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이 삼촌들 판타지? 뉴진스는 또래들 ‘워너비’

중앙선데이

입력 2022.09.03 00:01

업데이트 2022.09.03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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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호 18면

4세대 걸그룹 ‘뉴진스’ 돌풍

전원 10대로 구성된 걸그룹 ‘뉴진스’가 8월 데뷔하자마자 각종 차트와 음악방송을 ‘올킬’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사진 어도어]

전원 10대로 구성된 걸그룹 ‘뉴진스’가 8월 데뷔하자마자 각종 차트와 음악방송을 ‘올킬’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사진 어도어]

여름의 끝자락에 아이돌 시장은 걸그룹 전쟁이 뜨겁다. 8월 지니뮤직 월간차트는 1위부터 9위까지 걸그룹으로 도배됐다. 5년 만에 완전체로 컴백한 소녀시대부터 블랙핑크·트와이스·잇지·아이브 등 2~4세대가 총출동해 각종 신기록 대잔치를 벌이고 있다. 22개월 만에 컴백한 블랙핑크의 ‘핑크 베놈’ 뮤직비디오는 공개 첫날 9040만뷰를 찍어 유튜브 24시간 조회수 부문 여성 아티스트 세계 기록을 자체 경신했다. 에스파의 ‘걸스’ 앨범은 164만장이 팔려 역대 걸그룹 최다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다.

뉴진스 [사진 어도어]

뉴진스 [사진 어도어]

이런 춘추전국시대에 ‘BTS 여동생 그룹’ 뉴진스 돌풍이 거세다. 8월 1일 데뷔해 28일 SBS ‘인기가요’ 2주 연속 1위로 4주간의 방송 활동을 마치기까지 세운 기록이 파죽지세다. 데뷔곡 ‘어텐션’은 최근 5년간 발표된 K팝 아이돌 데뷔곡 중 최초로 주요 음원 사이트 실시간·일간·주간 차트를 싹쓸이했고, 미국 빌보드 차트에도 4주 연속 올랐다. 실물앨범은 발매 첫주 31만여장을 팔아 역대 걸그룹 데뷔 앨범 초동 판매량 신기록을 세웠다. 8월 3째주에는 Mnet ‘엠카운트다운’, KBS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 등 4대 음악방송을 ‘올킬’했다.

평균 연령 16.4세 최연소 걸그룹

올들어 아이즈원 출신의 장원영과 안유진을 선봉으로 내세운 스타쉽의 아이브를 비롯해 JYP의 엔믹스, 하이브 첫 걸그룹 르세라핌 등, 4세대 걸그룹은 이미 형성되고 있었다. 하지만 뉴진스 ‘현상’에는 1997년 1세대 걸그룹 S.E.S가 첫등장했을 때의 충격과 같은 시대적 변화가 감지된다.

핸드백 모양의 한정판 앨범. [사진 어도어]

핸드백 모양의 한정판 앨범. [사진 어도어]

뉴진스는 뭐가 다를까. ‘민희진 걸그룹’이라는 수식어에 주목해야 한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소녀시대·에프엑스·레드벨벳 등의 비주얼을 담당했던 ‘걸그룹 브랜딩의 달인’ 민희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하이브로 이적해 자신이 총괄하는 레이블 ‘어도어’에서 내놓은 첫 결과물인 만큼, 하이브의 자금력과 민희진의 기획력이 폭발적인 시너지를 낸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tvN ‘유퀴즈 온더 블록’에 출연한 민 대표가 “육아는 정말 힘들더라”고 했듯, 뉴진스는 평균 연령 16.4세로 걸그룹 중 최연소다. 다섯 멤버(민지·하니·다니엘·해린·혜인) 전원이 10대로, 긴 생머리와 옅은 화장, 스포티한 의상으로 건강한 ‘소녀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언제 입어도 질리지 않는 진(jean)이자 새로운 유전자(gene)라는 중의적 의미를 가진 그룹명처럼, 풋풋한 10대 소녀상을 그대로 살린 듯 자연스러우면서도 걸그룹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깨부수는 새로움이 컨셉트다.

