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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비전포럼] "한·중 아무리 싸워도 만나서 타협하는 모습 보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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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포럼이 중앙일보와 한반도평화만들기 한중비전포럼 주최로 지난 19일 서울 중구 소공동 가넷스위트룸에서 열렸다. 이날 박진 외교부 장관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포럼이 중앙일보와 한반도평화만들기 한중비전포럼 주최로 지난 19일 서울 중구 소공동 가넷스위트룸에서 열렸다. 이날 박진 외교부 장관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집사광익(集思廣益)이란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의 생각을 모으면 더 나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은 올해 한중비전포럼(위원장 신정승 전 주중대사)은 지난 19일 ‘한중, 다음 30년을 말한다’ 포럼에서 중국 전문가 53인의 지혜를 구했다. “중국이 의리가 있는가?” 의문에서 “치명적 약점은 건드리지 말자”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제언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중국은 의리보다 이익 쫓아가” #“한중이 미·중 관계 부속 아니야” #“치명적 약점 서로 건들지 말자” #“교류는 이제 민간이 맡아야”

외교·안보, “말은 적게 행동은 많이”

정상기 건국대 KU중국연구원 석좌교수. 김상선 기자

정상기 건국대 KU중국연구원 석좌교수. 김상선 기자

▶정상기 건국대 석좌교수=국제 정치에는 지피지기(知彼知己), 세력 균형, 자강(自強)이라는 세 가지 기본 원칙이 있다. 여기서 세력 균형은 한국이 균형자 역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 정책에서 한국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나라, 즉 '라이크마인디드(Like Minded)' 나라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일본, 아세안, EU 등 중에서 특히 일본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한일 관계가 좋으면 한중 관계도 좋다. 다음은 '지피지기'다. 우리가 중국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한다. 중국이 친구를 중요시하고 의리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결국은 이익을 좇아서 간다. 그런데 우리는 특히 중국 공산당과 같은 우리와 다른 체제의 선전이나 홍보, 프레임, 전략, 언어유희 등에 대해 잘못된 인식이 많다. 중국이 말하는 '초심으로 돌아가자', '상호 존중하자'라는 말은 사실상 언어유희다. 중국은 언어유희에 아주 능숙하기 때문에 우리 외교부나 안보 부처의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이와 관련된 교육 과정을 신설하기를 바란다. 세 번째는 메시지와 관련된 내용이다. 현 정부 초기, 특히 인수위원회에서 한국이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등 말 폭탄을 많이 터트렸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상대방을 자극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말은 적게 하고 행동은 많이 하라(Speak less do more)' 정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언론에 대한 이야기다. 요소수 사태 이후 여러 한국 언론은 중국이 우리에게 취할 수 있는 보복 조치 리스트 등을 나열했다. 그런데 이는 어찌 보면 우리 비밀을 외부에 폭로한 것이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 김상선 기자

김한권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 김상선 기자

▶김한권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최근 한중 외교 관계와 협력 부분에서 갈등과 도전 요인을 선제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전략대화 채널의 빠른 복구와 확대가 많이 언급되고 있다. 무척 환영할 일이다. 향후 30년에는 이 전략대화 채널의 정례화와 제도화가 꼭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국제 사회에 한중은 아무리 싸우더라도 꼭 만나서 대화하고 타협점을 찾는다는 인상을 분명히 하는 게 필요하다. 대외적인 것보다 대내적인 메시지가 중요하다. 양국 국민 사이에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이 커지고 상호 국가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지는 현재 상황 속에서 한중 양국 지도자들이 갈등과 대립에도 불구하고 꼭 만나서 함께 타협점을 찾으려 노력한다는 모범 사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한중이 미래의 도전요인 앞에서도 협력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 또는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미·중 마찰에서 중국은 일본과의 교류 공간을 열어 놓으면서 한일 관계는 서로 경쟁하기를 바란다. 중국은 항일전쟁(독립운동)을 끈으로 한중이 일본에 함께 대항하던 걸 강조한다. 이는 중국이 미국엔 협상을 기대하면서 일본과는 과학기술 협력을 원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중 관계를 통해 한미일 동맹이 공고해지는 것을 지연하거나 적어도 그 힘이 중국에 약하게 미치게 하려고 하는 의도를 갖고 있다. 한중 관계가 긍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양국의 인적 교류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협력과 안보적 협상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양국 공통의 협력 플랫폼(기구나 조직)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하게 인적 교류나 경제 활성화를 위한 협상이 아니라 양국이 그리고 일본을 포함해 동아시아 평화와 안보를 위한 어젠다(의제)를 만들고 토론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상선 기자

문흥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상선 기자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세 가지 키워드로 말씀드리겠다. 한중 관계 30년을 돌아볼 때 첫 번째 가장 큰 문제는 인식이다. 상호 인식이 너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복구할지가 큰 과제다. 학계에 계신 분들은 국내 체류 중국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이 그냥 서로 미워하게 놔두기보다는 조금이라도 해소할 방안이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두 번째 문제는 정책이다. 많은 전문가가 5년마다 한 번씩 전 정부의 대중정책 평가와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을 작성했지만 내용은 늘 비슷하다. 잘못된 점도,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도 항상 유사하다. 매번 실패하는 이유는 결국 정무적인 판단 때문이다. 정치의 개입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리고 정치가 개입하는 원인은 북한 문제와 미국 문제에 있다. 지난 정권은 북한에 너무 가까워졌다고 질책을 들었고, 어쩌면 5년 뒤에는 한국이 미국에 너무 가까워졌기 때문에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지도 모른다. 현재 한중 관계의 키워드는 재정립이다. 즉 중국에서 미국 쪽으로 무게를 옮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 경사된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여기서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세 번째 조직과 인사의 문제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아무리 귀한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도 이를 실천할 인력이 없다는 현실이다. 외교부 내 일류 외교관들은 중국을 싫어하고 중국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중국어가 특수 언어라 수당도 지급됐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이런 사소한 문제를 조금씩 해소하면서 전문 인력과 조직을 강화해야 한다. 인식·정책·조직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5년 뒤 우리는 또 똑같은 논의를 하게 될 것이다.

