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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문이 열렸다, 한국미술 '위기'와 '기회' 기로에 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전시장의 관람객. [뉴시스]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전시장의 관람객. [뉴시스]

데미안 허스트, 피카소, 샤갈 등의 작품을 선보인 로빌란트 보에나 갤러리. 전면으로 보이는 것은 데미안 허스트 작품으로 가격은 38억원에 육박한다. [이은주 기자]

데미안 허스트, 피카소, 샤갈 등의 작품을 선보인 로빌란트 보에나 갤러리. 전면으로 보이는 것은 데미안 허스트 작품으로 가격은 38억원에 육박한다. [이은주 기자]

국내에서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고서적을 선보인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의 한 전시장. [이은주 기자]

국내에서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고서적을 선보인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의 한 전시장. [이은주 기자]

박물관이나 미술관 전시가 아니다. 판매할 목적으로 열린 큰 미술 장터다. 그런데 장터에 펼쳐진 상품이 범상치 않다. 과거에 이집트 미라가 담겼을 나무관이 나왔는가 하면,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진품 드로잉과 회화도 나란히 전시됐다. 미술관에서나 보던 마르크 샤갈, 조지오 모란디의 아담한 크기의 작품도 나왔다. 각 작품의 가격은 수 십억원이다.

"키아프 이대론 안 된다"도 #서울 코엑스에 몰린 관람객 #아시아 최대 규모 미술장터 #프리즈서울과 키아프 서울 #화랑협회 주최 키아프 썰명 #"무한경쟁시대 열린 것" #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의 첫 한국 행사인 ‘프리즈 서울’(이하 프리즈)과 한국화랑협회가 주관하는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 서울·이하 키아프)가 2일 코엑스에서 개막해 연일 성황을 이루고 있다. 개막일부터 VIP 관람객이 장사진을 이룬 데 이어 행사 3일 차인 4일에도 전시장 입구는 관람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코엑스 1층 A·B홀에서 키아프(화랑 164개), 3층 C·D홀(화랑 110여 개)에서 프리즈가 열리며 300개에 육박하는 갤러리가 한 곳에 모였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열린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가 한국 미술사에 중요한 분수령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번에 가장 시선을 끈 것은 국내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프리즈였다. 세계 최정상 갤러리인 가고시안·하우저앤워스·리슨갤러리 등이 참여했고, 고지도와 고서적을 취급하는 갤러리도 나왔다. "아니, 이런 작품을 여기 서울에서 이렇게 볼 수 있다고?" 전시장 곳곳에선 이런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개막일 저녁엔 국내 미술시장에서 상상하기 어려웠던 매출 기록이 속속 나왔다.

현대미술을 이끄는 세계 메가 갤러리 중 하나인 갤러하우저앤워스는 2일 조지 콘도(65)의 붉은 초상화( 'Red Portrait Composition', 2022)를 38억원(280만 달러) 판매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한 사립미술관이 샀다. 또 한 개인 컬렉터에게가 미국 흑인작가 마크 브래드포드의 그림을 24억5000만원(180만 달러)에 판매되는 등 수억 원짜리 작품이 줄줄이 판매됐다.

리슨갤러리에선 세계적 거장 아니쉬 카푸어 작품이 10억원,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에선 안토니 곰리의 작품이 약 8억원(50만 파운드), 게오르그 바셀리츠 회화가 16억3000만원(120만 유로)에 팔려나갔다. 이 밖에도 프리즈에선 가고시안, 데이비드 위즈너, 화이트큐브, 글래드스톤, 페로탕, 페이스갤러리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해외 갤러리들이 대표작을 선보였다.

프리즈에 참여한 12개 국내 화랑 중 하나인 국제갤러리에서는 박서보 회화 1점이 7억원, 하종현  5억원, 알렉산더 칼더 작품이 5억원에 판매됐다.

