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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도 늘 입던 영국민 재킷, 7번 협업한 알렉사 청 인터뷰 [더 하이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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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영국의 패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옷이 있다. 왁스 재킷으로 유명한 ‘바버’다. 1894년 창립자 존 바버가 어부·선원을 위해 표면에 기름을 발라 방수 효과를 낸 원단으로 만든 옷으로, 습하고 비가 자주 내리는 변덕스러운 영국 날씨에 딱 맞아 '국민 패션'이라고 불릴 정도로 영국인의 생활필수품이 됐다. 국내에서도 가을이 되면 찾는 대표적인 재킷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올가을 바버와 7번째 협업 컬렉션을 낸 모델이자 디자이너인 알렉사 청을 직접 서면 인터뷰했다.

바버의 크리레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알렉사 청. 사진 바버

바버의 크리레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알렉사 청. 사진 바버

사실 바버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해야 할 사람은 얼마 전 영면에 든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다. 130년 가까이 영국인의 생활 깊숙이 들어가 있는 옷이다 보니 영국 왕실 일가 역시 즐겨 입었는데, 평소 화려한 색감의 옷을 즐겼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사냥터 등 야외 행사에선 이 옷을 공식 복장처럼 입었다. 머리엔 스카프를 두르고 갈색 바버 재킷을 입은 여왕의 모습은 영국인의 전형처럼 보였고, 그의 수수한 모습은 오히려 사람들의 호감을 끌어냈다. 특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생전 하나의 바버 재킷을 25년간 입은 것으로 알려진다. 영국 매체 '더 선'은 "검소한 여왕은 25년 넘게 같은 바버 재킷을 입는다"면서 "몇 년 간격으로 바버 본사에 재킷 표면에 왁스를 새로 바르는 리왁싱(rewaxing)을 요청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5대째 가족 경영으로 브랜드를 운영하는 바버 일가는 5년 이상 영국 왕실에 물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받을 수 있는 '로열 워런트'를 3번이나 받을 정도로 왕실의 인정을 받았다.

198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바버 재킷을 입고 '윈저 호스 쇼'에 참석했다. 사진 더 선

198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바버 재킷을 입고 '윈저 호스 쇼'에 참석했다. 사진 더 선

고 다이애나비(왼쪽)과 이제는 왕세손비가 된 케이트 미들턴 역시 샤냥 등 야외 행사에 참석할 땐 늘 바버를 입었다. 사진 더 선

고 다이애나비(왼쪽)과 이제는 왕세손비가 된 케이트 미들턴 역시 샤냥 등 야외 행사에 참석할 땐 늘 바버를 입었다. 사진 더 선

바버를 영국에서 끄집어내 세계에 알린 또 한 사람이 바로 알렉사 청이다. 모델로 시작해 이제는 디자이너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인데, 2019년부터 지금까지 바버와 함께 일하고 있다. 이번 2022 가을·겨울 컬렉션 '바버 x 알렉사청'은 7번째 협업이다. 한 브랜드가 이렇게 오래 한 인물과 협업을 진행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첫 컬렉션부터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알렉사 청 자체가 바버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바버를 입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 안나요.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부터 계속 입었거든요. 이 옷은 영국인이 늘 곁에 두고 입는 옷이니까요. 그래서 바버의 왁스 냄새를 맡으면 말을 타거나 시골을 거닐던 어릴 때의 향수가 떠올라요."

영국 국민 브랜드를 세계의 페스티벌 패션으로 
알렉사 청은 영국의 대표적인 모델이자 패셔니스타로 꼽힌다. 뛰어난 패션 감각과 영민함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알렉사 청을 두고 “아름다우면서도 똑똑한 이 시대의 표상 같은 여인”이라 찬사를 보낼 정도였다. 청은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 뿐 아니라, 많은 브랜드와 협업했다. 또 다른 영국 브랜드 멀버리와는 그의 이름을 딴 ‘알렉사 백’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알렉사 청 페스티벌 패션. 중앙포토

알렉사 청 페스티벌 패션. 중앙포토

세계가 그와 바버에게 주목한 것은 10여년 전 영국 록 페스티벌에서 그가 보여준 스타일에서부터다. 하늘하늘한 블라우스와 톱에 무심하게 왁스 재킷을 걸치거나, 투박한 야상 점퍼에 진주 목걸이에 샤넬의 빈티지 백을 착용하는 등 투박한 스타일에 여성스러운 터치를 가미해 옷을 입었고, 그 사진을 패션잡지에서 앞다퉈 보여주며 '페스티벌의 여신'으로 떠올랐다. 그때 그가 꼭 챙겼던 옷이 바로 바버의 재킷이었다.

