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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수주 선박 ‘공손충’ 발생, 조선업 실적 턴어라운드 발목잡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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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호 16면

실전 공시의 세계 

송봉근 기자

송봉근 기자

8월 초·중순 가장 빈번하게 볼 수 있는 기업공시로는 2분기(4~6월) 잠정실적이 있습니다. 주요 대기업이 잠정치를 내놓으면 많은 분석기사와 증권가 리포트가 쏟아집니다. 업종으로 볼 때 2분기 잠정실적에 관심이 쏠렸던 산업은 조선업이었습니다. 조선업 투자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수주풍년이라는 말을 들은 지가 1년은 된 것 같은데 왜 분기실적은 늘 영업적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조선업 장기 투자자들은 속된 말로 ‘눈이 빠지게’ 실적 턴어라운드를 고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업 특성상 수주계약이 단기간에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일부 매체는 한발 더 나아가 “배를 건조하여 발주처에 최종인도한 뒤 실적에 반영하기 때문에 수주시점으로부터 2년은 지나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선박은 건조공사를 진행하면서 공사진행률에 따라 손익을 인식합니다. 제품을 다 만들어 수요자에게 인도한 뒤 손익반영하는 ‘완성기준’ 회계와는 다릅니다. 이를 ‘진행기준’ 회계라고 합니다. 배를 최종인도할 시점이면 공사진행률이 거의 100%이므로 손익반영도 끝난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선박은 수주계약으로부터 대개 1년 정도 지난 시점이면 본격건조에 들어갑니다. 한 발주처와 여러 척 계약을 맺었다면 맨 나중에 인도예정인 배는 2년 이상 경과해야 착공할 수 있을 겁니다.

조선업체는 건조 총예정원가를 뽑고 여기에 적당한 마진을 붙인 금액으로 경쟁입찰에 참여하는데, 업황이 좋지 않을 때는 저가수주를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립니다. 조선업 수주 증가세와 신조선가 상승세가 뚜렷해진 것은 지난해 2분기 이후입니다. 지금 조선업체 실적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그 이전 저가수주하여 건조 중인 선박들입니다. 저가수주의 가장 큰 위험은 ‘공사손실충당부채’ 즉 이른바 ‘공손충’의 발생에 있습니다. 저가수주를 하면 선박건조 중 원가가 조금만 상승변동하여도 총예정원가가 발주처로부터 받기로 한 선박대금을 넘어섭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20년 초 수주선박을 2021년초 건조착수하였습니다. 그리고 상반기 결산을 합니다. 하반기부터는 후판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 확실한 상황입니다. 건조 중인 선박들의 남은 공사기간에다 인상된 후판가격을 적용하여 총예정원가를 점검하였습니다. 저가수주 선박들 대부분이 총예정원가가 선박대금(매출예정액)을 초과할 겁니다. 이렇게 되면 공손충이 발생하고, 이 금액은 온전히 상반기 결산시점의 공사원가에 가산됩니다.

지난해 상반기 조선 3사가 무려 3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이유가 후판가격 급등에 따른 대규모 공손충 반영에 있습니다. 한번 공손충이 인식된 선박은 이후 원가가 조금만 상승하여도 추가 공손충을 반영해야 합니다. 최종 인도 전까지 손익 불안요인으로 작용하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에는 지난해 높은 선가에 계약한 선박들의 본격건조가 시작되어 실적개선세가 가시화할 것으로 봅니다. 아울러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한국조선해양이 먼저 영업흑자를 낼 것으로 봅니다. 내년 하반기에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영업흑자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저가수주 선박 건조와 인도가 거의 마무리되기 때문입니다.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중앙일보·이데일리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오랫동안 기업(산업)과 자본시장을 취재한 경험에 회계·공시 지식을 더해 재무제표 분석이나 기업경영을 다룬 저술·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1일3분1공시』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뻔 했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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