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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비리·논문 표절 의혹 나몰라라…반지성주의 판치는 ‘아카데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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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호 22면

콩글리시 인문학

대학교수라면 누구나 한 두 번 경험했을 것이다. 학기가 끝날 때 교수들은 학점에 시달린다. “어머니가 아파서 간병하느라 학교에 못나왔습니다. 학점 좀 어떻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데 학점을 좀 올려주시면…” 답변은 시종여일하다. “효심은 갸륵하지만 한 학기 더 다니게나!” “다른 학생이 받을 장학금을 자네가 받아서 되겠나?” 저마다 딱한 사정이 있겠지만 캠퍼스의 온정주의는 공정과 상식에 어긋난다.

대학은 자유 정의 진리의 전당이다. 그리고 지성의 요람이다. 근래 이 상아탑이 무너지고 있다. 대강당 천장에서 비가 새지만 고칠 돈이 없다. 지방 대학은 정원을 채우지 못해 경영난에 처해 있다. 일부 대학은 교수들이 학생 모집책이 되어 고등학교를 찾아 다닌다. 중국 유학생이 아니면 정원 채우는 일이 쉽지 않다. 등록금은 14년째 동결돼서 대학이 고사 직전에 있다. 대학의 질을 결정하는 교육 연구 장학 예산은 해마다 축소돼 국제 저널을 구독하는 예산조차 부족하다. 포퓰리스트(populist) 정치인들의 “반의 반값 등록금”이 대학을 황폐화시켰다. 하지만 우리 대학의 위기는 다른 곳에 있다.

조국 전 장관 아들의 대학원 입시비리 의혹이 제기되자 연세대 측은 관련 자료를 분실했다고 발표했다. 어떻게 특정 학과의 자료만 3년치가 증발했을까? 그의 딸 부정입학과 관련해서 고려대와 부산대는 비겁하기 짝이 없다. 제출 서류가 가짜인가? 며칠이면 결론 낼 일을 지금까지 미적거리고 있다. 설령 위조된 서류가 당락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가짜 서류를 제출한 사실만으로도 실격 아닌가?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로 번역해 항간에 웃음거리가 된 분의 석사와 박사논문의 경우 더욱 가관이다(물론 yuji는 keep, hold, maintain, sustain 등의 명사를 써야 한다). 무슨 시효가 지났느니, 또 일부 표절이 있으나 그건 연구방법 서술이므로 크게 문제될 게 없고, 창작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일반 논문처럼 평가한다는 것은 무리다 등 기상천외한 사유를 갖다 붙이더니 마침내 “표절 아님” 면죄부를 주자, 숙대와 국민대가 충격에 빠졌다. 남의 논문을 베꼈느냐를 검증하는데 무슨 시효가 있는가? 표절은 도둑질인데 우리나라 대학의 반지성주의가 참으로 부끄럽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조국 전 교수 등 교원 2명의 징계 요구를 적시에 밟지 않은 죄로 징계를 받게 됐다. 한국 대표 지성 서울대 총장이 징계를 받다니 그 자체가 치욕이다. 서울대 교수협의회는 이 조치를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법인화된 서울대는 일반 국립대와 달리 교육부가 교원 징계를 요구하면 법인 이사회가 의결토록 돼있다.

아무튼 정치권력의 눈치를 살피는데 급급했던 오 총장은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 더욱이 최근 감사 결과, 연구비 유용 등 교직원 666명의 비위가 드러난 서울대는 복마전(伏魔殿)이 되었고 총장은 마왕(魔王)처럼 되었다. “태초에 숲이 있었고 오두막이 지어졌다. 다음으로 마을과 도시가 생겨났고 마지막으로 아카데미가 탄생했다”(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학문의 전당 아카데미(academy)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언덕 아카데무스(Akademus)에서 나왔다. 한마디로 우리 아카데미는 죽었다!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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