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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토끼 울타리와 참새 학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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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2002년도에 나온 ‘토끼 울타리’라는 감동적인 영화가 있다. 호주에서 원주민과 백인의 혼혈 소녀 세 명이 머나먼 교육시설에 강제로 끌려가서 갇혀 있다가 탈출한 후 9주일간 무려 2400㎞ 길을 걸어서 고향으로 돌아갔던 역사적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였다. 영화의 기본이 된 책을 썼던 가리마라(Doris Pilkington Garimara)는 그때 탈출했던 아이 중 한 명이 어른이 되어 낳은 딸이었다. 어머니의 눈물겨운 어릴 적 이야기를 세계인에게 전해주며 심금을 울렸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어떻게 그 먼 길을 안내자도 없이 찾아갈 수 있었는가 하면, 토끼 차단용 울타리를 따라가면 고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토끼를 차단하는 울타리란 무슨 소리인가. 호주에는 19세기 후반에 토끼가 너무 번성하여 초원의 풀이나 경작하는 식물을 다 먹어버려 축산업과 농업에 큰 지장을 주었다고 한다. 호주에는 원래 토끼가 없었다. 워낙 오래전에 다른 대륙과 분리가 되었기 때문에 그곳에는 유럽이나 아시아에는 없는 고유한 동식물들이 살고 있었다.

호주서 도입한 토끼, 엄청난 번식
자연 생태계 균형은 쉽사리 깨져
중국도 참새 죽이려다 해충 급증
두 단계 앞도 못 보는 인간의 판단

그런데 영국인이 호주에 이주하면서 그 지역에는 없던 동물을 유럽에서 많이 들여왔다. 그중에 토끼도 있었는데, 사실 대단히 필요도 없는 동물이지만 별 생각 없이 데리고 갔다. 토머스 오스틴이란 사람이 1859년에 유럽에서 가져간 토끼 24마리를 야외에 풀어놓고 사냥감으로 삼기 위하여 방출했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고 한다. 그놈들이 엄청나게 번식을 한 것이다. 호주는 토끼가 살기 좋은 환경이었고 또 잡아먹는 천적이 없었다. 오스틴의 토끼들 후손이 현재 무려 2억 마리 정도 된다고 한다.

토끼를 처음에 풀어놓은 것은 호주 동부 지방이었는데, 그 후로 번성하여 서쪽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서부지역 사람들은 그 토끼 무리의 이주를 차단하기 위하여 울타리를 쳤다. 1901년에 시작하여 긴 울타리 세 개를 짓는 공사를 했는데, 그중 1번 울타리는 그 거대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전체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길이가 장장 1834㎞였다. 우리나라 휴전선 길이의 7배, 서울과 부산 간 거리의 5배 정도 된다. 그렇게 엄청난 울타리를 쳤음에도 별로 효과는 보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첫째로 그 울타리를 완성하기 전에 이미 토끼들은 호주 서부에 침입하였던 것이다.

이 토끼의 역사는 인간들이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섣불리 깨뜨리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예시해 준다. 그런데 생각 없이 그런 일을 저지를 수도 있지만, 계획적으로 벌린 일이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낳는 경우도 많다.

한 가지 극명한 예가 중국 공산당이 1958년부터 벌였던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중에 나왔다. 당시 모든 국민의 열렬한 참여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하고자 했던 중국 정부는 공업뿐 아니라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데도 집중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곡식을 먹어 치우는 참새는 인민의 적으로 규정되었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참새를 없애버리는 것이 국가적 목표가 되었다. 총으로 쏘고, 둥지를 망가뜨리고, 알을 깨버리고, 새끼를 죽이고, 심지어는 냄비를 시끄럽게 두드려서 새들이 겁에 질려서 앉지 못하고 끝없이 날아다니다가 탈진해서 떨어져 죽게 하였다. 그리하여 참새를 거의 멸종시켰다. 몇 마리나 몰살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수억에 달했으리라는 추정도 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참새가 곡식도 좀 먹지만 곤충을 많이 잡아먹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천적이었던 참새가 없어지니 메뚜기가 번성하여 참새보다 곡식을 훨씬 더 먹어버렸으며, 다른 해충도 늘어나 농작물을 망쳤다. 그리하여 참새를 경솔히 몰살한 것이 그 의도와는 정반대로 농업을 해치게 되었으며, 중국이  당시 3년간 겪게 되었던 대기근을 일으키는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할 수 없이 2년 만에 참새와의 전쟁을 포기하였고, 결국 소련에서 참새 25만 마리를 수입하여 다시 그들이 생태계에서 본래의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호주의 토끼 이야기로 잠시 돌아가 보자. 울타리가 실패한 후 독약으로 죽이고 거처를 파괴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 중국에서 대약진운동을 벌일 그 무렵, 호주에서는 토끼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일부러 퍼뜨렸다. 그런데 그렇게 죽어가면서 토끼들은 그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생겨서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또 더 무서운 바이러스를 발견하여 이번에는 토끼의 90%를 몰살하였는데, 거기에 대한 저항력도 늘고 있으며 과학자들은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찾고 있다 한다.

현재 코로나19가 동물에게서 시작되어 인간에게 전이되었다 하는 것이 정설이다. 다른 종류의 동물 간에 전염병이 옮는 경우는 또 많이 있다. 필자가 절대 바이러스 전문가가 아니지만 토끼를 상대로 한 생물학 무기 개발에 대해 도덕성을 떠나서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은 기우일까.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