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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감정갔더니 '어디서 봤지'…35년전 도둑맞은 불화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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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제작된 독성도. 대구 달성군 용연사 불화였다가 도난됐던 것으로, 지난해 8월 발견해 올해 조계종으로 회수됐다. 사진 문화재청

1871년 제작된 독성도. 대구 달성군 용연사 불화였다가 도난됐던 것으로, 지난해 8월 발견해 올해 조계종으로 회수됐다. 사진 문화재청

'저 얼굴을 어디서 봤더라?'

지난해 8월 부산 백운사에 문화재 지정신청 현장감정을 나간 문화재청 김미경 문화재위원은 불화 '독성도'(獨聖圖)에 그려진 독성(혼자 깨우쳐 성인이 된 사람)의 특이한 얼굴 표현을 보고 '어디서 많이 봤는데'라고 생각했다. 2주 쯤 지난 뒤 경남 거제 대원사로 나간 문화재 지정신청 감정에서도 김 위원의 머릿속엔 물음표가 떠올랐다. '신중도'(神衆圖·여러 신을 그린 그림)를 보고 또 '어디서 봤더라?' 생각하던 중, 그림 아래 제작 시기와 제작자, 소장처 등을 적어두는 화기 중 일부가 지워진 흔적을 발견하고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품은 채 돌아왔다.

이 두 작품은 결국 과거에 도난된 불화로 밝혀졌다. 문화재청은 5일 1987년 도난됐던 대구 달성군 용연사 불화 ‘독성도’와 2000년 도난된 구례군 천은사 불화 ‘신중도’를 회수해 조계종에 반환한다고 밝혔다. 독성도는 35년만, 신중도는 22년만의 귀환이다.

1897년 제작된 신중도. 전남 구례군 천은사 불화로, 경남 거제도 대원사에서 발견됐다. 사진 문화재청

1897년 제작된 신중도. 전남 구례군 천은사 불화로, 경남 거제도 대원사에서 발견됐다. 사진 문화재청

지난해 8월 두 불화 모두 현장 감정을 나가 도난 불화라는 사실을 알아낸 김미경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은 "도난 문화재 사진은 평소에 워낙 많이 봐서 머릿속에 담겨있는데, 현장에서 '어디서 봤더라?' 하는 느낌이 시작이었다"며 "10년 넘게 감정을 다녔지만 도난 문화재를 발견하는 일은 흔치 않고, 한 달에 두 건의 도난 문화재를 찾아낸 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적천사 백련암' 적힌 독성도, 부산 백운사에서 발견 

조계종 사찰인 대구 달성군 용연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던 ‘독성도’는 1871년 제작된 불화로, 세로 99.8㎝, 가로 73.3㎝ 비단에 채색한 작품이다. 원래 경북 청도 적천사 백련암에 있다가, 조선 말기에 암자가 없어지면서 인근 용연사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한다. 불화 하단에 제작 연월일과 제작자 등을 적은 ‘묵서’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있고, 그림이 있는 부분만 잘라 액자 형태로 새로 표구된 채 보관돼왔다.

1987년 8월 도난 신고가 들어온 이후 행적이 알려지지 않다가, 태고종 사찰인 부산 백운사(주지 대원스님)가 지정문화재 신청을 하며 존재가 알려졌다. 지난해 8월 문화재청 조사 과정에서 과거 도난 신고가 들어간 작품인 사실이 확인됐다. 백운사 측은 평소 교류가 있던 진기스님이 2018년 입적하기 전 사찰에 기증한 뒤 백운사 내 삼성각(독성당)에 보관해왔다고 설명했다. 진기 스님은 부산에서 화랑을 운영해왔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천은사 도계암' 문질러 지운 자리, 회색 보풀 뚜렷

신중도 하단 제작자, 제작시기 등을 적은 화기 중 '천은사 도계암'이 적혀있던 자리만 문질러져 지워져 회색 면만 남았다. 현장 감정을 나간 문화재위원은 화기가 지워진 걸 보고 도난 문화재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실제로 이후 조사 결과 2000년 신고된 도난 문화재로 밝혀졌다. 사진 문화재청 정진희 문화재감정위원

신중도 하단 제작자, 제작시기 등을 적은 화기 중 '천은사 도계암'이 적혀있던 자리만 문질러져 지워져 회색 면만 남았다. 현장 감정을 나간 문화재위원은 화기가 지워진 걸 보고 도난 문화재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실제로 이후 조사 결과 2000년 신고된 도난 문화재로 밝혀졌다. 사진 문화재청 정진희 문화재감정위원

역시 조계종 사찰인 전남 구례군 천은사 암자 도계암에 모셔져 있던 불화 ‘신중도’는 1897년 제작된 불화로, 세로 192.3㎝, 가로 126.0㎝의 면에 채색한 작품이다. 제작 연도와 제작자, 소장처 등을 기록한 묵서 중 ‘천은사 도계암’ 글자만 의도적으로 지워져 있지만, 작품 전체적인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도난 이전 1998년 성보문화재연구원이 불화집을 만들며 조사한 기록이 있어 훼손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천은사 도계암’을 문질러 지운 자리는 회색 보풀이 일어 흔적이 뚜렷하다.

신중도 하단 화기 중 '구례군 천은사'를 문질러 지운 자리. 면을 문지른 자리에 울룩불룩하게 천이 밀려 보풀이 뭉친 흔적이 보인다. 사진 문화재청 정진희 문화재감정위원

신중도 하단 화기 중 '구례군 천은사'를 문질러 지운 자리. 면을 문지른 자리에 울룩불룩하게 천이 밀려 보풀이 뭉친 흔적이 보인다. 사진 문화재청 정진희 문화재감정위원

2000년 10월 도난 신고된 이후 행방이 알려지지 않다가 역시 지난해 8월 태고종 사찰 거제도 대원사(주지 자원 스님)가 경상남도 지정문화재 신청을 하며 존재가 확인됐고, 대원사는 이 작품을 차방에 보관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설명에 따르면 사찰 측은 신중도를 2019년 11월 서울 종로구 가회동 명인박물관으로부터 기증받았다고 설명했다. 명인박물관은 대원사 한 스님의 요청으로 신중도를 사찰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 특사경, 직접 수사 확대

2000년 도난 이후 명인박물관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신중도의 유통과정에 대해서는 문화재청이 추가로 조사를 할 예정이다. 그간 도난 문화재 수사를 경찰과 공조해 진행해온 문화재청 특별사법경찰은 이번 사건을 시작으로 직접 수사를 늘릴 예정이다.

백운사와 대원사 측은 불화가 도난문화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탱화는 신앙의 대상으로, 지금이라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조계종 측에 기증 의사를 밝혔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6일 오후 2시 조계종 총무원(한국불교역사기념관)에서 환수 고불식(부처님 앞에 알리는 행사)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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