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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서 퇴짜 당하면 '앙심 신고'…마약전쟁 이면엔 업무마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온라인에서의 불법 마약류 판매 광고 게시글.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음. 사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온라인에서의 불법 마약류 판매 광고 게시글.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음. 사진 식품의약품안전처

“클럽 MD(영업직원)들이 마약을 하는 것 같아요.”

최근 이런 112 신고를 받고 서울에 있는 한 클럽에 출동한 파출소 직원 A씨는 허탕을 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현장을 둘러 보니 해당 신고는 클럽에서 입장을 거부당한 이른바 ‘입뺀(입장 퇴짜)’ 손님들이 앙심을 품고 일부러 허위 신고를 한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한 경찰관은 “클럽에 안 들여보내 주면 열 받아서 마약 신고를 하는 등 허위 신고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경찰이 마약류사범 집중 단속을 벌이는 가운데 허위 신고나 오인 신고가 줄을 잇는다. 경찰대 출신 한 경찰 관계자는 “마약 수사는 지인 첩보 등으로 수사가 이뤄지곤 하는데 최근엔 사이가 멀어진 뒤 아주 먼 과거의 일을 악의적으로 신고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전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했더니 도박장인 경우 등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례는 자연스레 담당 경찰들의 업무 마비 등으로 이어진다. 마약 수사 등을 하는 강력팀 형사 B씨는 “신고가 자주 들어오니까 검거 건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쫓아다니느라 정작 해야 할 중요 사건에 쏟을 시간을 뺏기는 느낌이 든다”고 토로했다.

마약 신고 35% 증가…경찰은 업무 과중?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깃발. 뉴스1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깃발. 뉴스1

22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이 마약 집중 단속에 나선 지난 8월부터 이달 11일까지 최근 한 달간 서울 내 마약 관련 신고 건수는 334건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247건) 대비 35% 늘어난 수치다.

이에 따라 관련 수사를 하는 경찰 사이에서는 업무 부담 등에 대한 고충도 들려온다. 마약 관련 신고가 들어오면 지역 경찰과 함께 강력팀이 현장에 출동해 마약류 투약 여부 등 관련 범죄 정황을 확인해야 한다. 술집이 몰려 있는 서울 한 대학가를 관할하는 경찰서 관계자는 “취객을 보고 마약 사범이라는 신고가 계속 들어오는데 검사를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양해를 구하고 검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집중 단속에 따라 강력팀이 마약 수사에 투입되면서 기존 강력팀 업무를 넘겨받은 다른 과에서는 업무 과중 또는 마비를 호소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440명 검거 인원 중 80% 이상이 단순 사범 

경찰이 압수한 필로폰.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경찰이 압수한 필로폰.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마약 관련 신고나 검거 인원은 늘었지만 ‘꼬리 잡기’에 그친다는 지적도 있다. 마약 관련 수사 담당자는 “특별 단속 때는 단순 투약자 등 생활 마약 사범이 주로 검거되는데 공급책·총책 등 ‘진짜’를 잡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우리끼리는 이럴 때는 잔챙이들만 잡힌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강력팀 경찰관도 “마약 수사는 6개월 이상 걸리는 장기전”이라며 “조직폭력배(조폭) 수사와 마찬가지로 마약 집중 단속을 하면 상선이 활동을 잠깐 멈추는 부작용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서울청 집중 단속에서도 검거 인원 440명 가운데 84%인 367명은 투약이나 소지 등 단순 사범으로 분류됐다. 제조·밀반입·판매 등 공급 사범은 73명(16%)에 그쳤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단속 기간이 한 달을 넘은 시점에서 투약자에 대한 상선 등 공범 수사를 확대하면 공급 사범 검거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경찰과 검찰이 앞다퉈 마약 관련 범죄에 대한 총력전을 펼치는 가운데 경찰 지휘부가 특진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시큰둥한 일선 반응도 감지된다. 형사통으로 분류되는 한 경찰관은 “보통 단편적인 마약 사건만 쫓는 일선 서는 공급책을 대거 검거할 수 있는 전담팀이 있는 지방청에 경쟁이 밀리니 특진이라는 당근책이 직원들에게 잘 먹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일 신고를 다 뛰면서 중요 실적을 내긴 어렵다”(일선서 간부)는 반응도 나왔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인력 확충 등 지원 없이 마약 단속이 실적 위주로만 진행된다는 지적에 대해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특진이나 승급 등 합당한 포상을 이뤄지게 하고 있다”며 “국민을 위한 집중수사를 하다 보면 부담이 있을 수 있고 현장 의견을 경청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마약 전문인 박진실 변호사(법무법인 진실)는 “집중 단속 기간에는 공급 사범들이 노출 행동을 최대한 안 하니 단순 투약자들만 훨씬 많이 잡히는 결과가 나온다”며 “마약 수사는 공급 사범을 잡는 장기전이라 지금 같은 실적 경쟁은 의미 없고 상선 검거 등 체계적인 단속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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