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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6·25 ‘남침’ 표현 뺀 좌편향 교육과정 바로잡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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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94년 한국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6.25 전쟁기록 복사본을 받고 있다. 이 기록엔 북한의 '남침' 사실이 명시돼 있다. [중앙포토]

1994년 한국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6.25 전쟁기록 복사본을 받고 있다. 이 기록엔 북한의 '남침' 사실이 명시돼 있다. [중앙포토]

교육부,‘자유민주주의’서 ‘자유’도 삭제

헌법과 객관적 사실 왜곡한 역사관 유감

교육부가 그제 공개한 ‘2022년 개정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은 역사 왜곡과 편향된 시각으로 점철돼 있다.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서를 만들고, 시·도 교육감이 교육 기준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어 우려스럽다.

내용을 보면 참담하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객관적 사실까지 무시하고, 헌법과도 충돌하는 편향된 시각이 넘쳐난다. 연구 책임자가 “유관순은 친일파가 만든 영웅”이란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사람이니 교육과정 개발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장 큰 오류는 6·25와 관련해 ‘남침(南侵)’ 표현을 삭제한 것이다. 이는 북한의 침략 사실을 숨김으로써 왜곡을 낳는다. 특히 ‘이승만이 침략을 유도했다’ 같은 1980년대 운동권의 수정주의 역사관이 다시 나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남침’은 이미 논쟁이 끝난 사안이다. 니키타 흐루쇼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70년 미국에서 출간한 회고록에서 “김일성이 1949년부터 스탈린을 찾아와 남침을 주장했고, 스탈린은 묵인했다”고 밝혔다. 1993년 러시아 문서보관소에선 ‘남침’을 입증하는 결정적 문서까지 발견됐다.

지금은 러시아 교과서들도 ‘남침’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2018년 교육과정 개정 때도 ‘남침’ 표현을 삭제하려 했다. 여론의 반발로 무산되긴 했지만 같은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한 것도 문제다. 2018년에도 ‘자유’를 빼려다 비판 여론 끝에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표현을 넣었다. 그러나 이번엔 이것마저 빼버렸다. ‘자유’ 삭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엔 자유주의가 내포돼 있어 필요없다’거나 ‘자유는 남북 대립을 강조하는 용어’라고 한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는 단순히 북한과의 체제 경쟁을 위해 쓴 말이 아니다. 자유주의가 빠진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의미가 크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의사결정 방식 특성상 다수의 횡포로 흐를 위험성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권력의 한계를 규정하고 다수의 횡포를 막는”(『자유론』) 자유주의가 있어야만 ‘입법독주’나 ‘포퓰리즘’ 같은 반지성주의를 견제할 수 있다.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명시한 것도 같은 이유다. 자유주의를 강조해 온 윤석열 정부가 역사를 왜곡하고 헌법 질서를 무시하는 내용의 교육과정을 발표했다. 지난 정부에서 시작한 연구라지만 출범 100일이나 지난 시점에서 핑계는 안 통한다. 교육부에 단단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객관적 사실조차 왜곡하고, 편향된 역사관을 주입하는 교육과정 시안을 조속히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