김태호 한국국제전략연구원 이사장. 김상선 기자

김태호 한국국제전략연구원 이사장. 김상선 기자

▶김태호 한국국제전략연구원 이사장=한중은 앞으로 30년 동안 '신뢰구축수단(CBM, Confidence Building Measure)'을 갖춰야 한다. 지난 30년간 한국은 물론 중국도 교류 협력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다. 인천에서 몽골 울란바토르까지 약 2000km 정도이고, 부산에서 중국 시안(西安)까지 2000km가 좀 못 된다. 사드(THAAD)의 탐지 거리는 두 가지가 있는데, 종말 단계 모드에서는 약 800km, 전방배치 모드는 약 2000km 정도다. 중국 입장에서는 시안에서 중국 동쪽 해안까지 수많은 군 시설이 있기 때문에 안보 위협으로 여긴다. 하지만 반대로 사실상 중국에는 한국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이 훨씬 더 많다. 불공평하지 않은가. 결국 자신들은 볼 수 있지만, 우리는 안 된다는 강대국의 논리다. 사실 중국도 사드가 종말모드로 북한 쪽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여전히 이를 문제 삼고 있다. 알면서도 시비를 거는 것은 결국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서 한중 양국의 신뢰 구축이 시급하다.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두 가지만 말씀드리겠다. 한중 수교 30년의 두 가지 교훈이다. 첫 번째 교훈은 30년이 지났지만, 한국의 대중 외교 전략이 무엇인지 아직도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안미경중', '구동존이', '상호존중', '당당한 외교' 등은 모두 레토릭이나 국내 정치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정으로 한국이 중국을 어떻게 다루고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 두 번째 교훈은 30년 이래 한중 간 안보 분야에서 발생한 두 번의 충돌이다. 한번은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이고, 또 한 번은 2016년 사드 사태다.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즉 두 번 다 북한으로부터 시작된 도발이 미중 경쟁으로 옮겨가 한중관계를 악화시켜 한국을 결국 딜레마에 빠트렸다는 점이다. 북한은 미중이 경쟁하고 갈등할 때 도발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금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다시 도발하게 되면 한국은 사드 재배치 또는 미국의 전략자산 도입 등을 고려하게 될 것이고, 이 경우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할 것이기에 한국은 제2의 사드 사태를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시급한 과제는 한반도 안정이라는 한중 간의 공감을 기반으로 북한의 도발을 예방하거나, 도발 이후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전략적 소통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상숙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 연구교수. 김상선 기자

이상숙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 연구교수. 김상선 기자

▶이상숙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 연구교수=첫째, 이제는 한중 관계의 양적 상태보다는 질적 측면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코로나로 인해 한중 교류가 많이 중단됐는데, 이 기회에 앞으로 어떤 콘텐트를 가지고 교류할 것인가를 고심해야 한다. 양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콘텐트를 많이 개발해 양국 20~30세대들의 상호 이해를 높이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국의 역할을 좀 더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북한 비핵화를 넘어 한반도 평화체제와 평화협정 등에 대한 논의에서 우리가 어느 시점에 중국에게 어떤 역할을 줄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그런 구상을 한 뒤, 중국과 협의하고 미국과의 대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국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김상선 기자

이상국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김상선 기자

▶이상국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오늘의 주제는 30년 이후 한중 관계인데, 여기에는 우리가 20~30년 후 놓이게 될 시공간에 대한 논의가 거의 생략돼 있다. 한중 관계 30년, 더 나아가 한국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는 향후 우리가 처할 시공간의 특징을 명확히 이해하고, 이에 기초해 양자적 관점에서 대처해야 한다. 현재 중국군과 미군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공간을 통합하려는 원대한 구상을 가지고 빠르면 2040년 초에 이를 가시적 형태로 내놓고 2050년까지 완성하려 하고 있다. 즉 거시·미시·나노 세계를 포함한 물리역, 인간의 지능·인식과 기계의 지능을 포함한 인지역, 그 외 사회역·생물역·사이버 메타역 등을 통합하는 거대한 구상 속에 새로운 이론과 철학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분야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다. 새로운 시공간에 대한 능력과 관점, 그리고 과학철학 등을 새롭게 정리하지 않으면 미래에 한국은 상당히 어려운 궁지에 몰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중국은 기존의 전자적 세계관에 기초한 유물론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있다. '일대일로'나 '인류공동체'처럼 우리가 많이 듣는 개념 속에도 유물론에 대한 중국의 새로운 해석이 투영되어 있다. 새로운 관계라는 측면에서도 양자 세계의 '불확정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불확정성'은 쉽게 말해 원자 속 전자가 1초 동안 2000곳의 위치로 찍힐 수 있어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성질을 뜻한다. 원자가 분자를 이루고, 또 세포를 이뤄 거대한 사회를 구성하는 이 세계가 향후 20~30년에도 확정되어 있을 것이라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나. 이 '불확정'의 세계에서 우리의 입자적 성질을 강화하고 또 관계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혜와 통찰력을 쌓아 우리 나름의 원대한 구상을 계획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문기 세종대학교 중국통상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이문기 세종대학교 중국통상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이문기 세종대 중국통상학 교수=한중 관계의 미래 30년과 한국 국내정치의 연관성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한중 향후 30년이 위기라는 진단이 많지만, 사실 한중 관계의 본질은 양자 관계가 아니라 미국까지 포함해 3자 관계다. 즉 삼각 구도의 함정에 빠져 있다. 한국 역사에 삼각 구도의 함정은 수차례있었다. 고려시대 이후 모든 국난은 모두 삼각 구도에서 비롯됐다. 거란족·여진족·몽골족이 각축했던 고려 시대, 임진왜란·병자호란·청일전쟁이 일어났던 조선 시대, 미·소 갈등 속 분단하게 된 해방정국 모두 삼각 구도가 문제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이 직면한 삼각 구도의 위기는 매우 익숙하고 이미 역사적으로 경험해본 상황이다.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으면 많은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해법을 찾는 과정은 논쟁적일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교훈 중 하나는 내정이 분열되면 이 삼각 구도의 파도를 넘기 어렵고 고난이 가중된다는 사실이다. 내정의 통합과 단결을 실현할 때 이 딜레마와 고난을 최소화하고 극복할 수 있다. 현재 한국 내정의 현실이 매우 엄중하다. 한중 관계의 미래 30년과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의 성공을 위해서는 한국 국내 정치의 제도와 문화를 획기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진영 간 갈등 논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민자 서울디지털대 중국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이민자 서울디지털대 중국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이민자 서울디지털대 중국학과 교수=현재 한중 관계에서 당면한 도전은 세계화의 퇴조, 미중 경쟁의 격화인 것 같다. 역사를 돌아보면 미·소 경쟁 당시 한국은 편승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한이 미국을, 북한이 소련을 선택한 결과는 현재 우리 앞에 자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은 편승전략을 절대 원치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넣을 수 있다. 지금이 바로 미국과 중국 간 경쟁 상황에서 어느 나라에 편승해야 할지 향후 30년의 미래를 고려해 결정해야 하는 과도기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일수록 중국을 잘 아는 전문가들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현수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상선 기자

김현수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상선 기자

▶김현수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중 관계에서 특히 해양 관계는 여전히 안정적이지 못하고 상당히 출렁이고 있다. 해양 문제는 한중 관계를 넘어 국내·국제 정세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분야다. 지나친 국수주의·민족주의·감정주의 등이 결부되어 한중 해양 문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하는 중이다. 당면한 여러 가지 한중 해양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양국의 공생·공동선(善)·공동익(益)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고민하는 것이다. 이런 판단하에 양국이 공동으로 수용할 수 있는 기준은 결국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국제규범, 국제관행이다. 이를 기반으로 해양 문제에 접근한다면 좀 더 쉽게 한중 간에 변화하는 여러 다양한 해양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21세기가 요구하는 국제사회에서의 국가의 위상이 무엇인지 진정 고민한다면 한중 간 문제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풀 수 있을 것이다.

