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재고자산 증가액만 보고 현금흐름 악화 판단 땐 오류 가능성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05호 16면

실전 공시의 세계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며 TV를 비롯한 가전제품 등의 재고가 늘어나고 있다. [뉴스1]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며 TV를 비롯한 가전제품 등의 재고가 늘어나고 있다. [뉴스1]

기업 현금흐름이 나빠지고 있다는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반기에는 손익계산서상 이익 감소에 비해 현금흐름은 더 크게 악화할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다 보니 투자 전문가들은 내년 이후 실적 개선과 함께 영업현금 창출력이 올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기업에 주목하라고 말합니다.

최근 기업들이 공시한 분기 또는 반기 재무제표를 근거로 현금흐름에 악영향을 미친 주원인으로 재고자산 증가가 많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기업의 재고자산 증가를 영업현금흐름 악화 주범으로 지목하려면 매입채무 변동을 같이 봐야 합니다. 매입채무를 살펴보지 않은 채 재고가 증가했다는 사실과 영업현금흐름이 나빠졌다는 사실을 단순 결부시키면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유통업체가 연중에 재고자산을 대량으로 매입했습니다. 판매가 잘 안 돼 연말에 재고자산이 많이 남았습니다. 연초 대비 연말 재고잔액이 크면 영업현금흐름표에서는 그 차이만큼을 마이너스(-)로 기록합니다. 하지만 유통업체가 재고자산을 항상 현금매입하는 것은 아닙니다. A사가 연중 매입한 10억원 재고자산 가운데 현금매입분이 1억원이라면, 나머지 9억원은 외상매입분입니다.

매입채무를 증가시킬 뿐 현금유출과는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영업현금흐름표는 연초 대비 연말 매입채무 잔액이 크다면, 그 차이만큼을 플러스(+)로 기록합니다. 그렇게 해야 재고자산 증가분 가운데 현금유출과 관련 없는 외상매입분이 반영돼 영업현금흐름이 제대로 잡힙니다. 재고자산과 매입채무가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했다면, 재고자산을 영업현금흐름 악화 주원인으로 지목하기는 어렵습니다.

쿠팡의 2020년과 2021년 영업현금흐름표에서 재고자산 증가액만을 보고 현금흐름이 안 좋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적자를 엄청 냈지만 영업현금흐름은 플러스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재고자산 증가액 이상으로 매입채무와 미지급비용이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매출채권은 빨리 회수되는 반면 매입채무 결제를 늦추면 늦출수록 현금흐름은 좋아집니다. 일반 대기업도 거래업체에 대한 매입채무나 미지급금 결제를 늦추면 현금흐름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일반 대기업 영업현금흐름표를 보면 재고자산 증가액은 크지만 매입채무 증가액은 작은 경우가 많습니다. 영업현금흐름은 안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재고나 매출채권의 회전율이 더뎌지더라도 매입채무 결제는 늘 하던 대로 진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현금흐름을 위해 매입채무 결제를 비정상적으로 늦추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겁니다.

영업현금흐름에서 또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지난해 실적이 아주 좋았던 기업의 경우 올해 상반기 영업현금흐름이 안 좋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법인세 납부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지난해 실적에 대한 법인세액의 상당부분을 올해 상반기에 납부하는데, 법인세 지출액은 영업현금흐름에 반영됩니다. 따라서 지난해 실적이 좋았던 기업은 올해 상반기 실제 영업활동과는 무관한 법인세 납부 때문에 영업현금흐름이 안 좋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중앙일보·이데일리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오랫동안 기업(산업)과 자본시장을 취재한 경험에 회계·공시 지식을 더해 재무제표 분석이나 기업경영을 다룬 저술·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1일3분1공시』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뻔 했다』 등의 저서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