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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슈즈 벗고 CEO로 2년 유니버설 재단 문훈숙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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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인터뷰 도중 그는 자꾸 눈을 피했다. 대신 옆자리에 동석한 직원에게 말을 건네듯 답변을 했다. 눈을 피한다는 거, 기본적으로 내성적이고 사람을 쉽게 사귈 수 없다는 걸 말한다. 천성 예술가일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그러나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을 건드리자 그도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니버설 발레단 문훈숙(43) 단장. 무용 팬들에겐 여전히 '지젤'의 헤로인으로 각인된 그가 최고경영자(CEO)로 변신 중이다. 아니 이미 2년 전 유니버설 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으니 경영자로서의 경험도 어느 정도 쌓았다고 볼 수 있다. 취임 후 그가 이룩한 첫 번째 성과는 바로 지난달 재개관한 유니버설 아트센터(구 리틀엔젤스 예술회관). 25년 된 극장을 리모델링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공연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사진=김경빈 기자]

"무용 등 순수예술과 수익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다 고려해야겠죠. 앞으로 만찬도 할 수 있는 고급 공연장으로 만들고 싶어요."

발레단.공연장.발레 아카데미 등이 문화재단의 산하 단체다. 소속 직원.단원만도 170여 명에 이른다. 줄곧 무대 위 발레리나로만 살아온 그로선 이런 방대한 조직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터다.

"제가 가장 중심에 둔 것은 조직의 슬림화입니다. 방만한 조직을 통합해 효율성을 높이는 일은 예술단체라고 예외가 있을 수 없으니깐요. 이와 함께 단체의 세대교체도 제가 역점을 둔 사안이었죠."

구조조정.중앙시스템 강화 같은 딱딱한 용어도 튀어나왔다. 부드럽고 우아한 이미지와는 영 안 어울릴 듯 보이건만 "저도 필요할 땐 단호해집니다"라며 입술을 질근 물었다.

그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과 문선명 총재다. 그는 스물한 살 때 교통사고로 사망한 문 총재의 둘째 아들과 영혼 결혼식을 올렸다. 사무실 한 쪽에 죽은 남편과 그가 함께 있는 합성 사진이 놓여져 있었다. 얘기 중간 남편에 대한 애틋함이 자주 묻어 나왔다.

"간혹 주변에서 '사랑을 안 해 보고 어떻게 애절한 여주인공을 표현할 수 있느냐'라고들 해요. 그럴 때마다 전 속으로 '땅 위에서 사랑할 수 없기에 누구보다도 제 가슴에 켜켜이 쌓아온 이 간절함을 너희가 아니'라고 답하죠."

그래도 여자 혼자로 살아가는 게 외롭지 않으냐, 손 붙잡고 가는 부부를 보면 부럽지 않으냐라며 집요하게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확고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자신이 없었다면 애당초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죠. 이런 삶 역시 제가 선택한 것이며 숙명입니다."

남편은 비록 없지만 그는 현재 두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다. 큰애 신철(14)과 둘째 신월(3)이다. 모두 친지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그는 요즘 신월이랑 같이 사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처음엔 나이 마흔에 무슨 또 고생일까 싶었는데 여자애는 확실히 다르던데요. 즉각 반응하고 애교부리고 살갑게 대하죠. 뭐랄까, 통하는 느낌이에요. 전 요즘 저녁 약속 거의 안 잡고 집에 일찍 가요."

그래도 고민은 있어 보였다.

"아이가 벌써 커서 '엄마, 왜 우린 아빠가 없어'라고 물어요. 설명하고 이해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죠. 그래도 신월이는 저를 쏙 빼닮았으니 가슴으로 잘 받아들일 거라 믿어요."

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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