"오랜 전통과 유산이 깃든 옷을 입고 반항적인 무드로 가득한 록 페스티벌에 참석하는 것이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여러 장르를 섞어 입는 것이 흔한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클래식한 그리고 중장년층이 즐겨 입는 옷을 새로운 방식으로 입는 것이 매우 '로큰롤스러운' 일이었거든요."

더 실용적으로, 그리고 더 스타일리시하게 
이렇게 이어진 브랜드와의 인연은 이제 일곱 번째 컬렉션을 함께 만드는 파트너로 발전했다. 알렉사 청처럼 전문적인 디자인 기반이 없는 사람이 한 브랜드와 이렇듯 많은 협업을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청은 오히려 "내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 시간이 부족할까 봐 걱정"이라고 열정을 내비쳤다. 이번 컬렉션은 디자인은 물론이고 모델로도 직접 나섰다.

"이번 컬렉션에서 브랜드의 본고장인 뉴캐슬 사우스 쉴즈로 간다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어요. 이 브랜드는 128년 동안의 역사와 유산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이를 시작점으로 놓고 여기에 상상력을 더했어요. 과거가 아닌 '지금'을 위해서는 옷에 무엇이 있어야 할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했죠."

알렉사 청이 직접 모델이 된 바버x알렉사청 7번째 협업 컬렉션. 사진 바버

알렉사 청이 직접 모델이 된 바버x알렉사청 7번째 협업 컬렉션. 사진 바버

스코틀랜드 동부 지역인 파이프(Fife)에서 이름을 따온 코트. 1910년의 바버 옷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사진 바버

스코틀랜드 동부 지역인 파이프(Fife)에서 이름을 따온 코트. 1910년의 바버 옷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사진 바버

바버는 클래식한 디자인을 기본으로, 방수·통기성을 지녀 오래 입을 수 있는 기능적인 옷이다. 왁스 재킷의 경우 왁스를 계속 덧입히는 리왁싱 과정을 통해 착용자 스스로가 옷을 돌보고 다듬어 입는다. 이번 컬렉션에선 실용성이 더 좋아졌다. 알렉사 청은 큼직한 주머니들이 많이 만들고, 과거 탐험가들의 옷에서 영감을 받아 솜을 꽉꽉 채워 넣은 퀼트 코트와 1910년대 농부와 어부들을 위해 만들었 옷을 아카이브에서 꺼내 지금에 맞게 변형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이번 컬렉션을 보면 보온과 수납을 위한 기능적인 요소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를 넣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나는 실용적인 사람이에요. 그리고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패션업계에 있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방과 관련해서는 기억에 남는 일이 없을 정도로요. 흔히 여자는 가방을 좋아한다고 하잖아요. 반대로 가방 없이 다는 여자를 볼 때 재밌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주머니를 옷에 만드는 걸 좋아해요."

이번 컬렉션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옷은.

"안감에 타탄체크 패턴이 들어간 블레어 왁스 재킷을 가장 좋아해요."

블레어 왁스 재킷을 입은 알렉사 청.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이라고 했다. 사진 바버

블레어 왁스 재킷을 입은 알렉사 청.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이라고 했다. 사진 바버

'브리티시 모던'은 하나의 스타일 장르가 될 정도로 인기가 높은데요. 어떻게 하면 이 스타일을 가장 세련되게 입을 수 있나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영국 날씨는 언제나 즉흥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영국인들은 언제나 실용적으로 입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바로 점퍼나 레인코트, 부츠를 좋아하는 이유죠."

옷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무엇인가요.

"입는 사람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할지,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옷을 만들 때마다 마지막에 항상 직접 입어봐요. 완벽한 옷은 몸에 걸치자마자 바로 알 수 있거든요. 만약 입었을 때 기분이 좋지 않다면, 옷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요."

혹시 좋아하는 한국 디자이너나 브랜드가 있나요.

"민주킴이요. 2020년 디자이너 서바이벌 프로그램 '넥스트 인 패션'에서 심사위원과 참가자로 처음 만났어요. 매우 현명하고 뛰어난 디자이너였고, 우승까지 했죠. TV쇼가 끝난 후 그의 브랜드가 승승장구하는 것을 봐서 감격했어요."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바버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소감을 말해주세요.   

"협업을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목표를 향한 공통된 생각이 필요해요.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파트너십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는 서로가 가진 다른 관점으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발상이죠. 제가 바버라는 오랜 역사를 지닌 브랜드에 색다른 에너지와 신선함을 가져다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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