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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이익 최우선 정당이 사당화, 패거리 집단처럼 변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10호 22면

콩글리시 인문학

우리나라 정당사(政黨史)를 보면 지금까지 명멸한 정당이 몇 개인지 셀 수조차 없다. 1940년대 10여개 정당이 난립한 것은 정부수립 전 혼란상을 반영한 것이라 해도 1987년 민주화 이후 등장했다가 사라진 정당도 수십 개에 이른다. 그만큼 우리 정치인들은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을 되풀이해 왔다. 표방해야 할 이념과 정책보다는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따라서 ‘헤쳐 모여’가 반복돼 온 게 우리 정당의 역사다.

대개 정당명에는 자유, 민주, 공화, 정의, 한국, 국민을 즐겨 쓰이는데 웬만한 이름은 다 써먹어서 새 이름을 찾기도 어렵다. 특히 민주는 단골 이름이어서 복합 명사로 많이 쓰인다. 얼마 전에는 위성정당 열린민주당이 더불어민주당에 통합되었다. 정치인들은 국민도 선호한다. 국민당과 국민회의가 사라지자 국민의힘, 국민의당이 등장하여 다시 국민의힘이 되었다.

정당이란 여러 사람들이 한데 뭉쳐 공동의 노력으로 국가적 이익의 증대를 위해서 활동하는 집단이다.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은 정당이며 정당을 빼놓고 현대 민주주의를 논할 수 없다. 우리 정당의 현실은 어떤가? “시대의 과제를 오독하는 오만과 독선의 정당정치”라는 비판을 들어도 여야는 각자의 길(my way)을 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부를 두고 “민생은 팽개치고 정적(政敵) 제거에 골몰하느냐”고 비판하자, 국민의힘 대표는 이 대표를 겨냥해서 “도적(盜賊) 제거에 나섰다”고 반박한다.

협치와 상생, 통합과 화합으로 가야 할 정치가 결사항전의 대결구도로 바뀌었다. “선거에 지면 감옥 간다”던 이재명 대표는 국회의원이 돼 방탄쪼끼를 입더니 마침내 당 대표가 돼서 ‘만리장성’을 쌓았다. 민주당은 현대적 의미의 정당(party)이 아니라 특정인을 위한 사당(私黨), 곧 패거리(partisans) 집단처럼 돼 간다는 지적도 있다. 파티즌(partisan)이란 원래 특정 지도자나 집단 또는 사상을 추종하는 자(a person who strongly supports a particular leader, group, or ideas)를 칭하는데, 정부군에 대항해서 비밀 투쟁을 벌이는 무장 반군, 게릴라나 공비(共匪)의 뜻으로 쓰이는 빨치산도 여기서 유래한다. 빨치산은 중세 프랑스어 파흐티잔에서 나왔는데 그 뿌리는 옛 이탈리어 파르티지아노(partigiano)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조선 노동당의 활동이 불법화되면서 그 잔당들이 지리산 등에 몰래 숨어들어 조직한 게릴라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그렇다면 여당은 제 몫을 하고 있는가? 합심일체가 돼서 정부를 뒷받침해도 부족할 판에 내홍을 자초해 놓고 기껏 ‘법원은 정당 내부의 결정에 관여 말라’고 읍소나 하는 수준이다. 국민의힘을 국민의짐이라고 조롱해도 유구무언이다.

요즘 SNS를 통해서 지인이 수호지 시리즈를 보내 주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고 있다. 정당은 ‘범죄자 소굴’ 양산박(梁山泊)이 아니다. 수호지 108호걸들은 북송 말엽 부패한 조정에 항거하기 위해서 조개, 송강 등을 중심으로 뭉쳤다고 하지만 그들은 도둑, 강도, 도박꾼, 살인자 등 범죄자집단이었다. 한때 민중의 가슴에 ‘사이다’ 역할을 하지만 끝내는 정부군에 토벌되고 소멸한다. 정당은 결코 범죄자를 비호하기 위한 의리집단이 아니다.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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