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정책연구소장. 김상선 기자

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정책연구소장. 김상선 기자

▶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정책연구소장=두 가지 상황 관리를 제언 드리고 싶다. 많은 해양 관련 이슈가 마치 우리의 싸움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상 우리 현실에 바짝 다가와있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주장한 동경 124도선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고, 또 중국은 현재 연어 30만 마리를 양식할 수 있는 축구장 크기의 실물을 서해 한가운데 이미 설치했다. 매년 1000여 척이 넘는 중국 어선들이 북한 동해 수역까지 넘나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해양 환경 파괴, 의도적인 해양 조사 등 아주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갈등 속에서 한중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우리의 원칙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고, 상황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많은 대중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책들은 정작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되고 있지 않다. 중국은 점진적으로 문제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밀어붙이는 중이다. 분명한 상황 관리가 있어야 우리가 중국에 명확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얼마 전 중국학자들과 공통으로 느낀 문제 중 하나는 과거 수교를 이끈 기성세대들의 인식과 향후 한중 관계를 이끌어갈 새로운 세대들의 인식 차이다. 기성세대가 받은 교육 방식과 신세대들이 중국을 이해하는 방식이 상당히 다른데, 이런 부분에 대한 관리가 상당히 허술하다. 최근 언론이나 논문 등을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 중에 물론 팩트체크가 된 내용도 있지만, 사실과 다르게 포장된 부분도 많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이런 정보를 직접 접하고 있다. 이런 부분에 더 신경 쓰면 한중 관계 향후 30년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경제·통상, “대중 적자 요인은 기술”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상선 기자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상선 기자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두 가지만 말씀드리겠다. 첫째는 중국에 대해 우리가 갖는 레버리지에 대한 이야기다. 즉 잘 나가거나, 돈이 있거나, 힘이 세야 한다. 한중 관계는 결국 이렇게 아주 세속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향후 30년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둘째는 학계와 외교 파트의 역할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패러다임 시프트에서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전통산업에서 첨단산업으로의 전환, 부국강병 또는 '탈'부국강병이라는 국가의 목적, 효율성 추구 또는 불평등 해소라는 발전의 목표다. 최근 인류 보편적 가치라는 모호한 표현을 많이 쓰는데, 사실 지난 30년은 효율성이 훨씬 강조됐다. 효율성의 가장 큰 요소는 시장과 인센티브를 중요시하고 규모의 경제를 키워 비교 우위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 이 효율성 추구와 불평등 해소라는 발전의 목표가 서로 상충하고 있다. 학계는 이런 부분에 대해 심각한 고민과 토의를 통해 답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외교 분야다. 많은 분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헤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70~80년대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열병에 걸린다'는 식으로 무역 다변화 이야기가 많았다. 부품 소재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은 나온 지 벌써 50년도 넘었다. 제언하고 싶은 현실적 방안은, 우리가 G10에 들어간 만큼 이제는 전 세계를 5~6개 권역으로 나눠 엄청난 인력을 여기에 투입하는 것이다. 즉 현재의 공간 체제를 거점 공간 체제로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중동·유럽·북미·남미 등 지역 본부를 만들어 차관급 인사와 중국에 있는 규모만큼의 인력을 파견해 현지에서 더 많은 전략을 도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도 이러한 권역 중 하나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우리 외교부가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김상선 기자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김상선 기자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대중 무역에서 3개월째 적자가 나고 있다. 경기침체나 코로나로 인한 봉쇄 등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구조적 요인은 기술 측면에 있다. 1990년대 중국의 기술 수준이 우리 무릎 아래 있었다면 지금은 목까지 차 있다. 우리가 무역수지 흑자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분야가 반도체, LNG운반선 등 몇 가지 남지 않았다. 그래서 기술이 정말 중요하다. 특히 중국은 인구·토지 대국이기 때문에 기러기형 산업구조 변화가 거의 성립하지 않는다. 중국이 기술 발전을 달성하면 모든 부분을 중국이 가져가게 되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스마트폰이다. 2010년도 한국 삼성이 중국 시장에서 규모로는 24%, 매출액으로는 30%가량차지했지만, 지금은 거의 0%에 가깝다. 중국의 기술 고도화로 한국이 중국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까지 놓치게 된 것이다. 화웨이는 전 세계 1위로 도약하려는 찰나 미국의 제재로 무너졌다. 미중 간 기술패권 전쟁이라는 국제 정세의 변화가 한국에 위기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게 기회이기도 하다. 만약 미국이 중국에 대한 기술 견제를 하지 않았다면 첨단 반도체 등 분야에서 한국이 추월당했을 것이다. 2016년 '중국제조 2025'가 나왔을 때 우리에게 5~10년밖에 시간이 안 남았다고 했는데, 6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기술 이전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러한 미중 간 기술패권 전쟁을 잘 활용해 우리의 기술적 자산을 확대하고, 이 시기를 한중 간 무역수지 흑자가 앞으로 30년간 더 유지될 수 있게 하는 호기로 만들어야 한다.

 김시중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상선 기자

김시중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상선 기자

▶김시중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세 가지 키워드로 말씀드리겠다. 첫 번째는 변화다. 지난 30년간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중국이지만, 미국과 한국도 많이 변했다. 이러한 변화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두 번째 키워드는 불확실성이다. 미중 경쟁이 5~10년 안에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결과도 단정하기 어렵다. 이 불확실한 배경 속 세 번째 키워드는 유연성이다. 한쪽에만 치우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정부는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지만, 기업은 다르다. 정부가 기업의 활동을 제약하는 일은 최소화해야 한다. 차이나 리스크가 커진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기업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중국 사업에 투자를 한다. 이를 막는 행위 자체는 매우 부적절하고, 경제적인 이슈에서는 기업의 자율적인 결정을 허용하는 유연성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유희문 연세차이나포럼 회장. 김상선 기자

유희문 연세차이나포럼 회장. 김상선 기자

▶유희문 연세차이나포럼 회장=1988년 중앙일보 특파원 신분으로 중국에서 취재한 적이 있다. 30년 넘게 중국을 보고 느낀 소감을 말씀드리겠다. 중국은 정책에 일관성이 있다고 하지만, 정책의 집행에서는 예측이 불가하다.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중 간 무역 갈등에서도 그런 면모를 볼 수 있다. 미국은 중국에 명확한 규범이나 문건을 만들어 집행하라고 요구하지만, 중국에는 당 문건보다도 상부의 뜻을 헤아려 집행하는 '췌마상의(揣摩上意)'의 습관이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특히 우리가 알기 어렵다. 미국과 동맹 강화도 좋지만 그렇다고 중국을 무시할 순 없다.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에 접근할 때 제안하고 싶은 한가지 대안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협력의 틀을 찾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정책의 유연성을 갖기 상당히 어렵다. 향후 30년은 지방정부와의 협력이 정책의 위험성을 헤징할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박한진 KOTRA 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 김상선 기자

