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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파란 지구의 빨간 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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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여왕께서 붕어(崩御)하셨다. 심심하지 못한 문해력의 시대라니 이 문장도 수상하다. 여왕께서 저녁 반찬으로 붕어조림을 드신거냐. 혹은 워낙 심심하셔서 붕어 문양 옷을 입고 코스프레를 시작하셨느냐. 아니면 왕궁 뒤켠 저수지의 낚싯대에 드디어 붕어 월척이 낚였느냐.

왕실과 의회의 병존이라니, 세상에는 다양한 정치체제가 존재하는 모양이다. 그 의회에 복장부터 의자까지 다른 귀족의회가 따로 있다는 건 더 신기하다. 세상에는 역사책에서 봤던 전제왕정 국가도 여전히 꽤 있다더라. 심지어 이들보다 훨씬 절대적인 종교적 세습왕정 사회주의 인민공화국도 있다. 바로 옆에는 5년 주기 대통령선거와 후유증으로 심심할 틈이 부족하며 심지어 현직 대통령도 화끈히 파면해버리는 민주공화국이 자리잡고 있다. 지구는 참으로 복잡하며 다양한 물건이다.

산업화에서 촉발된 도시 교외화
미국 도시 교외의 블록형 상업지구
한국이 따라한 중심상업용지 구분
이 신도시 계획이 에너지 사용 늘려

영국의 정치체제는 도시에도 영향을 미쳤고 파장은 지구를 돌아 한국에도 닿는다. 그 여정을 일별하려면 엘리자베스 2세 이전의 빅토리아 여왕 시대로 가봐야 한다. 공장과 해군의 힘으로 지구 구석구석을 복속시킨 영국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시기다. 산업화와 제국주의의 결실 덕에 더욱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일상이 우아해진 계층이 젠트리(gentry)였다. 영국 신사라는 상투적 단어로 표현되는 이들이다.

그러나 산 높으면 골이 깊고 해 밝으면 그늘이 짙다. 대도시의 노동인구가 급증하고 석탄 매연으로 대기는 혼탁하니 주거환경이 악화되고 아동 노동이 일상화된 시절이었다. 마르크스가 목도하고 자본주의 종말론을 일갈하게 만든 암울한 도시 풍경이다. 절 싫으면 중이 떠난다. 젠트리는 매캐하고 구질구질한 도시를 버리고 밖으로 나갔으니 도시 외곽 교외(suburb)의 형성이다. 주변에 높은 울타리를 두르고 귀족들을 본뜬 고딕양식 주택을 지었으니 호칭하되 빅토리아풍이다. 주거지역이 업무지역과 멀찍이 분리되었으니 통근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세기가 바뀔 때 신흥부국 미국의 건축 신사유람단이 영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귀국하여 목격한대로 교외에 주거단지를 조성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적 차이를 잊지 않았고 미국식 민주주의에 맞는 조건을 걸었다. 공적 자유(liberty)를 얻기 위한 사적 자유(freedom)의 공평한 제한. 도로변 전면은 사유지이지만 공적공간이므로 건물을 짓지 말고 개방해야 한다. 거기 잔디를 심되 도로변에는 담장을 치지도 못한다. 그래서 도로에서 봤을 때 단지 전체가 열린 공원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 게다가 주택 소유자는 잔디를 수시로 깎아야 하고 낙엽도 열심히 쓸어야 하며 눈은 즉시 치워야 한다. 관리를 게을리하면 벌금이 부과된다.

미국 교외화의 폭발기는 영국으로 치면 엘리자베스 2세 즉위기와 비슷하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연방정부의 주택담보대출 지원이 본격화되었다. 도시 교외에 주택지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널린 게 빈 땅인데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개발업자들은 석재 빅토리아풍이 아니고 바람 불면 날아갈 경량 목조건물을 싸게 지어 불티나게 팔았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미국 교외 풍경이다.

도시의 근본이자 핵심은 상업시설이다. 대개의 상업시설은 다양하게 모여 있어야 경쟁력이 생기니 미국 교외에 집중형 상업용지 블록이 조성되었다. 넓은 땅의 저밀도 개발이라 주택지에서 상가로 가려면 다시 자동차를 타야 했다. 쇼핑과 통근을 위해 화석연료를 아낌없이 불태워야 작동하는 자동차의 도시가 미국을 잠식했다. 그런데 한국의 빛은 먼 동방 미국에서 오는지라 신도시를 만들면서 이 도시설계 기법을 수입했다. 그러나 저 나라와 달리 지구 반대편 이 나라의 땅은 좁고 인구 밀도는 높았다. 그럼에도 주거·업무·상업을 도시블록으로 분리해 떨어뜨렸다.

주거는 도로를 혐오한다. 그래서 한국 신도시의 주거지역 테두리에는 필지·블록별로 담장이 둘러쳐졌다. 담장 밖 보행환경이 좋을 리가 없다. 반면 상점은 도로변 지상층 점유가 생존 기본원칙이다. 상업지역 전면도로가 아닌 뒷골목으로, 지상층이 아닌 고층부로 밀려나면 상권은 비루해지고 상점은 존폐위협에 시달린다. 결국 절규하는 간판으로 덮인 처절한 아비규환 각축장이 신도시 상업지역 풍경이 된다. 주거지에서 승용차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 차들이 우글거리는 상업지역에서 쾌적한 보행환경 논의는 현실 밖 한담으로 조롱받는다. 세계 최고의 인구 고밀 국가인데 굳이 자동차까지 과밀이어야 작동되는 엉뚱한 신도시들이 내내 조성되었다.

중심상업용지는 토지이용계획도를 작성할 때 빨간색으로 칠한다. 전국 각지의 신도시를 왜 계속 만들어야 하는지도 의아한데, 거기 중심상업용지는 왜 여전히 빨간 미제 블록으로 분리 계획하는지는 더 의아하다. 외식 한번 하려면 자동차를 타야만 하는 구조의 도시를 만들면서 친환경·탄소중립·지속가능성을 설파하는 건 무지거나 위선이다. 파란 지구를 빨갛게 불태워야 간신히 유지되는 도시, 이건 나쁜 도시다. 그런데 그냥 도시화도 아닌 나쁜 도시화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이 작은 나라에서.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