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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전기요금 인상, 불가피하지만 충격 줄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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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다음 달부터 전기요금이 추가로 인상될 전망이다. 사진은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에 설치한 전기계량기 모습. [뉴스1]

다음 달부터 전기요금이 추가로 인상될 전망이다. 사진은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에 설치한 전기계량기 모습. [뉴스1]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탈원전 청구서’ 겹쳐

한전 자구계획과 취약계층 보완책 마련해야

정부가 다음 달부터 적용할 전기요금 인상 결정을 연기했다. 원래는 21일 발표를 예정했지만 부처 간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을 연기의 이유로 들었다. 물가를 관리하는 기획재정부와 에너지 부문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입장 차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만큼 전기요금 결정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 경제도 고려해야 하지만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한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에너지 소비가 많은 겨울이 다가오면서 글로벌 에너지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는 러시아는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을 잠글 수 있다고 위협한다. 한국에 가장 많은 액화천연가스(LNG)를 공급하는 호주는 수출 제한까지 검토하고 있다. 화석연료와 화력발전 의존도가 높은 국내에서도 전기요금 인상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원유·가스·석탄 등 연료 수입액은 1400억 달러로 1년 전보다 600억 달러 증가했다. 같은 기간 무역수지 적자(250억 달러)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정권 교체 이후 날아든 ‘탈원전 청구서’도 에너지난을 부채질했다. 문재인 정부는 멀쩡한 원전을 폐쇄하거나 공사를 중단해 원전 가동률을 끌어내렸다. 탈원전으로 국민 부담이 커진다는 비판을 피하려고 전기요금 인상 압력을 억눌렀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며 문제를 키우는 ‘폭탄 돌리기’였던 셈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원전 재가동을 서두르고 친환경 경제활동 기준인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한 건 긍정적이다. 하지만 전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완전히 되돌릴 순 없다.

한국전력은 ‘팔수록 적자’의 악순환에 빠졌다. 지난해 5조원대 영업적자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는 14조원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전체로는 20조~30조원대의 적자를 예상한다. 대형 공기업인 한전의 부실은 국민 모두의 부담이다. 만일 한전의 대규모 적자를 요금 인상으로만 메우려면 4인 가구 기준으로 매달 8만원씩 더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실적으로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다. 결국 한전의 강도 높은 재무구조 개선과 함께 요금 인상, 에너지 절약 노력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외 상황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전기요금 현실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는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상세히 밝히고 충격을 완화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공공부문이 에너지 절약에 모범을 보일 필요도 있다.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덜 수 있도록 세심한 보완책도 있어야 한다. 요금 인상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인다면 무역수지 개선과 원화값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론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원전을 안정적으로 활용하는 에너지 구조 개편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