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전문가 긴급진단
“미국과 일본, 중국 등 반도체 산업을 원하는 국가들은 저만큼 달려가는데 한국은 걸음마도 떼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공학회 부회장)의 말엔 날이 서 있었다.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이하 특위)가 발의한 이른바 ‘K-칩스법’(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법)의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서다.
이 법은 반도체 등 미래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방안을 담고 있다. 특위에서 활동 중인 김 교수는 “특위에서 밤낮없이 고민해 시급한 내용부터 법안에 담았는데, 8월 4일 발의 후 50일이 넘도록 국회에선 아직 논의조차 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83년 삼성전자 종합연구소를 시작으로 31년간 반도체를 연구한 뒤, 2013년 학계로 자리를 옮긴 시스템반도체 전문가다. 그를 15일 성균관대 반도체공학관에서 만났다.
- K-칩스법은 어떤 법인가.
- “국가첨단전략산업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두 건을 묶은 패키지 법안으로, 반도체 등 미래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방안을 담고 있다. 반도체 육성이 장기적인 과제가 아니라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에 빠른 국회 통과를 목표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내용부터 담아 발의했다.”
-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
- “이 법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인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의 경우 20%(대기업 기준)로 정했다. 더 높였다가는 대기업 특혜라는 비판과 함께 국회 통과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이렇게 담지 못한 내용이 적지 않다.”
- 아쉬운 점은 없나.
- “개인적으로도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지원과 차량용반도체 등을 만들 구형 공정 투자 촉진 방안 등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지금도 한국 반도체 산업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워낙 시급한 부분부터 담아야 했기에 이번 법안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이 밖에도 주52시간제 개선 의견도 있었으나 비슷한 이유로 제외됐다. 이 사안은 반도체 업계에서 자주 요청했던 것이지만 노동계를 설득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다.”
- 반도체 분야는 대통령 핵심 공약이다.
- “대통령만 다급하고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 반도체가 얼마나 비상상황인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7월에 정부 관계기관 합동으로 발표한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을 보면 반도체 인재를 2031년까지 15만명 양성하고,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점유율을 10%로 높인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실행 계획은 오리무중이다. 반도체 관련 인프라 구축 예산이 전액 삭감되기도 했다. 대통령도 14일 특위와의 오찬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예산이 없는데 앞으로 무슨 지원을 할 수 있겠나.”
- 한국의 반도체는 얼마나 시급한가.
- “중국의 반도체는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급성장 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설계능력은 중국에 뒤진 지 오래고, 세계 선두에 있는 메모리반도체도 불안하다. 플래시 메모리는 1년, D램은 기술 격차가 4~5년 정도로 본다. 이번 정부 임기가 향후 한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중요한 시기란 얘기다. 이렇게 급박한 처지인데 느긋하게 10년 뒤를 준비할 때가 아니다.”
- 속도를 낼 방법은 없나.
- “K-칩스법 통과가 가장 시급하다. 그 다음으로는 대통령 직속으로 기술과학 특별보좌관을 둘 필요가 있다. 정부 관계부처에서 올라오는 방안들이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 챙길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미국이나 중국 등 주요국이 말 그대로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우리도 효과적이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