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케임브리지 출신 유전체 석학교수, 코스닥 기업 대표 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혁신창업의 길 30. 클리노믹스 박종화 대표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가 캠퍼스 내에 있는 자신의 창업기업 클리노믹스에서 게놈연구와 기술사업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UNIST]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가 캠퍼스 내에 있는 자신의 창업기업 클리노믹스에서 게놈연구와 기술사업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UNIST]

2003년 마무리된 인간 게놈(유전체) 프로젝트는 생명공학 연구와 바이오 산업의 지도를 바꿔놓고 있다. 생명체의 본질을 염기서열 단위까지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질병의 근원을 진단하고, 더 나아가 치료까지 하는 새로운 산업에 세계 주요국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게놈을 연구하는 대학이나 연구소의 연구ㆍ개발(R&D)이 그 시작이다. 여기에 연구자들이 자본과 손을 잡으면서 주목받는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 등 서구 선진국들이 앞서고 있지만, 출발선이 오래지 않았기에 한국 등 후발국들의 기회도 적지 않다.

클리노믹스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을 대표하는 교수창업 1호 기업이면서, 2020년 12월 코스닥에 상장된 주목받는 생명공학 기업이다. 국내 게놈 연구의 권위자인 박종화(55) 생명과학부 교수가 포항공대에서 유전학을 전공한 김병철(57) 박사와 함께 창업했다. 2011년 두 사람이 함께 창업한 액체생검 및 암진단 전문 클리노믹스와, 2014년 박 교수가 UNIST에서 시작한 유전체 분석 스타트업 제로믹스가 4년 뒤 합병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박 교수는 영국 스코틀랜드 에버딘대학에서 생화학 학사를,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생정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 게놈 연구의 본산, 생어연구소의 생정보학 총책임자 팀 허버드가 그의 지도교수다. 이후 세계 게놈 관련 R&D의 대부라 불리는 조지 처치 하버드대 의대 교수 아래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다. 국내에서는 KAIST 교수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국가생명정보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박 교수는 생명공학연구원 근무 당시인 2009년 한국인 최초로 인간게놈지도를 완성했고, UNIST 교수로 부임한 2년 뒤인 2016년 한국의 국민표준 게놈지도(KOREF)를 만드는 성과를 올렸다. 당시 이 같은 연구를 통해 한국인 고유의 유전적 특징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확한 질병 원인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연구성과는 연구실에만 머무를 수 없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보스턴의 대학들이 그러하듯 창업, 즉 기술사업화로 이어진다. 박 교수는 “케임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교수로 은퇴할 때까지 순수하게 연구만 하는 게 적성에 맞긴 했지만, 사업을 통해서 게놈기술을 상용화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특히 게놈기술을 한국의 IT산업과 융합해 일반인들이 더 빨리 이 기술의 혜택을 받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클리노믹스는 창업 당시 병원을 대신해 환자 DNA를 분석해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인체에서 유래하는 바이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질병 예측과 진단을 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있다. 게놈 외에도 전사체(transcriptome:발현된 모든 RNA의 총합)ㆍ대사체(metabolome) 등 생체물질을 포함하는 총체적 개념인 다중오믹스(multi-omics)가 기본 대상이다. 이를 인공지능 머신러닝이나 통계ㆍ시뮬레이션 등으로 분석해 질병을 예측하고, 더 나아가 개개인에 맞는 정밀의료를 위한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클리노믹스의 공동창업자 김병철 박사와 박종화 교수

클리노믹스의 공동창업자 김병철 박사와 박종화 교수

박 교수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질병을 진단하는 비즈니스는 이미 있지만 이는 적은 수의 유전 정보를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검사의 한계가 있다”며 “유전체는 한차례 검사만을 통해 수천, 수만 개 이상의 유전정보를 포함한 대용량 분석을 하고 이를 통해 복합질환이나 희귀질환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게놈 즉 유전체 외에도 전사체ㆍ대사체 등 다수의 오믹스 정보를 분석하면 기존 정밀진단을 넘어 모든 질병을 포함한 생체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를 ‘게놈 2.0 시대’라 불렀다.

혈액 등 액체생검을 이용한 질병진단도 클리노믹스가 강점으로 가지고 있는 분야다. 신체의 특정 부위에 초기 암세포가 자랄 땐 그 조각의 일부가 피로 빠져나온다. 클리노믹스는 이런 미세한 혈중 종양세포 조각에서 암, 특히 폐암의 DNA를 분리해 조기진단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박 교수는 “최근까지 암 진단은 특정 부위 조직의 세포를 떼어내 검사하는 방법을 주로 쓰고 있다”며 “혈액 속 작은 암세포 파편을 고감도로 모니터링하면 어느 부위에 암이 생겨나고 있는지를 알아내 조기치료 수 있다”고 말했다.