박한진 KOTRA 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 김상선 기자

▶박한진 KOTRA 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수교 초기 많은 분이 중국 경제가 더 커지면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이 팔면 싸지고, 사면 비싸진다. 중국이 팔지 않으면 공급망 위기가 오고 중국이 사지 않으면 해외시장이 줄어든다. 현 상황이 그렇다. 최근 대중 무역적자가 나타났는데, 사실 10년 전에도 이런 상황을 경고했었다. 문제는 가공무역이다. 수교하던 해까지는 한국이 만성 적자를 기록했다가 가공무역을 하기 시작하면서 투자가 늘어나고 대중 무역이 흑자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효가 거의 다 했다고 본다. 우리 기업 입장에서 앞으로의 과제는 중국의 인구변화와 도시 재분포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수교 초기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많은 지자체와 중국 지방정부 간에 자매결연을 했다. 하지만 사실상 인적 교류 수준이었고 코로나 이후에는 그마저도 중단됐다. 향후 한중 지방 간 협력을 실제 비즈니스 무대로 삼는 논의가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상선 기자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상선 기자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경제적으로 우리가 중국에 많이 의존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큰데, 이게 과연 우리가 걱정할 일인가 싶다. 대표적으로 우려하는 부분은 전통적으로 우리의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점과 중간재 같은 분야의 수입 의존도도 높다는 점이다. 그런데 현재 중국이 자체 공급망 강화를 위해 자국 내 생산을 늘리고 있는 부분은 대부분 한국이 수출하는 분야다. 즉 한국이 공급을 안 하면 중국 내 생산이 멈출 수밖에 없다. 오히려 중국이 더 걱정해야 하지 않나. 우리가 더 신경 쓸 부분은 높은 의존도가 아니라 한국이 중국에 더 많은 공급을 해서 중국 내 자체 공급망이 확충되고, 중국 제품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게 돼 한국 제품이 경쟁우위를 상실하는 상황이다. 지난 30년간 한중은 기술 차이에 의한 분업이 이뤄졌다. 그런데 지난 10년을 보면 우리가 중국에 대해 경제적 우위를 갖는 품목이 줄고, 열위로 변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최근은 2차 전지나 디스플레이 산업도 위협받고 있고, 경쟁은 더 심해지고 있다. 향후 30년은 경쟁에 의한 새로운 분업 구조를 찾아 나가야 한다. 중국과 차이 나는 분야와 차별화된 제품을 갖춰야 중국시장에서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 이젠 기술이나 품질과 같은 전통적 경쟁력만으론 힘들다. 서비스 면에서 차별화되고 소비자 위주인 프리미엄 제품들이 나와야 한다. 한국은 식품의 위생이나 안전 부분에서 강점이 있다. 향후 30년은 이러한 변화들이 이뤄져야 한다.

추장민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상선 기자

추장민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상선 기자

▶추장민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얼마 전 한중 환경협력 30년 회고와 미래발전 전망이라는 간담회에서 한중 간 환경 협력을 한 여류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말로 정리한 바 있다. 한중 간 환경 협력이 많은 실적도 거뒀지만, 최근에는 실효성이나 책임 논란으로 점차 냉각되고 있다. 미래 30년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환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첫째, 한중 혹은 동북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등 문제를 이제는 동아시아 혹은 글로벌 차원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협력의 주체를 민간과 전문가 수준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현재 정부나 공공 부문에서의 협력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한중 양국 또는 동북아 지역의 환경 현안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탄소 중립을 위한 협력이나 글로벌 인류를 보호하는 협력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중이 미래 30년을 위해 탄소 중립을 향한 공동의 배를 띄워야 한다는 제안을 드린다.

윤경우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장. 김상선 기자

윤경우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장. 김상선 기자

▶윤경우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장=중국의 패권 도전이라는 '중국 요인'은 모두가 알지만, 미국의 패권 유지 목표와 같은 '미국 요인'은 간과하는 것 같다. 한국의 정책적 고민도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반도체를 예로 들면, 많은 이가 삼성 같은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진출하면 마냥 좋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 한국의 우수한 제조공정 기술은 우리 기업 고유의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게 미국 사회에 이식이 되면 사실상 우리의 장점을 빼앗기게 된다. 미국 진출을 하면 비용 증가도 불가피하고 한국 내 일자리 감소는 물론 협력업체의 도산을 야기해 원자재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러한 미국 요인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험난한 산을 넘을지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난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와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상호 간에 이해·인정·존중할 필요가 있고, 자기반성도 필수적이다. 우리 사회는 어떤 프레임을 내세우며 서로 편 가르기 하는 행태 때문에 상호 간 신뢰 향상과 축적이 어려운 상황이다. 신뢰는 상호 간의 노력을 통해 축적되는 것이고, 그렇기에 배려와 인내가 상당히 필요하다.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이다. 변화는 늘 위기를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이를 기회로 만들려면 당파적 정치적 이익 추구나 편 가르기 등을 지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이 유연한 실리외교를 통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이남주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이남주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이남주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한중 수교 30년에서 긍정적인 측면은 양국 관계의 양적 발전을 넘어 한국과 중국 모두 상당한 국가 발전을 성취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1인당 GDP는 500달러에서 1만 달러를 넘었고, 한국도 1만 달러에서 3만 달러가 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웃한 두 나라가 동시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케이스는 사실상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중국을 국가로 보게 되면 중국 자체가 워낙 중앙집권적이기 때문에 그 힘이 세지는 데 대한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중 간 1인당 GDP 차이는 결국 국민 1인의 역량에서 한국이 아직은 중국보다 더 큰 힘과 기회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 발전은 국가 전체가 갖는 규모의 힘도 중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그 국가의 구성원이 어떤 역량과 기회를 가졌는지에 의해서도 결정될 수 있다. 중국의 힘이 세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가진 힘도 적극적으로 생각한다면 좀 더 당당한 태도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다음으로는 대중전략에 대한 우려가 큰데, 현실적으로 한국이 중국이나 미국을 상대로 일반론적인 정책을 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안별로 접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중국이 가진 리스크와 도전은 커지고 기회는 줄어들었다고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아직 여러 가지 협력 분야가 분명 존재한다. 지금은 일반론적인 대중정책 보다는 실사구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즉, 어떤 부분이 리스크이고 기회인지 유심히 검토하고, 이를 중심으로 전문가들의 논의가 펼쳐져야 한다. 중국이나 외교 정책에 관한 논의가 정치화된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 생산적인 결론을 만들기 어렵다. 이런 논의를 할 기회가 많이 생기기를 기대한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지정학연구센터장. 김상선 기자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지정학연구센터장. 김상선 기자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지정학연구센터장=30년간 한중의 경제 관계를 짧게 정리하면, 제조업 1위국과 제조업 5위국의 관계다. 한국은 지난 30년간 중국이 제조업 1위로 올라서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고, 중국도 한국이 제조업 5위가 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이렇게 상부상조하는 관계 속에서 제조업과 공급망 각축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100년 전 열강들의 각축과 매우 유사하다. 제조업 1위국과5위국이 결국은 그 열강 중 하나로 볼 수 있다는 소리다. 물론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 한미·한중·한일 등 관계를 두 열강 사이의 관계로 바라보고, 제조업 5위 국가라는 한국의 실력을 인정하면서 지금의 상황을 바라본다면 새로운 시각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봉섭 광운대 교수/ 전 주선양 총영사. 김상선 기자

