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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달러·원화 약세…8월 외환보유액, 한 달 새 22억 달러 감소

중앙일보

입력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한 달 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나라의 외화 곳간에서 빠져나간 외화만 266억9000만 달러(약 36조6000억원)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주변 여건은 만만치 않다. 원화가치는 2009년 4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단기 외채 비율은 1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는 등 각종 경고신호가 일제히 들어오면서다.

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에 달러당 원호값이 전날보다 9.1원 내린 1371.70원을 나타내고 있다. 뉴스1

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에 달러당 원호값이 전날보다 9.1원 내린 1371.70원을 나타내고 있다. 뉴스1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8월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364억3000만 달러로 7월 말(4386억1000만 달러)보다 21억8000만 달러 감소했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3개월 연속 감소하다 지난 7월 소폭 증가세(3억3000만 달러)로 돌아섰다.

올해 들어 외환보유액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지난 6월에는 한 달 만에 94억3000만 달러가 줄어들며, 월 감소 폭으로는 2008년 11월(-117억5000만 달러)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4631억2000만 달러)보다 266억9000만 달러가 줄었다.

한은은 외환보유액 감소 원인을 강달러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1973=100)는 지난달 2.3% 올랐지만, 유로화(-1.7%)와 파운드화(-4.2%), 엔화(-3.2%) 등 다른 통화는 가치가 떨어졌다.

한은 관계자는 "외화자산 운용수익과 금융기관 외화예수금 증가 등에도 기타 통화 외화자산의 달러 환산액 감소로 외환보유액이 줄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 외화자산 중 달러 외의 기타 통화 자산 비중은 31.7% 수준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원화가치 방어를 위해 보유하던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판 것도 외환보유액 감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은 올해 1분기 외환시장에서 83억1100만 달러를 내다 팔았다. 특히 지난달에는 원화가치가 달러당 1298.3원(8월 5일·종가기준)에서 1350.4원(8월 29일)까지 떨어지는 등 변동성이 심했다. 지난달 은행 예금 성격의 외화 예치금에서만 53억 달러가 줄어들었다.

한은은 외환보유액이 부족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외환보유액 절대 규모로도 7월 말 기준(4386억달러)으로 세계 9위 수준인 데다, 경상수지 흑자 등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도 과거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대외자산-대외부채)은 7441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5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원화 절하로 한국 외환시장에 유동성 문제가 있고, 외환보유액이 부족해 1997년이나 2008년 같은 외환 위기 사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지 않냐는 우려가 있는 것 같다”며 “한국은 순채권국이기 때문에 유동성이나 신용 위험보다는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물가를 더 걱정하고 있다. 예전과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하지만 최근 외환시장이 불안한 데다 무역수지 적자까지 겹치며 외환보유액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외지급능력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의 비율은 지난해 말(38.2%)에서 올해 2분기 말 41.9%로 높아졌다. 2012년 2분기(45.6%)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다. 해당 비율이 40%를 넘어선 건 2012년 3분기 이후 처음이다. 올해 1~8월 무역적자도 247억2300만 달러로 역대 최대 규모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 권고 수준을 밑도는 것도 불안감의 요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으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IMF 권고치(6455억5000만 달러)에 2000억 달러가량 미달했다. 가장 엄격한 세계결제은행(BIS) 기준(7839억1000만 달러)을 맞추려면 외환보유액을 3500억 달러 더 쌓아야 한다.

다만 이 총재는 지난달 25일 “제가 IMF에서 왔다”며 “IMF의 어느 직원도 한국에 와서 외환보유액을 더 쌓으라고 얘기할 사람이 없다"며 "그런 기준은 작은 신흥국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은 부총재보를 지냈던 강태수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는 “외환보유액은 사용할 때보다 충분하게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효과가 더 좋다”며 “현재 원화 약세가 강달러 현상에 기인한 점도 있는 만큼 섣불리 외환보유액을 사용하기보다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때 합의했던 외환시장 안정화를 위한 협력이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등 외환시장에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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