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발레단 문훈숙(43) 단장. 무용 팬들에겐 여전히 '지젤'의 헤로인으로 각인된 그가 최고경영자(CEO)로 변신 중이다. 아니 이미 2년 전 유니버설 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으니 경영자로서의 경험도 어느 정도 쌓았다고 볼 수 있다. 취임 후 그가 이룩한 첫 번째 성과는 바로 지난달 재개관한 유니버설 아트센터(구 리틀엔젤스 예술회관). 25년 된 극장을 리모델링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공연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사진=김경빈 기자]
발레단.공연장.발레 아카데미 등이 문화재단의 산하 단체다. 소속 직원.단원만도 170여 명에 이른다. 줄곧 무대 위 발레리나로만 살아온 그로선 이런 방대한 조직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터다.
"제가 가장 중심에 둔 것은 조직의 슬림화입니다. 방만한 조직을 통합해 효율성을 높이는 일은 예술단체라고 예외가 있을 수 없으니깐요. 이와 함께 단체의 세대교체도 제가 역점을 둔 사안이었죠."
구조조정.중앙시스템 강화 같은 딱딱한 용어도 튀어나왔다. 부드럽고 우아한 이미지와는 영 안 어울릴 듯 보이건만 "저도 필요할 땐 단호해집니다"라며 입술을 질근 물었다.
그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과 문선명 총재다. 그는 스물한 살 때 교통사고로 사망한 문 총재의 둘째 아들과 영혼 결혼식을 올렸다. 사무실 한 쪽에 죽은 남편과 그가 함께 있는 합성 사진이 놓여져 있었다. 얘기 중간 남편에 대한 애틋함이 자주 묻어 나왔다.
"간혹 주변에서 '사랑을 안 해 보고 어떻게 애절한 여주인공을 표현할 수 있느냐'라고들 해요. 그럴 때마다 전 속으로 '땅 위에서 사랑할 수 없기에 누구보다도 제 가슴에 켜켜이 쌓아온 이 간절함을 너희가 아니'라고 답하죠."
그래도 여자 혼자로 살아가는 게 외롭지 않으냐, 손 붙잡고 가는 부부를 보면 부럽지 않으냐라며 집요하게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확고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자신이 없었다면 애당초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죠. 이런 삶 역시 제가 선택한 것이며 숙명입니다."
남편은 비록 없지만 그는 현재 두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다. 큰애 신철(14)과 둘째 신월(3)이다. 모두 친지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그는 요즘 신월이랑 같이 사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처음엔 나이 마흔에 무슨 또 고생일까 싶었는데 여자애는 확실히 다르던데요. 즉각 반응하고 애교부리고 살갑게 대하죠. 뭐랄까, 통하는 느낌이에요. 전 요즘 저녁 약속 거의 안 잡고 집에 일찍 가요."
그래도 고민은 있어 보였다.
"아이가 벌써 커서 '엄마, 왜 우린 아빠가 없어'라고 물어요. 설명하고 이해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죠. 그래도 신월이는 저를 쏙 빼닮았으니 가슴으로 잘 받아들일 거라 믿어요."
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