소녀들의 톡톡 튀는 감성으로 포장 된 뉴진스 데뷔 앨범 디자인들. [사진 어도어]

소녀들의 톡톡 튀는 감성으로 포장 된 뉴진스 데뷔 앨범 디자인들. [사진 어도어]

차별화의 핵심은 삼촌팬이 아니라 아이돌 산업 주소비자인 1020 여성층을 타깃팅했다는 점이다. 2007년 2세대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등장 이래 걸그룹은 삼촌팬들의 관음적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된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1세대 S.E.S와 핑클이 신비한 요정 이미지로 탄생했다면, 2세대부터는 짧은 교복 치마 아래로 긴 다리를 시원하게 드러내며 섹슈얼리티를 전시했다. 3세대는 ‘걸크러시’를 내세웠지만 블랙핑크 신곡 ‘핑크베놈’ 뮤직비디오의 게임 세상 여전사 캐릭터처럼 여전히 삼촌들의 판타지에 기대고 있다. 반면 뉴진스 데뷔곡 ‘어텐션’ 뮤비 속 멤버들은 삼촌들의 눈요기가 아니라 또래들이 닮고 싶은 멋진 모습을 뽐내고 있다. 명품 로고 선명한 블루진을 걸친 부티나는 미국교포 청소년 느낌이랄까. 백인상류층 청소년들의 일상을 그렸던 1990년대 인기 미드 ‘비버리힐즈의 아이들’을 연상시킨다는 반응도 있다.

뉴진스 [사진 어도어]

뉴진스 [사진 어도어]

핸드백 모양 한정판 앨범을 판매하고, 하이브의 팬 플랫폼 위버스와 별도로 독자적인 소통 앱 ‘포닝’을 출시한 것도 명확한 타깃층을 말해준다. 실제로 온라인서점 알라딘의 ‘뉴진스’ 앨범 구매자 분포를 보면 10대 여성(19%)과 20대 여성(39%) 비율이 월등했다. 한류의 선봉에 선 걸그룹은 더 이상 삼촌팬에게 소구하는 하위문화가 아니라 또래들의 롤모델이 된 것이다. 아이돌 산업에서 소비자가 적극적인 팬덤 활동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뉴진스의 성공은 요즘 대중의 취향과 욕망을 정확히 반영한 결과다.

소녀들의 톡톡 튀는 감성으로 포장 된 뉴진스 데뷔 앨범 디자인들. [사진 어도어]

소녀들의 톡톡 튀는 감성으로 포장 된 뉴진스 데뷔 앨범 디자인들. [사진 어도어]

음악적으로도 걸그룹의 공식을 깼다. EDM 스타일의 강한 비트에 메인보컬의 고음 폭발이 아니라, 모든 멤버가 각자의 음색을 살린 차분하고 듣기 편한 이지리스닝 팝 계열이다. 안무도 칼군무보다 스트릿 감성으로 자연스런 흐트러짐을 추구한다. 3곡을 동시에 타이틀곡으로 민 것도 파격이다. BTS의 ‘학교 3부작’ 같은 ‘소녀 3부작’이랄까. 하지만 러블리즈의 ‘소녀 3부작’이 교복을 입고 부서질듯 아련한 고전적인 소녀 감성을 향수한다면, 뉴진스 3부작은 쾌활하고 역동적인 요즘 소녀 그 자체다.

4가지 멤버별 버전을 따로 찍어 자금력을 과시한 ‘하입보이’ 뮤비를 보자. 멤버들이 네 인종의 소년들과 각자 귀엽게 ‘썸’을 타다가 다소 실망스럽게 끝나지만 소녀들끼리 우정이 있어 외롭지 않다는, 또래들이 공감하는 풋풋한 사랑이야기다. 가사도 흥미롭다. ‘누가 내게 뭐래든 남들과는 달라 넌 Maybe you could be the one 날 믿어봐 한번 I’m not looking for just fun.’이라는 단호하고 쿨한 태도는 ‘너무 부끄러워 쳐다볼 수 없어 사랑에 빠져서 수줍은 걸 어쩌면 좋아요 수줍은 나는요 몰라몰라’(소녀시대 ‘Gee’)라던 2세대 ‘걸리시’와도, ‘사랑의 숨통을 끊어야겠어’(블랙핑크 ‘킬 디스 러브’)라는 3세대 ‘걸크러시’와도 다른, 소녀들의 솔직한 욕망을 그대로 드러낼 뿐이다.

