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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히잡시위 사망 41명…하메네이 일가로 향하는 비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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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이 히잡을 부적절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간 뒤 사망하며 촉발된 이란의 반정부 시위 사망자가 41명으로 늘어났다. 전국에서 유혈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란 인권과 연대하는 세계 각국의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이란 시내에서 불타고 있는 경찰 오토바이. AP=연합뉴스

지난 19일(현지시간) 이란 시내에서 불타고 있는 경찰 오토바이. AP=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이란 국영언론에 따르면 지난 17일 시위 시작 후 현재까지 사망자는 41명에 달한다. 정부 당국이 인터넷을 차단하고 있어 실제 사망자는 더 많을 것으로 관측된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본부를 둔 이란인권단체(IHR)는 이날 이번 시위로 인해 최소 57명이 숨졌다고 집계했다.

수도 테헤란과 북서부 타브리즈, 라슈트, 하메단 등지에서 여전히 시위대와 정부의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고 로이터가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국영 IRNA통신에 따르면 반정부 시위대가 관공서 등을 공격하며 최근 이란 북부에서만 1000명 이상이 체포됐다. 모하마드 카리미 마잔다란주(州) 검찰국장은 “최근 마잔다란에서 폭동 참가자 450명을 체포했으며, 이들은 다수의 정부 건물과 사회 기반 시설을 파괴했다”고 말했다. 마잔다란과 인접한 길란주에서도 시위대 700여명이 체포됐다.

국제사회에서도 이란 당국을 비판하는 연대시위가 잇따른다. 이날 영국 런던의 이란 대사관 밖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며 5명의 시위자가 체포됐고, 프랑스 파리에선 트로가데로 광장에 경찰 추산 약 4000명의 시위대가 운집했다. 프랑스 경찰은 이란 대사관으로 향하는 시위대를 막기 위해 최루탄 등 진압 장비를 동원했다. 그리스, 독일, 미국, 캐나다 등 세계 각지에서 비슷한 시위가 이어졌다. 25일 오후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도 “나와 너의 이름은 이 칠판에 남아 있어. 불의와 억압의 상처가 우리 몸에 흉터를 남겼지”라는 이란 민중가요가 울려 퍼졌다.

25일(현지시간) 캐나다 오타와에서 이란 반정부 시위에 대한 연대시위가 진행되는 모습. AP=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캐나다 오타와에서 이란 반정부 시위에 대한 연대시위가 진행되는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13일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는 히잡(이슬람 세계의 여성 머리 스카프)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이슬람 복법 등을 집행하는 이란 경찰 기관)에 체포됐다. 건강에 이상이 없던 그가 구금 사흘 만에 사망하자 많은 이란인은 경찰 폭행을 사망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당초 ‘여성, 생명, 자유’를 기치로 내건 시위대는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비판의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시위대의 분노 대상이 되고 있다. 53세의 그는 이란 내 공식적인 정부 직책은 없지만, 83세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은 부친의 후계자 후보군에 있는 인물이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자리는 승계로 이어지지 않지만, 최근 며칠 동안 테헤란의 시위대가 “모즈타바가 지도자가 되지 못하고 죽기를”이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WSJ은 전했다.

25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친정부 성향의 시위대가 이란의 초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와 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들고 맞불 시위에 나섰다. EPA=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친정부 성향의 시위대가 이란의 초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와 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들고 맞불 시위에 나섰다. EPA=연합뉴스

이란 정부 당국은 강경 대응 기조를 유지하며 반정부 시위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연대 목소리에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이란의 사법부 수장에 임명된 골람 호세인 모세니-에제이는 이날 관용 없는 단호한 조처의 필요성을 말하며 강경 진압이 이어질 것을 시사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지난 23일 국영방송들을 통해 “시위에 참여한 폭도들은 단호히 진압할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이란 외무부는 25일 “미국이 이란의 폭도들을 지원하는 것은 미국과 이란의 관계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과 노르웨이 대사도 초치했다. 영국의 경우 매체들의 보도가 편파적이라는 점을, 노르웨이는 이란 출신인 마수드 가라흐카니 의회 의장이 최근 트위터를 통해 이란에서 벌어지는 반정부 시위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혔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란 정부의 강경 진압 이후 시위 규모가 줄었고, 일부 시위자들이 정권 교체를 요구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중대한 위기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있다”면서도 “이란인들은 아미니와 비슷한 나이거나 더 어린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공개적으로 항의하고 히잡을 벗는 용기에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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