신봉섭 광운대 교수/ 전 주선양 총영사. 김상선 기자

▶신봉섭 광운대대학원 국제지역과 초빙교수=한중 수교 6년 전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아시안게임이 열리기 전인 1986년 초 중국 경제체제개혁연구실의 브레인 6명과 감독관 1명을 극비리에 한국으로 초청해 울산 포항제철·구미 전자단지·창원 기계공단 등 그 당시 내로라하는 산업단지 시찰을 했었다. 그런데 그들은 새마을운동에 오히려 더 관심을 보였었다. 그리고 첨단산업은 아직 먼 훗날의 일이고 당장은 먹고사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많은 산업이 중국에 따라 잡혔다는 말을 들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많은 이가 한중 관계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고 있지만, 우리 전문가들만큼은 좀 더 생산적이고 희망적인 쪽으로 뜻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2년간 중국에서의 현장 경험을 종합하면, 중국 중앙정부 차원의 경제나 지표는 결코 중국의 전부가 아니다. 중국은 지방마다 경제 수준과 지표가 다르다. 2선, 3선 도시로 시야를 확대해서 보면 여전히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남아있다. 향후 30년에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장기적으로 민관이 함께 할 수 있는 민관 합동 경제·안보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는 민간이 자체적으로 교역과 현지 진출을 통해 한국의 지속적인 성장 엔진을 살려 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또 우리 전문가들은 집단지성의 힘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물론 향후 한국은 한미 동맹을 기본으로 해야겠지만, 국가 이익과 정체성에 부합하는 선에서 경제적 실익을 나눌 수 있는 다자주의 공간을 모색하고 확대·발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김상선 기자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김상선 기자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최근 미중 관계를 상수로 여기고, 변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는 분이 많다. 하지만 사실은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다. 올 4월 방미 대표단 일원으로 워싱턴을 다녀온 뒤, 8월에 한 번 더 미국을 방문했는데, 워싱턴 측의 기조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의 기존 경제안보 측면에서의 대중정책은 동적인 '다이내믹 컨트롤'이었다. 즉 기술 발전에서 중국이 추격하더라도 어느 정도 미국이 앞서 나가면 규제를 완화하는 식으로 격차를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8월 초 방미 당시, 이제는 중국이 아예 첨단 기술에 접근하지 못 하게 하는 정적인 '스태틱 컨트롤'로 바뀌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이홍규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이홍규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이홍규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미중 관계에서 중국이 거의 변한 게 없다는 평가가 있다. 공산당은 덜 변했을지 모르지만, 중국 사람들은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이나 문화, 라이프스타일이 정말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이 공포를 느꼈고, 그래서 지금의 시진핑 체제가 등장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한국은 왜 포스트 시진핑 시대의 한중 협력은 생각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한국 정부는 좀 더 영리해져야 한다. 이제까지는 한국이 주로 중국에 투자를 많이 했다. 중국의 첨단 기업들은 왜 한국에 투자하지 않나. 한국 정부도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만약 중국 기업들이 한국에 많이 투자한다고 하면, 한국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중국 관련 학과 학생들도 늘어나고, 고용도 많이 늘어나 기업도 안정이 될 것이다. 한중 간 인문 교류는 사실 내용이 비어 있다. 한국학자들과 중국학자들이 진짜 내실 있는 인문 교류를 한다면 중국학자들이 변화할 것이다. 민주주의 문화 속에서 성장한 한국학자들이 중국학자들에게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다. '캠퍼스아시아'는 한국 학생들과중국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며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 학생들의 많은 변화를 보게 됐다. 한중 관계의 미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양평섭 현대중국학회 회장. 김상선 기자

양평섭 현대중국학회 회장. 김상선 기자

▶양평섭 현대중국학회 회장=대중 적자라는 30년 만에 느끼는 충격 때문에 고민이 커지고 있는데, 여전히 답을 못 찾고 있다. 30년 동안 한중 간 경제 관계는 실로 좋았다.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이들도 다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변화된 상황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고민이 우리 세대에서 끝났으면 좋겠다. 다음 세대들은 무슨 고민을 해야 할지 걱정할 정도로 나머지 관계가 모두 개선되길 바란다.

박경하 엠케이차이나컨설팅 대표. 김상선 기자

박경하 엠케이차이나컨설팅 대표. 김상선 기자

▶박경하 엠케이차이나컨설팅 대표=한중 수교 이후 많은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진출했고 중국 정부도 이들을 환영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중국 진출 기업들은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훨씬 많아졌다. 시대도 정책도 시장도 변했다. 기업은 생존이 어려워지면 결국 본국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물론 지혜로운 방식으로 여전히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들도 많다. 하지만 결국 어떤 기업이든 출구전략은 필요하다. 특히 중국 사업에서는 출구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중국에서 사업을 정리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에 있는 외국인 투자 기업들은 휴업 허가도 받기 어렵고, 청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매수자를 찾으면 그나마 지분 양도 방식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어렵게 매도에 성공해도 지분 양도 대금을 한국에 가져오려면 또 복잡한 과정이 있다. 즉 지분 변경 등기가 완료되어야 외환을 중국에서 한국으로 반출할 수 있다. 거래 과정에서 에스크로 계정을 꼭 만들어서 자금을 중국에 유치해 뒀다가 주인이 바뀌고 난 뒤에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분 변경을 완료한 뒤 자금 인출을 하려고 하면 중국의 지방 세무공무원들이 10%의 양도소득세를 징수한다. 하지만 한중 조세협정에는 분명 부동산 과다 법인(지분 50% 이상 점유)이 아닌 경우 중국에 징세권이 없다고 명시돼있다. 한국의 세무전문가들은 다 알지만, 기업들은 잘 모르는 내용이다. 그래서 기업들이 이 10% 세금을 중국에 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한국 국세청에서는 또 추징을 한다. 일반 세무 공무원들이 재량권을 행사해 일단 기업 철수부터 하자는 식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정책은 있는데, 집행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많이 와 닿는다. 기업 경영에서 불확실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기업의 대중국 사업 실패를 정부가 막아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남은 재산을 안전하게 본국으로 가져올 수 있어야 다른 회사들도 다음에 또 투자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국가 간의 협약은 실무에서도 잘 지켜져야 한다. 한중 양국 관계자들이 빈번한 교류를 통해 현장에 쓸 수 있는 매뉴얼을 제작하고, 정책적 지도와 정책 실행 상황 모니터링 등이 활발하게 이뤄진다면 향후 30년 한중 관계가 더욱 건전해질 것이라 기대한다.

정환우 한중 무역통상 전문가. 김상선 기자

정환우 한중 무역통상 전문가. 김상선 기자

▶정환우 한중 무역통상 전문가=최근 대중국 무역 흑자가 줄어들고 지난 3개월 동안은 심지어 무역 적자가 나타나 우려를 낳고 있다.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최근 10여 년 전부터 한중 간에 새로운 무역 분업 구조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대중 무역 수지가 줄어드는 가장 근본적이 이유는 대중국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즉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수출하는 부분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인데, 그중 중간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우리는 중간재 중심의 대중국 수입 구조가 사실 한국에 상당히 중요한 특징임을 간과하기가 쉽다. 미국·독일·일본과 비교하면 이들 국가의 대중국 수입 비중은 소비재가 35~40%를 차지한다. 반면 한국의 소비재 수입 비중은 15~16%밖에 되지 않고, 중간재가 60%를 넘는다. 중간재 중심의 대중 수입이 증가하는 것이 한국의 무역수지 자체에는 걱정거리일 순 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수입이 늘어나는 만큼 한국의 대세계 수출에는 더 이로운 측면이 있다. 실제로 미국의 수입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이 지난 10년 동안 2%p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대중 수입이 늘어나면, 또 그만큼 대세계 수출이 늘어나므로, 너무 상황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그리고 향후 이런 추세가 계속될 텐데, 대중국 수입품에 어떤 부가가치를 더해 국내 생산에 잘 활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 수입품을 한국에서 가공해 미국이나 다른 나라 시장에 파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통상 분야의 마찰이나 갈등 요소를 잘 관리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대중국 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리스크이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너무 걱정만 하기보다는 잘 대응하는 것이 관건이다.