개ㆍ고양이 등 반려동물 시장도 클리노믹스가 새로 열고 있는 시장이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펫(pet) 시장을 노린 사업영역이다. 반려동물의 구강상피세포 등을 채취해 질병뿐 아니라 혈통과 품성 등도 분석해준다. 시장이 큰 미국에선 현지 지사를 통해 이미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올해 안에 반려견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클리노믹스는 UNIST 교원창업 기업의 맏형이지만, 넘어서야 할 벽이 적지 않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진단시약으로 554억원 매출에 22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연간 매출은 100억원에 못미쳤고,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느라 적자를 넘어서지 못했다. 당장 올해부터 코로나19 특수가 잦아들면서 매출도 영업이익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박 교수는 “지난 2년간 코로나19 특수에 대응하느라 피검사 등 액체생검을 통한 폐암 조기진단과 같은 회사의 주력 부분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었다”며 “지금까지 연구 중심이었던 회사의 구조를 제품 상용화와 본격적 영업의 단계로 키워나가야 할 단계”라고 말했다.

클리노믹스의 충북 오송 지사. 바이오 단지인 오송에 암연구소 및 빅데이터센터를 두고 있다. [사진 클리노믹스]

클리노믹스의 충북 오송 지사. 바이오 단지인 오송에 암연구소 및 빅데이터센터를 두고 있다. [사진 클리노믹스]

회사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우수인력 확보도 숙제다. 클리노믹스는 울산 UNIST 캠퍼스 내에 본사 겸 다중오믹스연구소를, 충북 오송에는 암연구소 및 빅데이터센터를 두고 있다. 경기도 수원 광교에는 영업조직 등을 위한 지사가 있다. 수도권에서 먼 지역에 본사를 둔 기업들이 흔히 쓰는 전략이다. 한국은 미국 캘리포니아보다 땅덩어리가 작은 나라이지만, 인구의 절반이 몰려있는 수도권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 비즈니스를 하기 쉽지 않다.
박 교수는“클리노믹스는 UNIST 창업 기업이라 그나마 지금까지 연구인력을 보충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많은 스타트업들이 수도권이 아니고는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BT) 융합인력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2011년 창업 이후 12년차, 바이오 스타트업 클리노믹스는 애초 그림대로 성장하고 있을까.  박 교수는“돌이켜보면 창업 당시 세운 목표의 30% 정도 온 것 같다”며 “UNIST에서 창업을 한 덕에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규제 때문에 종종 처음부터 미국 같은 외국에서 시작했으면 하는 후회 같은 게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재 임상시험수탁기관(CRO) 출신의 정종태 대표와 각자대표 형식으로 클리노믹스를 이끌어가고 있다.  정 대표가 경영 전반을, 박 교수는 사실상 최고기술경영자(CTO) 역할을 맡고 있다. 공동창업자인 김병철 박사는 미국 샌디에고에 있는 미주법인을 이끌면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권순용 UNIST 산학협력단장은 “클리노믹스는 울산에서 창업한 후 곧바로 미국 등 해외법인을 만들어 사실상 수도권 1극 체제하의 우리나라 현실에서 수도권을 거치지 않고 지방에 소재한 기술창업기업의 좋은 롤모델”이라며“현재는 사업화 등에 있어 약간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게놈 기반 암 질병 치료와 관련한 원천기술들을 논문 게재와 특허 등을 통해 보유하고 있어 고비를 잘 극복하면 글로벌 혁신창업기업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고 말했다.

UNIST는 2009년 개교 이래 63개의 교원창업 기업과 77개의 학생창업 기업을 배출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창업기업이 많은 이유는 창업 관련 일부 금지 규정 외에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의  창업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교내에 민간 액셀러레이터가 상주해 창업을 원하는 교수나 학생에 도움을 주는 등 창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이용훈 UNIST 총장은 “유니스트가 목표로 하는 게 MIT와 같은 세계적 연구중심 대학인데, MIT는 연구결과를 창업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세계적 대학들 사이엔 이제 연구의 결과를 탑저널의 논문으로 올리는데 그치지 않고 특허출원과 이를 바탕으로 기술사업화로 연결시키는 게 자연스럽다”고 말했다.이 총장은 “교수 창업이 교육이나 연구에 방해되지 않느냐는 반론도 적지 않지만 미국 주요대학 내 딥테크 기술 개발의 경우 전체 기획에 연구와 논문 게재, 창업을 위한 펀딩이 포함될 정도로 연구와 창업이 별도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