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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기찬의 인프라

“현 노동제도는 기득권 유지용, 디지털·MZ세대 맞춰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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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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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런 숄즈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는 “무엇이 한국의 성장과 혁신을 지연시키고 있는지 깊이 진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앙일보 9월 5일자 8면〉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시장에 주목하고,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정부 주도나 노사 협상을 통한 노동개혁에는 고개를 저었다. 과거 전례로 볼 때 산업현장과 동떨어진, 결국에는 노사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곤 해서다. 그래서 정파를 초월한 전문적 식견을 구하려 했다.

‘미래노동시장 연구회’의 출범은 그 일환이다. 노동경제와 인사노무 전문가로 구성됐다. 유럽의 병자이던 독일을 경제 강국으로 일으켜 세운 하르츠 개혁도 전문가 주도의 노동개혁이었다. 연구회 좌장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를 만났다.

연공형 임금체계, MZ에겐 불공정
공장시대때 만든 근로시간도 속박
양극화·고령화·청년실업·디지털화
4대 개혁 못하면 노동격차 화석화

권순원 교수는 “근로시간의 운용과 배분은 노사 자치에 맡기고, 정부는 일일이 통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근로자 건강권을 지키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권순원 교수는 “근로시간의 운용과 배분은 노사 자치에 맡기고, 정부는 일일이 통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근로자 건강권을 지키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일각에서 연구회를 정부 정책을 운반하는 수단(Vehicle)이라고 비판한다.
“정부가 연구회의 활동에 개입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연구회를 비판하는 쪽은 노사 협상으로 개혁하자고 한다. 한데, 노사 단체는 대표권을 가졌지만, 회원들의 대리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자기주장을 반복할 뿐, 제대로 된 개혁을 기대하기 힘들다. 연구회는 전문가들이 독립적으로 시장구조와 상황을 분석하고 연구해서 대안을 마련하는 작업을 한다. 그런 면에서 정부라는 말 위에 올라탄 기수다. 정부가 학자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가 정부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쌓여있다.
“사실이다. 그중 가장 시급한 것이 노동시장 양극화다. 기업 규모, 고용형태, 노조 유무, 성별에 따른 임금 등 격차가 크다. 이는 단기 해결이 어려운 구조적 이슈다. 노동시장의 고령화도 빼놓을 수 없다. 베이비붐 세대는 1680만명으로 인구의 32.6%인데, 한꺼번에 은퇴 중이다. 고령화는 경험하지 못한 미증유의 사회문제다. 청년 실업도 과제다. 어려서부터 가혹한 토너먼트를 통과하며 살아온 청년에게 취직·인사제도는 공정성 판단의 대상이다. 디지털과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 또한 노동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4가지를 해결하지 못하면 노동시장은 현재 상태로 화석화할 수 있다.”

경직된 임금·근로시간 먼저 수술 필요

산적한 문제를 묶음으로 안 다루고, 임금·근로시간을 수술대에 먼저 올린 이유는.
“4가지 문제의 근저에 연공에 기반한 경직적 임금·인사제도와 근로시간 규제가 내재해 있어서다. 연공형 임금체계는 한 기업에서 오래 근무할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한 배타적 제도다. 내부자, 즉 대기업·정규직·남성·노조원에게만 연공을 쌓을 기회가 주어진다. 외부자인 중소기업·하청·비정규직·무노조·여성 근로자는 연공을 못 쌓는다. 격차가 구조화되고 공고화한다. 내부자와 외부자를 갈라치기를 하는 제도가 됐다.”
숄즈 교수는 저출산을 지적하며 ‘은퇴연령 연장’을 한국에 권고했다.
“임금체계 개편 없이는 불가능하다. 연차가 높아질수록 임금수준이 올라가는 하방 경직의 구조 하에서 고령자 고용 유지는 초과비용이다. 기업으로선 명예퇴직처럼 돈을 주더라도 내보내려 하게 돼 있다. 법정 정년이 60세지만 주된 직장의 은퇴연령이 50세 안팎인 것은 이 때문이다.”
MZ세대는 연공형 임금체계에 거부감을 표한다.
“586등 기성세대가 취업할 때는 경제성장률이 10%를 웃돌았다. 기업이 계속 성장하니 장기근속을 유도할 필요가 있었고, 근로자도 평생직장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경제성장률은 2~3%대다. MZ세대는 ‘이 정도 성장하는 회사에서 60세까지 동반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한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졌다. MZ세대에게 회사는 불확실한 미래다. 그런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양보하려 않는다. 심지어 승진 사다리에 얽매이지 않는다. 일에 종속돼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자하려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득권 유지용인 연공형 임금체계가 MZ에게 불공정하게 인식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 통제 대신 노사 자치 전환해야”

현 근로시간 체계도 MZ세대에겐 속박일 수 있겠다.
“디지털에 익숙한 MZ에게 공장 근로 시대에 제정된 현행 근로시간제도가 부합할 리 만무하다. 근로시간이 생산성을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MZ세대가 지향하는 공정성과 일·생활 균형의 가치에 맞지 않는다.”
개편 방향은 어떻게 잡고 있나.
“노동시간 단축은 불가피하다. 다만 어떤 방법이 총 근로시간 감소에 도움이 될지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기업은 경기변동과 물량 수요에 근로시간 조정으로 대응해 왔다. 고용조정이 불가능한 조건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는 장시간 초과근로를 유인했으며, 근로시간이 곧 임금이었던 제조업 핵심계층의 고임금을 가능하게 했다. 이런 방식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지속하기 어렵다. 근로시간 보다는 노동의 결과에 기반해 임금을 산정할 수 있다면 장시간 노동의 필요가 줄어들 것이다.”
그동안 임금이든, 근로시간이든 정부가 미주알고주알 통제해왔다.
“정부가 노동시장을 관리하는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 정부와 제도의 역할은 장시간, 야간 또는 위험 근로에 따르는 건강위험을 관리하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 나머지 시간 운용과 배분은 노사의 자치에 위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업종도, 근로 형태도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정부가 획일적으로 관리하려 드나. 그건 정부의 지배 개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