최필수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최필수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최필수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한중 관계가 미중 관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잘못하면 비이성적인 패닉에 빠질 수 있다. 사실 미중 관계는 1부터 5까지 단계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다. 1단계는 미중 카르텔, 겉으로는 싸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둘이 한편이라는 뜻이다. 2단계는 공존 속의 경쟁, 3단계는 1970년대 데탕트 이후의 미소 냉전, 4단계는 1950~1960년대 미소 냉전, 5단계는 전쟁이다. 지금 판단하기에 현재 미중 관계는 1단계에서 2단계로 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상황을 이미 3~5단계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은교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김상선 기자

조은교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김상선 기자

▶조은교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다음 30년을 위해서는 앞으로의 5년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5년간 탄소 중립·디지털 전환·코로나 19·미중 전략적 경쟁 등 대전환이라 불리는 여러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향후 5년도 이러한 대전환의 시기 속 한중 관계의 미래를 잘 준비하고 새로운 협력 모델을 찾아 나가는 것이 상당히 중요할 것 같다. 중국의 산업 경쟁력 강화와 산업 구조 고도화로 인해 일부 주력 산업에서 중국이 한국을 추월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단 이런 상황을 단순히 위협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대전환 시기에 새롭게 열리는 시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탄소 중립으로 열릴 친환경 시장 또는 수소 산업, 디지털 전환 시대에 열릴 첨단산업 등 한국의 고부가가치 제조업과 중국의 디지털 플랫폼이 결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산업 분야에서의 한중 양국의 협력 방안에 주목해야 한다.

서봉교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서봉교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서봉교 동덕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최근 발표한 디지털 금융 분야 논문에서 중국의 인앱 결제의 특징과 한국의 구글 인앱 결제 강제화에 대해 연구했다. 결론적으로 구글이나 애플이 앱 마켓을 90% 장악하고 있어 한국은 이런 기업들에 꼼짝 못 하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중국은 로컬 앱 마켓 개척 등 구글과 애플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많이 키우고 있다. 한중 미래 30년에는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 또는 미국의 패권이 약화하고 있는 부분에서 한중의 협력의 장 또는 기회를 찾는 것이 어떨까.

사회·문화, “역지사지와 자기성찰 절실”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마침 올해로 결혼 30주년을 맞았다. 과거 와이프와의 싸움을 돌이켜보면 정말 화가 날 때는 '헤어질 결심'을 하고 치명적인 약점을 건드렸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적당히 넘어갔던 것 같다. 한중 양국도 헤어질 수 없는 사이다. '헤어질 결심'을 하고 서로 치명적인 약점을 건드리는 싸움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공자의 『대학』에는 싫어하면서도 그 사람의 장점을 볼 줄 알고, 좋아하면서도 그의 약점을 볼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한중 관계는 딱 이러했으면 좋겠다. 많은 분 말씀대로 지금은 위기 상황이다. 역사적으로 몽골·왜·청나라 등 동북아의 새로운 강자가 부상하고 동아시아의 판이 흔들릴 때마다 한국은 늘 위기를 맞았다. 한국은 위기가 닥치면 정의롭고 의로운 민족이라 항상 선비 정신으로 무장했었다. 하지만 위기일수록 상인의 비즈니스적인 감각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하도형 국방대 부총장. 김상선 기자

하도형 국방대 부총장. 김상선 기자

▶하도형 국방대 부총장=한중이 구동존이(求同存異)와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강조하면서도 여전히 서로 간에 불협화음이 생기고 있는 이유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향후 30년을 위해서는 지금의 어려운 국면을 잘 관리해 위기를 넘겨야 한다고 사료된다. 여기서 우리는 '지피지기'를 좀 다르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지(知) 피지기(彼知己), 즉 상대방이 나를 아는 것을 안다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이 한국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중국도 한국이 중국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알아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고, 이에 대한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술원장. 김상선 기자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술원장. 김상선 기자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우선 중국에 대한 인식과 문제를 다루는데 우리 지식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간략히 말씀드리겠다. 한중 관계에서 한국의 국가이익과 전략적 환경은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요인이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은 경제적·군사적으로 세계 10대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러한 명확한 변화를 우리 스스로 잘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한국의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라는 주제에서 한중은 늘 불가분의 관계였다. 그리고 이 구조 자체는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 사료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간의 변화를 기초로 지금의 국가 위상과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한국의 국가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지식계는 우리의 변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한중 관계를 미중 관계의 부속물로 간주해왔다. 현재 상황을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상황에 빗대 새로운 공포를 조장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가 중국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도 사실상 중국이 자신들의 위상 변화에 맞춰 전반적으로 국가 전략을 재구성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변화를 잘 이해해야 그에 맞는 대응을 할 수 있다. 사실 과거의 조공 관계는 역사적으로 다른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적 주변부 종속관계도 이와 비슷하다고 여기는 편면적 인식이 많다. 이때문에 한국에는 중국의 부상을 두려워하거나 중국의 변화를 무시하고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점들은 한중 관계에서 한국이 반성할 부분이다. 이제 중국의 변화에 대한 이해는 우리에게 사활적 과제이고 이에 대한 심층적 연구가 필요하다. 여기에 대한 학계의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석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김상선 기자

한석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김상선 기자

▶한석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지난 30년을 돌아보면 한국은 중국과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왔고, 그리고 이 30년은 한국 스스로가 변화해서 공통점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향후 30년은 중국이 변하는 시기가 됐으면 좋겠다. 중국이 변화하기 어렵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중국도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최근 중국을 연구하는 미국 학계 사람들은 '중국의 부상은 멈췄다'고들 한다. 또 더 타임스 같은 언론에서는 '중국의 몰락'을 이야기한다. 중국이 변화에 적응하고 흐름을 따라가려고 하는 이때, 한국은 우리 국익에 맞게 중국이 변화할 수 있도록 유도했으면 한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김상선 기자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김상선 기자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한중 관계 30년이 지났다. 우리는 그동안 전통 중국과 현대 중국을 헷갈렸던 것 같다. 현재 한국이 맞닥뜨리고 있는 상대는 수교한 지 30년 된 사회주의 중국이라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특히 제도와 가치가 우리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그동안은 '우리에게 중국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면 이제부터는 '중국에게 우리는 무엇인가'를 고찰해야 한다. 자기 객관화를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중 간 갈등이 생기는 것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한중 관계에서 너무 조바심내고 정상화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는 소리다. 할 말은 하면서 싸울 때는 싸우고 또 그렇게 새로운 기준점을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지식인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각자 노력한다면 한중 관계도 함께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부 교수. 김상선 기자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부 교수. 김상선 기자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부 교수=한중이 싸워가며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또 너무 많이 싸우면 안 된다. 부모끼리 너무 많이 싸우면 자식들도 잘 못 지낸다. '삼십이립'으로 이제 두 발로 서기까지 한중 양국은 서로 의지하면서 다툼도 많이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악한 감정이 좋은 감정을 초월한 게 문제다. 우리 후세대를 위해서라도 덜 싸우고 잘 지내야 한다.

