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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님, 차 사려면 흰색으로 사"…피싱범 잡은 택시기사 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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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통화하는 택시기사. 사진 경기남부청 안성경찰서

경찰과 통화하는 택시기사. 사진 경기남부청 안성경찰서

"택시 승객이 보이스피싱 수거책인 것 같다"고 신고해 보이스피싱 범죄를 막은 택시기사에게 경찰이 표창장과 신고 보상금을 수여했다.

28일 안산경찰서에 따르면 택시기사 A씨는 지난 7월 1일 오후 4시쯤 경기 안성시청에서 승객 B씨를 태우고 평택으로 이동했다.

B씨는 가는 도중에 원곡 119안전센터에 잠시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B씨에게 '안전센터는 어쩐 일로 가십니까'라고 물으니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안전센터 부근에서 투자자를 만나 돈을 받기로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며 "회사 법인 통장에 입금하면 될 것을 직접 받는다고 하니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원곡 119안전센터에 도착해 B씨가 택시에서 내리자 A씨는 곧바로 112에 신고했다.

이때 검은색 승용차가 나타났다. B씨는 이 차량에서 내린 사람으로부터 현금다발이 든 쇼핑백을 받아들고 다시 A씨의 택시에 탑승했다. 이어 목적지를 하남시로 변경했다.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 검은색 승용차에 탑승한 사람으로부터 현금다발이 든 쇼핑백을 받는 모습. 사진 경기남부청 안성경찰서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 검은색 승용차에 탑승한 사람으로부터 현금다발이 든 쇼핑백을 받는 모습. 사진 경기남부청 안성경찰서

A씨는 "평택에 가자던 사람이 돈을 받아들고는 갑자기 하남을 가자고 해서 이것은 (보이스피싱 범죄가) 100%라고 확신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A씨는 운행 도중 신고자 위치 파악 등을 위한 경찰의 전화가 걸려오자 평소 알고 지내던 동생을 대하듯 대화했다. 그는 통화에서 자신의 차종과 색상, 번호 등을 묻는 말이 나오자 "아우님, 차 사려면 ○○○로 사. 하얀색이 제일 좋아"라고 답하며 자신의 택시 차종을 알렸다.

A씨는 전화를 끊지 않은 채 운행을 이어갔고, 장거리 운행을 핑계 삼아 B씨에게 "커피 한 잔 마시고 가자"며 안성휴게소로 들어갔다.

경찰이 휴게소에 미리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가 택시기사로부터 보이스피싱 수거책을 인계받는 모습. 사진 경기남부청 안성경찰서

경찰이 휴게소에 미리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가 택시기사로부터 보이스피싱 수거책을 인계받는 모습. 사진 경기남부청 안성경찰서

수화기 너머로 이런 대화를 들은 경찰은 휴게소로 곧장 출동해 기다리고 있다가 사건 당일 오후 5시 10분쯤 A씨로부터 B씨를 인계받았다.

경기 안성경찰서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 수거책 B씨를 사기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이달 중순 검찰에 송치했다.

B씨가 속한 조직은 피해자를 상대로 저금리로 대환 대출을 해주겠다고 속여 기존 대출금 상환 명목으로 현금을 가로채려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씨 덕분에 피해 금액 4600만원을 전부 되찾아 피해자에게 돌려줄 수 있었다.

경찰은 이날 A씨를 '피싱 지킴이'로 선정하고 표창장과 신고 보상금을 수여했다.

안성경찰서는 28일 보이스피싱 범죄를 막은 택시기사를 '피싱지킴이'로 선정하고 표창장과 신고보상금 등을 전달했다. 사진 경기남부청 안성경찰서

안성경찰서는 28일 보이스피싱 범죄를 막은 택시기사를 '피싱지킴이'로 선정하고 표창장과 신고보상금 등을 전달했다. 사진 경기남부청 안성경찰서

'피싱 지킴이'는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과 범인 검거에 도움을 준 시민을 선정해 포상하고, 사례를 홍보해 보이스피싱을 예방하는 시책이다.

A씨는 "내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지 않아도 내 주위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으니, 그런 상황이 온다면 누구든 나처럼 하지 않겠느냐"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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