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서 ‘수어’ 수상소감…'11년 경단녀' 42살 여우주연상 주인공

중앙일보

입력 2022.09.25 16:20

1977년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수간호사 밀드레드 랫치드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루이스 플레처가 23일(현지시간) 88세를 일기로 숨졌다. 2012년 10월 6일 촬영한 모습. AP=연합뉴스

1977년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수간호사 밀드레드 랫치드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루이스 플레처가 23일(현지시간) 88세를 일기로 숨졌다. 2012년 10월 6일 촬영한 모습. AP=연합뉴스

 1975년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수간호사 밀드레드 랫치드 역으로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루이스 플레처가 23일(현지시간) 88세를 일기로 숨졌다. 24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플레처는 프랑스 남부 몽두로스에 있는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대변인 데이비드 숄이 밝혔다. 사망 원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플레처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 캐스팅될 때만 해도 사실상 무명에 가까웠다. 1962년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에서 플레처는 사실 밀로스 포먼 감독의 캐스팅 명단 맨 마지막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대 최고 스타들이 캐릭터가 너무 강렬하다는 이유로 출연을 고사하면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기회를 얻게 됐다. 결혼 후 육아로 11년 간 공백기를 가진 후 1974년 영화 ‘보위와 키치’로 복귀한 참이었다.

아카데미 최초 ‘수어’ 수상 소감

그가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후 수어로 수상 소감을 말한 것도 큰 화제가 됐다. 그는 시상식 무대에서 청각장애인 부모님에게 “꿈을 가지도록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당시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수어를 사용한 것은 플레처가 최초였다. “나를 미워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재치 있는 소감도 화제였다. 그가 맡은 수간호사 캐릭터는 미국영화연구소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빌런’ 5위에 올랐다.

1976년 3월 30일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루이스 플레처. AP=연합뉴스

1976년 3월 30일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루이스 플레처. AP=연합뉴스

플레처는 앨라배마주 버밍엄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둘 다 청각장애인 선교사 부부로, 앨라배마주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교회 40여개를 설립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드라마를 전공한 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그는 “키(178㎝)가 너무 커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며 “서부에서만 큰 키가 유리했다”고 훗날 밝혔다. 1959년 영화 제작자 제리 빅과 결혼해 아들 둘을 낳은 후 육아를 위해 10년 넘게 경력단절을 자처했다. 빅과는 1977년 이혼했다.

그가 스크린에 복귀한 건 남편이 공동 제작자로 참여한 1974년 영화 ‘보위와 키치’였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포먼 감독이 그를 눈여겨본 바로 그 작품이다. 포먼 감독의 연락을 받고 6개월 간 숱한 오디션 끝에 배역을 따냈다. 포먼 감독은 “루이스가 스크린에 나왔을 때 너무 놀라서 눈을 떼지 못했다”며 “그에게는 랫치드에게 아주 중요한 미스테리한 면모가 보였다”고 말했다.

“괜찮은 척하니 진짜 기쁨 되더라”

2012년 1월 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시사회에 참석한 루이스 플레처. AP=연합뉴스

2012년 1월 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시사회에 참석한 루이스 플레처. AP=연합뉴스

플레처는 종종 ‘오스카의 저주’로도 언급된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연기력으로 아카데미상을 받더라도 항상 스타덤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랫치드 같은 강렬한 캐릭터가 주인공일 때 주연급으로 나섰지만, 다른 캐릭터로는 비중이 줄었다. 그런 지적에도 플레처는 70대 후반까지 영화와 드라마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2013년 영화 ‘어 퍼펙트 맨’과 2017년 넷플릭스 코미디 시리즈 ‘걸보스’에도 출연했다.

플레처는 엄격한 캐릭터로 대중에 얼굴을 알렸지만, 어릴 때부터 항상 모든 것이 완벽한 척 웃으면서 지냈다고 한다. 청각장애인인 부모님이 걱정하는 것이 싫어서다. 그는 1977년 한 인터뷰에서 “그 대가는 컸다”면서 “나는 모든 것이 괜찮은 척 했을 뿐만 아니라,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적어도 연기에 있어선 항상 괜찮은 척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으면 진짜 기쁨이 된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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