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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선제적 핵공격’ 법에 못박은 북한의 위험한 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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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은 “비핵화 없다”… 경제난 속 초강수

지난 8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회의에서 시정연설 중인 김정은 국무위원장. 9일자 노동신문 사진이다. 최고인민회의는 이날 핵무력 지휘통제체계 및 사용 계획을 명시한 법령을 채택했다. [뉴스1]

지난 8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회의에서 시정연설 중인 김정은 국무위원장. 9일자 노동신문 사진이다. 최고인민회의는 이날 핵무력 지휘통제체계 및 사용 계획을 명시한 법령을 채택했다. [뉴스1]

확장 억제 내실화, 창의적 북핵 정책 필요

북한이 추석 명절 국민의 마음을 짓눌렀다. 국제사회를 속이고 40년 핵개발에 매달린 북한은 기어이 ‘핵보유국’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핵공격 지침을 담은 법령까지 제정했다. 지난 9일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있었던 최고인민회의 핵무력 법령 채택 사실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을 소개했다. 김정은은 “미국의 목적은 우리 정권 붕괴”라며 “절대 비핵화란 없으며 (협상)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했다.

채택된 11개 항의 법령은 핵무기 사용 명령의 절대적 권한을 김정은에게 부여하고, 북한 지휘부가 위험에 처할 경우 핵공격 작전 계획이 자동적으로 시행된다고 명시했다. 또 공격 임박으로 판단한 경우 유사시 전쟁 장기화를 막고 주도권 장악을 위해 불가피할 때, 국가 존립 및 인민 생명 안전의 파국적 위기 상황 등에서 핵무기를 사용한다고 했다.

선제적 핵공격은 물론 심지어 내부 반란이 나도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노골적·공세적 핵협박이다. 김정은은 법령을 두고 “핵을 흥정할 수 없게 불퇴의 선을 그어놓은 것, 핵보유국 지위가 불가역적이 된 것”이라고 했는데, 미국과 대등한 핵보유국 지위로 핵 군축 협상만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김정은은 지난 10년간 핵실험 네 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미사일 실험은 수십 차례 했다. 우크라이나전과 미·중 대결 속에 중국·러시아의 절대적 비호를 업은 김정은이 이날 ‘핵개발 고도화의 불가역성’까지 주장한 만큼 7차 핵실험, 추가 미사일 도발을 할 가능성이 크다.

마침 오는 16일 워싱턴에서 한·미 간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가 예정된 건 핵위협 대응 차원에선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문제는 다른 차원으로 꼬여버린 북핵 해법이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더 큰 승리(핵개발)를 위해 “사랑하는 인민들과 아이들이 허리띠를 더 조이고 배를 더 곯아야 했다”고 토로했다. 수십 년 폐쇄 정책과 코로나 봉쇄, 홍수 등으로 북한 경제가 최악이 됐고 이런 위기 상황이 이번 핵무력 법제화 도발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핵 고도화의 길을 끊임없이 가면서도 협상 판을 키우려 김정은이 던진 초강수란 설명이다.

정부는 미국과 확장억제력의 내실화를 꾀하고 군사 도발엔 엄중하게 대응하되, 지난 정부들이 답습한 북핵 대응 방식을 넘어 그야말로 담대하고 창의적이고 실효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북·미 간 대화를 막후에서 조정하는 것도 방법이며, 일본과의 안보 협력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더 중요한 건 핵을 거머쥘수록 정권은 더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을 김정은 위원장이 직시하는 일이다. 아울러 여야 정치권이 안보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해 한목소리로 결연히 대응하길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