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검사가 있겠습니다. 양쪽으로 줄을 서주세요.”
지난 9일 오후 1시(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포르트 드 베르사유 엑스포장. 이날은 세계 3대 암학회 중 하나인 유럽종양학회(ESMO)가 공식 오픈하는 날이었다. 야외 입구에 엑스포장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대거 몰리자 안내 직원이 차례로 줄을 서달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서를 준비하려는데 정작 직원들은 가방의 소지품 검사만 했다. 흉기나 폭발물 등 위험한 물건이 있는지만 살펴본 뒤 별다른 제지 없이 사람들을 들여보냈다. ESMO 측은 사전 이메일 공지에서 “학회에 참석하려면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완치됐거나 적어도 한 번 이상 백신 접종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실제 현장에선 관련 내역을 확인하지 않았다. 발열 체크, 손 소독,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문구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세계 종양학 전문가와 임상 전문의, 제약 관계자 등 2만여 명이 몰려 5일간 열린 학회는 한국과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프랑스의 현지 방역 지침대로 실외는 물론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쓴 이가 거의 없었다. 홀에는 커피차가 세워져 있었고, 전시장 곳곳의 간이 의자에선 샌드위치와 커피를 즐기는 이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프레스 센터에는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간격으로 기자들이 다닥다닥 앉아있었지만 모두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통화하고 음료를 마셨다. 배가 불룩한 임신부 발표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로 1시간 동안 문답을 이어갔다. 한국에서 온 코로나19 미확진 기자 세 명만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OECD 주요 국가들은 이처럼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지고 있다. 의료시설이나 대중교통, 복지시설에서 착용 의무가 유지될 뿐이다. 최근 정기석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장이 “출구전략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해외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미국과 덴마크, 프랑스는 마스크 의무화를 폐지했다. 프랑스 출장 기간 중 박물관, 백화점, 대중교통, 택시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파리 14구에 위치한 한 호텔 직원은 “지난봄(3월)부터 마스크 의무화가 폐지됐다”라며 “지난 7월 갑자기 확진자가 증가했을 때 잠깐 썼을 뿐 이제는 거의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대한 질문에는 “자주 손을 씻는 등 나름의 방역을 지키고 있다”며 “사실 우리 주변에는 더 위험한 다른 질병들이 많이 있다. 코로나19에 지나치게 공포감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6일(현지시간) 기준 프랑스의 인구 100만명당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는 308명으로 1055명인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인구 100만명당 일일 코로나19 사망자는 0.43명으로 0.97인 한국의 절반 정도다.
그렇다고 프랑스인 모두가 정부의 방역 정책에 찬성하는 건 아니었다. 차량호출 서비스 앱 우버를 통해 10번 정도 택시를 불러본 결과 2명의 택시 기사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이 중 한 명은 요금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의 칸만 뚫어놓은 채 앞 좌석과 뒷좌석을 분리하는 비닐 가림막을 쳐놓았다. 해당 기사는 기자와 동승한 1명이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자 써 달라고 먼저 요청하기도 했다. 프랑스에 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스크 착용을 요구받은 날이었다. 그는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며 고맙다는 제스쳐를 보냈다. 마스크를 쓰고 있던 또 다른 택시기사는 “손님들에게는 마스크를 써달라고 요청하기 어려워 나 스스로 쓰고 있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관광객이 많으니 일할 때 아무래도 불안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