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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론스타 2855억원 배상 판정이 남긴 교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구 외환은행 건물(왼쪽). 가운데는 론스타 로고. 오른쪽은 2019년도 법무부 예산 및 기금 국회 심사 결과 문서. 중앙포토

구 외환은행 건물(왼쪽). 가운데는 론스타 로고. 오른쪽은 2019년도 법무부 예산 및 기금 국회 심사 결과 문서. 중앙포토

투명한 정책, 글로벌 스탠더드 중요

또 다른 국제투자 분쟁 6건 진행 중

외환은행 인수·매각 과정에서 논란에 휩싸였던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한국 정부 간 10년 분쟁에 대한 판정이 나왔다.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판정부는 우리 정부에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의 4.6%인 2억1650만 달러(약 2855억원)를 지급하고, 그간의 매각 승인 지연에 대한 이자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이자를 포함하면 정부가 론스타에 물어줘야 할 돈이 3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정부는 국제중재 판정부의 판단에 불복해 이의제기를 검토하기로 했다.

론스타는 2012년 11월 하나금융지주로의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46억7950만 달러(약 6조1000억원)의 손해를 봤다며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제도(ISDS)’를 통해 국제중재를 제기했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3834억원에 사들인 뒤 HSBC 등과 매각 협상을 벌이다가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7억원에 팔았다. 론스타 측은 그간 매각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하면서 더 비싼 값에 매각할 기회를 잃었고, 오히려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며 손해를 배상하라고 주장해 왔다.

이번 국제 중재 재판부의 판정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한국 정부의 일부 귀책 사유로 3000억원을 국민 세금으로 물어줄 수 있다는 점엔 부정적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손해배상금이 당초 론스타가 청구한 금액의 4.6% 수준이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가 선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헐값 매각’ 논란을 불렀고, 애초에 은행 인수 자격이 없는 산업자본이라는 주장이 매각 막판까지 제기됐다. 론스타를 산업자본으로 판단해 징벌적 매각 명령을 내리자는 일각의 주장을 따르지 않고 외환카드 주가조작과 관련한 법원의 최종 판결을 정부가 기다린 건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다. 매각 지연과 관련된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면서 그런 사태를 초래한 원인 제공자가 론스타라는 이유로 중재판정부가 배상금을 절반으로 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론스타의 ‘먹튀’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국내 정서법과 글로벌 스탠더드 사이에서 정부가 우물쭈물하는 바람에 사회적 논란과 비용이 더 커진 측면이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왔다.

론스타건이 마무리된다 해도 우리 정부는 또 다른 여러 건의 국제투자 분쟁에 맞서야 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6건의 국제투자분쟁이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도 경제 규모가 커지고 국제투자 활동이 활발해질 수밖에 없는 점을 고려하면 유사한 분쟁 사례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의 투명한 정책 집행, 국내외 사업자에 대한 불편부당한 대우와 같은 글로벌 스탠더드의 중요성을 다시금 새기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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