김동하 부산외대 중국학부 교수. 김상선 기자

김동하 부산외대 중국학부 교수. 김상선 기자

▶김동하 부산외대 중국학부 교수=최근 겪은 경험을 토대로 혐중·반중 현상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하나를 공유하고자 한다. 얼마 전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으로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한중 미담 사례' 공모를 진행했다. 한국 측 응모자에 대해 심사를 맡았는데, 기억에 남는 사례가 많다. 중국 현지 의사들 도움으로 첫아이를 무사히 출산한 한국 산모 이야기, 코로나 봉쇄로 식료품이 떨어져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 이웃의 도움을 받았던 교민 이야기, 상하이 지하철에서 저혈압으로 실신 후 중국 시민의 차로 응급실에 옮겨져 위기를 넘긴 유학생 이야기 등 많은 미담이 발굴됐다. 요즘은 온라인 시대이고 SNS 시대이니, 이런 미담 사례를 카드뉴스나, 유튜브 등을 통해 많이 확산시키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과거 인터넷에 악플이 심각해졌을 때, 선플 달기 운동을한 적도 있지 않나. 이런 식으로 반중 정서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정종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상선 기자

정종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상선 기자

▶정종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중국의 부상에 따른 양국 국력의 비대칭성, 미중 전략 경쟁관계의 심화에 따른 한중 관계의 종속화, 북한 문제 등 미래의 한중 관계를 규정할 여러 요소가 있지만,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청년 세대의 반중·반한 정서라고 생각된다. 현재 양국 청년 세대의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그 어느 세대보다도 높다는 사실은 공통된 특징인데, 다만 약간의 온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특히 한국 청년들의 반중 정서가 더 심각한데, 자신들의 스탠더드에 중국이 맞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라 사료된다. 대학교의 중국어 전공자나 기업 혹은 외교부 내 중국 전문가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반면 한국에 대한 중국 청년들의 반감이 다른 세대보다 크긴 하지만, 다른 나라에 대한 반감과 비교했을 때는 한국에 대해 상대적인 호감도가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학위 과정을 하는 중국 유학생 수는 사드와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작년 최고치를 경신했다. 물론 불법적으로 이용 중이기는 하나, 한국 문화에 대한 중국 내 수요나 호감도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중국 대학에서 한국어나 한국 관련 전공은 여전히 인기가 많다고 한다. 현재 한국 청년들의 절대적인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는 것 외에도 나름대로 존재하는 중국 청년들의 상대적 호감도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발전시킬 것인가가 우리에게 가장 큰 과제이다. 사실 한중 양국 간 부정적 인식과 감정이 뉴미디어의 왜곡된 정보로 인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코로나 상황 때문에 그간 중단됐던 오프라인 교류의 재개를 준비하고 또 체계적으로 이를 추진해야 한다. 향후 영리더스포럼이나 아시아판 잘츠부르크 세미나 등 문화 중점 프로젝트 등을 통해 오프라인 교류를 체계화하면 청년들의 인식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는 솔루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전인갑 서강대 사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전인갑 서강대 사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전인갑 서강대 사학과 교수=인문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향후 30년간 한중 관계에서 가장 큰 갈등요소는 아마 지식체계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현재 중국은 부강과 부상을 넘어서 문명의 헤게모니에 도전하고 있고, 자신들의 담론·지식·학술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2016년부터 이러한 작업을 진행했고 현재는 상당한 성과를 보이는 것 같다. 한국은 경제·패권에 관한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다 보니 이런 학술적인 부분은 홀시 한 측면이 있다. 갈수록 한중 간 개념과 용어, 학술과 담론의 차이가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한중관계사연구소장. 김상선 기자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한중관계사연구소장. 김상선 기자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한중관계사연구소장=오늘 미중 관계 속 한국의 포지션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 것 같다.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2년 전쯤 중국 학자 두 분과 명·청 교체기의 조선과 비슷하게 지금 한국이 미중 양국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자 당시 중국에서 오신 두 학자분이 동시에 '중국도 미국을 선택할 텐데, 한국은 당연히 미국을 골라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대답해 상당히 놀랐었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이렇다. 얼마 전 중국 측과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대부분의 중국학자는 한국과 중국이 하나의 '공동체'라고 했고, 한국학자들은 한국과 중국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분명한 시각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1년 '인류운명공동체'를 제안한 뒤, 19차 당 대회에서 이를 문건에 적용해 중국의 대표적인 대외전략으로 만들었다. 당시 한국 언론 보도를 보면, 시진핑 주석이 '인류운명공동체'를 제안했으니 사드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가 많았다. 하지만 사실상 '인류운명공동체'는 '천하(天下)' 질서와 마르크스 사상이 결합한 이념이고, 중국은 이를 세계에 전파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한국이 얼마나 중국의 정치적인 메시지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고, 또 여기에 무감각했는지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중국에 대해 종합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센터가 필요하다.

오태석 동국대 중어중문학과 명예교수 겸 한국동아시아과학철학회 회장. 김상선 기자

오태석 동국대 중어중문학과 명예교수 겸 한국동아시아과학철학회 회장. 김상선 기자

▶오태석 동국대 명예교수/한국동아시아과학철학회 회장=지경학·지정학적으로는 한중 관계에서 우려할 점이 많지만, 문화적인 측면은 사실 좀 다르다. 한국과 중국은 문화적 공유도가 상당히 높다. 공유하는 부분을 기초로 앞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그것이 큰 힘이 되어 갈등 요소를 함께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40년 동안 전반 20년은 중국 문학 비평을 공부했고, 후반 20년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등 현대물리학으로 중국 고전 사상에 담긴 주역, 노장, 불교를 재해석하는 일을 해왔다. 처음에는 상당히 어려웠으나 이러한 것들을 한데 묶어 연구하다 보니 새로운 것들이 창출되는 것을 느꼈다. 그런 면에서 중국과 한국이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을 기초로 미래 먹거리인 과학 분야와 접합한다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 기반 과학과의 협업을 융합한 새로운 형태의 학문 기관, 연구소를 만들었으면 한다. 가칭은 '인문과학연구원' 또는 '인문융합원'이다. 현재 과학기술 융합 연구소는 많다. 이제는 인문 기반 과학과의 융합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고, 한국과 중국에 각각 이런 연구소를 만들어 이를 바탕으로 교류를 하는 것도 놀라운 발전과 협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가림 호서대 혁신융합학부 교수. 김상선 기자