프리즈 측에선 "첫 행사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사이먼 폭스 프리즈 대표는 4일 "프리즈 서울은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었다"며 "서울의 에너지는 대단했고 참여 갤러리와 세계 방문객으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우리는 벌써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미술 무한경쟁 시대  

세계 명품 브랜드 생 로랑이 후원해 보여주는 이배 작가 전시. [이은주 기자]

세계 명품 브랜드 생 로랑이 후원해 보여주는 이배 작가 전시. [이은주 기자]

문제는 키아프다. 프리즈가 열리는 3층과 키아프가 열리는 1층 간 온도 차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프리즈와 키아프는 '공동 주최'를 내걸었지만, 실상은 키아프가 부대 행사처럼 보였다.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키아프는 누가 봐도 역부족이었다.

3일 키아프에서 만난 한 갤러리 대표는 "3층에서 우리 작품을 선보여야 했는데···"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적인 페어와 나란히 열리니 확실히 우리 작품이 주목을 덜 받는다"고 했다. 국내 미술계에선 "앞으로 키아프가 프리즈의 위성 장터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프리즈와 키아프 격차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국내 갤러리 중 탄탄한 중견 작가를 거느리 소수 갤러리와 다수 갤러리 사이에 격차도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프리즈에서 남춘모, 김택상, 김근태, 이진우 작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한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는 "프리즈에서 작품이 완판될 정도로 실적이 좋았다. 미국과 홍콩 컬렉터들에게 작품을 판매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이번에 우리 목표는 판매 자체가 아니었다. 이번에 외국에서 온 갤러리와 미술관 관계자들과 만나 해외 전시를 논의한 게 진정한 성과였다"고 말했다.

요즘 인기인 박서보와 이배 작가를 전면에 내세워 주목받은 조현갤러리 최재우 대표도 "프리즈가 우리에게는 큰 힘을 실어준 기회였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서울에서 세계적 행사가 열리니 해외 거물급 인사를 연이어 만날 수 있었다. 당장 밝힐 순 없지만, 해외 유수 미술관과 전시 계획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런 의견을 종합하면, 앞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한국 작가가 생겨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키아프는 물론이고 같은 기간 세텍에서 열리고 있는 위성페어 '키아프 플러스'엔 관람객이 적어 화랑협회는 마음을 졸였다. 황달성 화랑협회장은 "안타깝지만 예상한 일이다. 키아프가 세계적인 페어와 갑자기 동급이 될 순 없다. 뼈아픈 현실이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한국미술이 세계 시장에서 이렇게 주목받은 것도 처음 아니냐"며 "앞으로 키아프 참여 자격을 훨씬 더 엄격하게 심사하는 등 한국 미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즈와 키아프 두 곳에 부스를 연 학고재 갤러리 우찬규 대표는 "한국 미술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우 대표는 "한국미술이 성장하고 성숙하려면 우리 컬렉터가 외국 작가 작품을 사는 데 주력하는 것으론 안된다. 국내 컬렉터가 한국 작가에 애정과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세계에서 주목받는 스타 작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 작가를 우리가 발굴하고, 키우고, 알려야 한다는 얘기다.

전시 부스를 구성하고 작품을 배치하는 연출력도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조현갤러리 최 대표는 "예전처럼 있던 작품을 들고 나와서 거는 형식으론 안 될 것 같다. 우리 작가들이 주목받을 수 있게 '어떻게 잘 보여주는가'가 굉장히 중요해졌다 "고 말했다.

이틀에 걸쳐 프리즈와 키아프 두 전시장을 꼼꼼하게 봤다는 한 미술관 큐레이터는  "이제 무한경쟁의 문이 열렸다. 한국 화랑들은 잘 살아남거나, 사라지거나 하는 큰 기로에 섰다. 이제 어느 화랑도 과거에 하던 대로 할 수 없게 됐다. 완전히 변화해야 한다. K-미술 시대를 열기 위해 미술계가 풀어야 할 아주 큰 숙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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