 액체크로마토그래피(LC-MS/MS) 방법(544방법)을 사용해 마이크로시스틴 독소 가운데 6종을 따로따로 분석하라는 것이다.

ELISA 검사 때 0.3ppb 이하의 측정치가 나왔다고 무시하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EPA는 ELISA나 두 가지 방법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총 마이크로시스틴은 ELISA, 개별 마이크로시스틴은 LC-MS/MS로 측정하는 게 낫다는 취지다.

환경단체와 함께 ELISA 분석을 진행했던 부경대 식품영양학과 이승준 교수는 "정량 한계는 실험실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숙련자가 실험하면 정량한계가 0.15ppb까지 낮아질 수 있다"며 "미국 EPA에서는 마이크로시스틴 독소의 어린이 기준치가 0.3ppb이기 때문에 LC-MS/MS 법으로 정밀 검사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과학원 내에서도 0.1ppb 적용 

지난 7월 26일 대구 문산취수장 앞 낙동강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녹조 원인 생물인 남세균이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지난 7월 26일 대구 문산취수장 앞 낙동강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녹조 원인 생물인 남세균이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이런 환경단체 측 주장은 국립환경과학원이 낸 보고서로 뒷받침된다. 2021년 환경과학원 물환경평가연구과에서 발간한 "하천호소 유형에 따른 조류 발생 특성연구(IV) - 고위험성 유해 남조류 유전학적 다양성 규명 및 분포 조사" 보고서다.

보고서는 ELISA로 마이크로시스틴·아나톡신을 분석했을 때 검출한계로 0.1ppb로 제시했다. 정량한계는 따로 표시하지 않았지만, 보고서 그래프에는 0.1ppb 이상이면 모두 표시돼 있다. 0.1ppb가 정량한계인 셈이다.

이는 환경과학원은 지난 7월 "ELISA 방법을 사용했을 때 0.3 ppb 미만의 값은 신뢰도가 낮아 검출량을 산정하는 자료로 활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한 것과 다르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 13일에도 본지에 "0.1 ppb라는 수치는 ELISA 키트 제조사에서 제시한 검출한계 값으로 판단되며, 검출한계(검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값)와 표시한계(신뢰할 수 있는 값)는 다른 의미"라며 "국립환경과학원에서는 신뢰할 만한 참고값으로서 EPA에서 제시한 0.3ppb를 의미 있는 측정값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재차 해명했다.

국립환경과학원 보고서에 담긴 남세균 독소 분석 결과. 0.3ppb 이하의 수치들도 그래프에 구체적으로 표시돼 있다. [ "하천호소 유형에 따른 조류 발생 특성연구(IV) - 고위험성 유해 남조류 유전학적 다양성 규명 및 분포 조사" 보고서]

국립환경과학원 보고서에 담긴 남세균 독소 분석 결과. 0.3ppb 이하의 수치들도 그래프에 구체적으로 표시돼 있다. [ "하천호소 유형에 따른 조류 발생 특성연구(IV) - 고위험성 유해 남조류 유전학적 다양성 규명 및 분포 조사" 보고서]

이런 환경부 주장대로라면 환경과학원 내에서도 한 부서에서는 0.1ppb 이상이면 측정값을 공식 보고서에 기록하고, 다른 부서에서는 0.3ppb 이하면 신뢰할 수도 없는 수치라고 판단하고 내버린다는 얘기다.

정량한계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 

낙동강네트워크·낙동강대구경북네트워크 등 영남권 환경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1일 오전 대구시청 동인청사 앞에서 대구 수돗물 녹조 독소 오염 파동에 대한 환경부와 대구시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도중 일부 회원들이 달성군 매곡정수장 인근 낙동강에서 퍼온 물을 투명 용기에 따른 뒤 대구시장 항의방문과 서한문 전달을 시도하며 청사 정문 앞에서 청원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뉴스1

낙동강네트워크·낙동강대구경북네트워크 등 영남권 환경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1일 오전 대구시청 동인청사 앞에서 대구 수돗물 녹조 독소 오염 파동에 대한 환경부와 대구시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도중 일부 회원들이 달성군 매곡정수장 인근 낙동강에서 퍼온 물을 투명 용기에 따른 뒤 대구시장 항의방문과 서한문 전달을 시도하며 청사 정문 앞에서 청원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뉴스1

한편, 최소 보고값이나 정량한계 자체가 영구불변한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실험 방법이 조금 바뀌면 정량한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9월 환경과학원이 과불화합물의 정량한계를 바꾼 것이다. '잔류성 오염물질 공정시험 기준'이 개정되면서 정량 한계가 ㎥당 1㎍(마이크로그램, 1㎍= 100만분의 1g)에서 5 pg(피코그램, 1pg=1조분의 1)으로 변경됐다.
과거에는 측정치가 1㎍/㎥ 미만이면 불검출로 처리했는데, 지난해 조사부터는 5pg/㎥ 이상이면 검출된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정량한계가 한순간 20만분의 1로 내려간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은 14일 논평을 통해 "환경단체가 의뢰한 전문가의 ELISA 키트의 성능은 검출한계가 0.016ppb이고, 정량한계는 0.05ppb"라며 "환경과학원의 ELISA 분석 정량한계가 0.3 ppb라면 숙련도를 더 높여 마이크로시스틴 농도를 꼼꼼히 측정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시민의 건강을 해치는 오염물질, 독소를 막기 위해서는 더 정밀한 방법 있다면 언제든지 도입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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