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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글로벌 유니콘 절반 한국선 사업 못한다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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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글로벌 유니콘 100개사 중 55개는 한국에서 규제로 사업 불가능하거나 제한적으로만 할 수 있는 모델이다. [사진 아산나눔재단]

글로벌 유니콘 100개사 중 55개는 한국에서 규제로 사업 불가능하거나 제한적으로만 할 수 있는 모델이다. [사진 아산나눔재단]

100대 유니콘 중 55개, 규제에 막혀

승차 공유, 원격의료, 공유 숙박 등

한국에서는 에어비앤비처럼 사업할 수 없다. 관광진흥법에 따르면 도시에서 내국인 대상 공유숙박업은 불법이다. 농어촌 민박과 한옥 체험 숙소만 할 수 있다. 일부 스타트업이 규제 샌드박스의 실증특례를 받아 내국인 대상의 공유숙박업을 하고는 있지만 이런저런 부가 조건을 지켜야 해서 사업 확장이 쉽지 않다. 이를테면 농어촌 빈집을 활용하는 ‘다자요’는 전국 총 50채 이내로 공유숙박 시설을 제한받고 있다. 원격의료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정부가 한시적으로 지역과 대상 제한 없이 전화 상담과 원격 처방을 허용한 덕분에 국민은 원격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체감했다. 하지만 일부 의사단체의 반발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100대 유니콘의 절반은 한국에서 ‘온전하게’ 사업할 수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유니콘은 기업 가치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 이상인 미상장 기업이다. 아산나눔재단이 지난주 발표한 스타트업 보고서에 따르면 100대 유니콘 가운데 12개는 한국에서 사업이 아예 불가능했고, 43개는 제한적으로만 할 수 있었다. 해외에서 잘나가는 55개 유니콘이 한국에선 온전하게 제 사업을 하지 못한단 얘기다. 2017년에도 비슷한 보고서를 냈는데, 당시엔 56개사가 한국에서 제대로 사업하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나아진 게 별로 없는 셈이다.

한국의 신산업이 규제에 꽁꽁 묶여 있는 동안 해외 유니콘은 훨훨 날았다. 2017년 한국에서 제대로 사업할 수 없었던 56개 기업 중 23개는 상장사로 변신했다. 2017년 당시 누적투자액 60조원이었던 23개사는 올해 8월 말 시가총액 497조원으로 몸집이 커졌다. 승차 공유, 원격의료, 공유 숙박 같은 사업은 5년 전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제대로 사업할 수 없다. 이로 인한 사업 기회 손실만 아까운 게 아니다. 나중에 규제 개혁으로 이들 사업이 뒤늦게 허용되더라도 이미 거대한 기술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한 해외 유니콘들과 국내외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김종석 민간규제개혁위원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규제 숫자 줄이기가 아니라 규제의 품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산나눔재단 보고서는 혁신 비즈니스 도입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부 역할과 관련해 ‘낡은 잣대로 신산업을 규제하지 않는다’는 중국 리커창 총리의 원칙을 제시했다. 미국보다 많은 217개 유니콘 기업(2019년)을 중국이 키워낸 힘은 여기서 나왔을 것이다. 부가 조건을 과도하게 달아 시범사업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부의 마음자세다. 규제 혁신을 강조하면서 낡은 잣대로 신산업을 재단하고 있는 건 아닌지 철저한 반성부터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