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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강국 착각, 한국 정부만 위급한 전쟁 상황 몰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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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호 04면

반도체 전문가 긴급진단

박재근 한양대 교수가 한국 반도체 산업 비전과 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박재근 한양대 교수가 한국 반도체 산업 비전과 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미국과 일본 등 경쟁국은 현금까지 뿌리면서 반도체 투자 유치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한국 정부만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지 모르고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협회장)는 최근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 등 주요국 반도체 산업 유치 경쟁을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도체 유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 한국에 공장을 짓기로 한 반도체 업체가 미국행을 선택하기도 했다. 한국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라는 착각 때문이라고 박 교수는 지적한다. 14일 한양대 한양종합기술원(HIT)에서 그를 만나 한국 반도체 산업이 처한 상황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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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세금 감면보다 현금 지원 원해

반도체 산업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말 그대로 전쟁이다. 한국에 투자하려다 최근 미국으로 방향을 돌린 대만 글로벌웨이퍼란 회사가 있다. 이 회사가 미국으로부터 지원받기로 한 혜택은 투자금의 50%다.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세제혜택이 투자금의 35%, 연방정부 현금 인센티브(보조금)가 15%다. 미국에 공장을 짓기로 하면 한국보다 투자비가 2~3배 든다. 기업 입장에선 당연히 투자비가 낮은 한국에 투자하는게 맞다. 그러자 미국 정부가 현금으로 이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미국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싼 전기료가 정부 보조금이라며 한국산 철강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공정무역을 강조했던 나라다. 그랬던 곳이 지금은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반도체 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금 지원이 중요한가.
“당연하다. 반도체는 초기 투자비용을 회수하는데 대략 5년이 걸린다. 때문에 투자 초기 직후 몇 년간의 세금 감면은 별 메리트가 없다. 반면 현금 지원은 다르다. 사실상 설비 일부를 정부에서 대주는 셈이다. 이러니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도 미국에 투자해 지원을 최대한 받기 위해 미국 정부와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일본도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인 TSMC 공장을 구마모토현에 유치할 때 경제안전보장법에 따라 현금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공장 건설비용 약 1조1000억 엔(약 10조5000억원) 중 절반가량인 4760억 엔(약 4조5000억원)을 일본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이다. 공장 부지도 구마모토현 지방정부가 조성하고 있다. 중국은 더 노골적이다. 기술 확보가 목적이라, 자국 기업이 대상이긴 하지만 사업계획서만 있으면 정부가 사업 부지를 제공하고 은행 대출도 알선해 준다. 지방정부에선 현금으로 투자금을 댄다. 사업계획서만 있으면 사업이 가능한 셈이다. 대만은 정부가 미리 공장 부지를 만들어 놓고 반도체 기업이 필요하다고 하면 바로 공급해 준다.”
한국은 어떤 상황인가.
“삼성전자가 인텔을 제치고 반도체 회사 가운데 매출액 1위에 올랐다는 얘기가 종종 나오면서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라 착각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혜택이 많은 해외로 생산시설을 늘려도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이 더 늘더라도 한국이 강국이라고 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일 방안의 실행은 너무 더디다. 현재 (내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만 하더라도, 2019년에 짓기로 하고 3년째 착공식도 못했다. 최근에는 여주시에서 이익분배를 하자고 하면서 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식이면 2027년 완공은 불가능하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조차 설득을 못하는데, 무슨 일을 하겠나.”

메모리반도체 기술 격차 대폭 줄어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대기업 특혜란 비판도 있다.
“반도체 업체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이니 그런 반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미래를 생각하면 투자해야 한다. 예컨대 코로나19로 공급망이 막히면서 국내 자동차산업을 멈춰 세웠던 차량용반도체(MCU)를 떠올려보자. 현대차 같은 완성차 업체는 반도체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하는데, 지난해엔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 조업을 못했다. 자동차 부품 업체 등 중소 협력 업체도 다 멈춰 섰다. 전자제품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론 제조업에서 반도체가 안 들어가는 분야가 없을 것이니, 연관 중소기업들도 다 타격을 받는다. 선진국들이 반도체 공장 유치에 사활을 거는 것도 인텔, 소니 같은 대기업 지원하려는 게 아니다.”
차량용반도체 기술은 확보됐나.
“차량용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로직 기술을 보유한 회사는 대만 TSMC·UMC, 미국 글로벌파운드리, 중국 SMIC, 한국의 삼성전자 정도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기술만 있고 생산라인이 없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 첨단 설비 투자를 하면서 이 분야까지 투자하긴 버거울 것이다. 대기업 특혜 지원이란 비판을 피하려면 중소기업을 선정해서 지원하면 되겠지만, 그러면 기술을 사와야 해 투자 부담이 늘어난다.”
반도체 기술 격차는 어떤 상황인가.
“미국 마이크론이나 중국 YMTC의 기술 추격이 매서워 격차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 동안 무시했던 중국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따라오고 있다. YMTC도 최근 ‘3D 낸드플래시’를 만들어 시장에 진입을 했다. 최근에 애플이 아이폰14에 중국 YMTC의 낸드플래시를 탑재하기로 한 것만 봐도 기술력을 무조건 폄하할 일은 아니란 얘기다. 낸드플래시에서도 기술적 난도가 높은 낸드플래시콘트롤러(낸드플래시의 두뇌역할을 하는 시스템반도체)는 어느 수준인지 아직 알기 어렵지만, 애플은 이런 설계를 잘하니까 가격이 싼 YMTC에 접근한 것이다. 더는 안심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경쟁국보다 더 많은 혜택을 주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만큼 경쟁국만큼이라도 지원 수준을 늘리는 논의를 국회에서 당장 시작해야 한다. 기업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내 투자 계획을 제시하고, 정부에 필요한 것을 요청해야 한다. 양손이 맞아야 박수를 칠 수 있듯 정부와 산업계가 동시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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