뉴진스 [사진 어도어]

뉴진스 [사진 어도어]

삼촌팬을 위한 청순과 섹시 사이 갈짓자 행보가 걸그룹의 굴레였다면, 고무줄 반바지를 입은 자연스러운 소녀로의 진화는 걸그룹 성상품화의 굴레를 깨는 시도로 보인다. 과연 삼촌팬 없이도 괜찮을까.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BTS 이후 아이돌 팬덤이 글로벌해졌기에 애초에 국내 비중을 적게 봤을 것”이라며 “국내 삼촌팬을 타깃 삼던 걸그룹이 또래들과 소통하고 나섰다는 것은 유대가 강한 해외 K팝 팬덤의 더 넓은 수용자를 상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외 시장에서 K팝 걸그룹이 성인 남성보다 젊은 여성팬에게 소구한다는 얘기다. 어도어 관계자도 “뉴진스는 아이돌의 보편적이고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관점에서 10대에 데뷔해야 한다면 10대 그 자체의 모습으로 데뷔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성장에 맞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강조할 것”이라고 전했다.

어리기 때문에 논란도 있다. 타이틀곡의 하나인 ‘쿠키’의 가사가 성적 은유를 내포한다며 미성년자에게 ‘라면 먹고 가라’는 식의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 비난과 로리타 콤플렉스 의혹까지 제기되자, 어도어는 입장문을 내고 ‘쿠키’란 뉴진스의 새로운 음악을 상징할 뿐이라고 반박했다.

뉴진스 [사진 어도어]

뉴진스 [사진 어도어]

하지만 ‘널 choco-chip 으로 sprinkle로 정신 못 차리게 만들고 싶어 숨기고 있지만 널 더 보고 싶어 If you want it, you can get it.’이라는 가사의 1차원적 의미 자체가 중의적으로 해석될 여지를 부정할 수는 없다. 현대사회에서 모든 상품은 무의식 속 욕망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마케팅된다는 점에서 흔한 접근이다. 오히려 20대 여성에게 교복을 입혀 놓고 ‘소녀’의 이미지를 공공연하게 성적 대상화 하는 걸그룹 시장 풍토에 침을 뱉고, 소녀의 성적 주체성을 주장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4대 음악 방송 올킬, 차트도 싹쓸이

소녀들의 톡톡 튀는 감성으로 포장 된 뉴진스 데뷔 앨범 디자인들. [사진 어도어]

소녀들의 톡톡 튀는 감성으로 포장 된 뉴진스 데뷔 앨범 디자인들. [사진 어도어]

대표적인 ‘여자 아이돌’로서 20대 초반 성장통을 겪었던 아이유가 2015년 전곡을 직접 프로듀싱한 ‘챗셔’ 앨범에서 ‘제제’‘23’등 도발적인 노래를 부른 것도 ‘여돌’에게 씌워진 성적 대상화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발버둥이었다. 뉴진스는 ‘쿠키’라는 도발을 통해 사회가 ‘여돌’에게 거는 기대를 애초부터 배반하며 등장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는 “여자친구 ‘애플’, 트와이스 ‘모어 앤 모어’, 블랙핑크 ‘하우 유 라이크 댓’의 뮤비에 등장하는 빨간 사과처럼, 쿠키도 금기와 억압에 대한 저항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볼 수도 있다”면서 “노래 가사란 애매모호하기에 더 재밌다. 여러 가지로 해석해보게 만드는 것 자체가 마케팅 전략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미 평론가도 “이효리의 ‘텐미닛’ 이후 섹시 코드 노래들은 주체적인 자부심의 표현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남성중심적 시각의 내면화라는 부정적 평가가 늘 공존해 왔다”면서 “창작자의 의도와 소비자의 수용은 사회적 권력구도 안에서 어긋날 수 있지만, 동상이몽 속에서도 보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면 삼촌팬들까지 양수겸장하려는 전략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자연스러움으로 포장된 완벽한 기획 상품이라는 점에서 의문도 생긴다. 이 귀여운 소녀들이 그룹명의 속뜻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되려면 다음 스텝에서 무엇이 필요할까. 이영미 평론가는 “BTS도 아미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없었다면 UN총회에서 노래하는 아티스트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BTS가 초기에 사랑노래를 부르다 어느 순간부터 자아성찰로 나아갔고, 서태지가 10대 팬을 넘어 20대 진보적인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얼터너티브 록을 같이 호흡하겠다며 그 흐름을 타고 올라간 것도 팬들이 만들어 준 측면이 크다. 뉴진스 기획자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지를 잘 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의 아이콘’은 결국 팬과의 관계 속에 탄생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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