전가림 호서대 혁신융합학부 교수. 김상선 기자

▶전가림 호서대 혁신융합학부 교수=최근 한중 외교부 장관이 중국 칭다오에서 만나 모두 공자의 『논어』를 언급했다. 중국은 「위정(為政)」편 한국은 「자로(子路)」편을 각각 인용했기에 그 의미와 의도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논어에는 항상 대칭되는 내용이 나오는데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나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라는 구절에서 우리가 화이부동을 언급했다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고 본다. 물론 이와 관련해 좀 더 논리적이고 세밀한 논의와 연구가 필수적이다. 첫째, '화이부동'이 정확히 어떤 맥락을 가졌는지 파악해야 이를 토대로 중국과 공존·공영 그리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둘째, 중국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1년에 한 번이라도 한중 관계나 중국 공산당·경제·사회·무역 등 각종 분야에 대해 정리해 책으로 만드는 등 연구를 지속했으면 한다. 셋째, 여기 모인 전문가들이 홍콩 포함 중국 내 9개 공관의 조사역으로서 중국을 제대로 연구할 기회가 마련되길 바란다.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김상선 기자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김상선 기자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오는 11월에 '한중 MZ세대의 세계인식과 상호인식'을 주제로 한중 교류를 준비 중이다. MZ세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좀 들어볼 계획이다. 현재 젊은 세대들의 반중·반한 정서를 들여다보면 달라진 국가 위상에 맞춰 서로에게 새로운 인식을 요구하고 있다. 향후 10년에서 30년은 한중이 서로를 다르게 인식하고 또 자기인식을 새롭게 하는 전환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이 시기에는 새로운 발상과 질문이 필요하다. 최근 비교적 관심 있는 부분은 중국 학계의 '마이너리티(소수자)'다. 즉 중국 내 좌파적 자유주의자, 사민주의자들이다. 일본은 이런 중국의 비주류 소수 학자들을 초청해 학술회의도 하고 책도 발간했다. 반면 한국은 한 번도 이들과 학술회의를 한 적이 없다. 그 원인은 검토를 해봐야겠지만, 한국과 일본 학계 간에 상당한 수준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류·비주류에 상관없이 다양한 학파의 학자들과 평등한 입장에서 논의하는 순간이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이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역할을 다 해야 한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하남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하남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한국과 중국 청년 세대는 깊은 갈등에 빠진 것 같다. 특히 SNS나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채널 등 온라인에서의 갈등은 물론 일부에 국한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극단적인 표현들이 오가기도 한다.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 때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개막식 한복 문제가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는 논란이 됐다. 이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최근 몇 년간 한중 청소년 또는 청년 세대가 게임이나 트위터 같은 온라인 서브 컬쳐에서 벌여온 논쟁이 그 발원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양국 청년들이 자국 내에서 처한 상황은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사실 매우 유사하다. 한국에서 최근 몇 년간 유행했던 ‘헬조선’, ‘N포세대’, ‘노오오오력’, ‘금수저, 흙수저’ 등의 담론은 경쟁 과잉과 청년 실업, 불평등, 세습자본주의로 희망이 없는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상(丧)문화’, ‘내권(內捲)’, ‘얼다이(二代)’, ‘996’ 등의 유행어는 한국의 청년 담론과 거의 유사하다. 그렇기에 양국의 청년 세대는 이를 공통의 문제로 인식하고 서로 간의 편견과 반목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이미 기후위기나 에너지 위기, 인종주의, 불평등, 혐오와 차별 등의 의제는 한 나라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다른 세대보다도 더 긴 미래를 살아내야 하는 지금의 청년 세대들에게 더 중요한 문제다. 그런 면에서 양국 청년 세대의 상호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 오프라인에서의 실제 교류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민수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김상선 기자

김민수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김상선 기자

▶김민수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젊은 세대들의 반중 감정은 기성세대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젊은 학생들이 중국 관련 전공을 기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전공을 하는 학생들도 공부의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 이유를 가만히 보면 '그냥 중국이 싫다'이다. 물론 언론이나 사회망의 역할이 크다는 점을 많이들 지적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것 같다. 우리는 향후 협력이나 경쟁의 대상으로서 중국을 피할 수 없는 국가다. 그런데도 중국을 기피하는 현상이 계속 더 커진다면 미래에 우리는 중국을 더욱 이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중국 문제를 논의할 때, 그다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에 대한 담론을 더 키우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학제 간 연구, 산관학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들을 주셨다. 최근 경제·안보가 이슈다 보니 정치학자들은 경제와 반도체 공부를 하고, 경제학자들은 국제정치를 공부하고 있다. 이는 결국 중국 문제가 복합적이기 때문에 단일 학문적 접근이 어렵다는 점을 방증한다. 연구와 정책의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성과의 화학적 결합이 가능한 플랫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재삼 확인할 수 있었다. 외교 정책도 좀 더 신중했으면 한다. '중국 경제가 고꾸라진다', '중국은 이제 끝났다' 등 자극적인 언사보다는 '무역 다변화를 해야 한다', '무역 거점을 확장해야 한다' 등 좋은 표현들이 많다. 굳이 특정 국가를 콕 집어 말하면 불필요한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전략도 좀 더 신중하고 정교하게 들뜨지 않도록 장기적인 호흡을 갖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 오늘 참석한 전문가 여러분들이 이러한 정책·학문 연구와 학제간 또는 산관학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주시길 바란다.

김현철 연세대 중국연구원 원장. 김상선 기자

김현철 연세대 중국연구원 원장. 김상선 기자

▶김현철 연세대 중국연구원 원장=세 가지 제안을 드린다. 첫 번째는 인문정신과 소통이다. 양국의 교류는 세월의 흐름에 편승한 역사의 관점이나 정치적 판단보다는 오랫동안 지녀온 인문정신적 유대가 더 큰 작용을 해왔다. 최근 정서적으로 갈라진 틈과 가치관의 차이를 채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소통이며, 교류를 위해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매개체 역시 소통이다. 반중·반한 정서는 '정부=국민'이라는 잘못된 프레임 속에서 생겨나고 또 증폭되고 있다. 미래 양국의 생산 주역이 될 청소년들의 우호 정서를 굳건히 하고 돈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키워드는 동화와 공유다. 미래지향적 관점과 충실한 관계의 파급력이 양국의 소프트파워 능력을 높인다. 교류를 통한 공유의 단계로 접어들게 되면 이것이 바로 서로가 인류 교류 공동체 또는 인류 문명 세계권에 동화되어 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탈 경계와 교차다. 중국인과 한국인은 서로 달라서 마주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경계 짓고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교차를 통해 무언가 마주 보고 공통점을 찾는 것이 바로 미래의 과제이다. 지금은 한 국가의 문화가 그 나라의 고유한 소유물이 아닌 그 외 더 많은 나라 사람들이 사용하고 공유하는 '탈 경계' 문화로 탈바꿈하고 있다. 몰라서 잘못을 저지르는 우를 범하기보다는 아직 잘 모르니 앞으로 잘 알아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갈라치기를 하기 보다는 다름을 인식하고 두 지역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위가 분명한 처지에서 너와 나를 가리지 않는 본질을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고 비로소 한중 양국의 멋진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

원동욱 동아대 국제학부 교수. 김상선 기자

원동욱 동아대 국제학부 교수. 김상선 기자

▶원동욱 동아대 국제학부 교수=지금을 '탈진실의 시대'라고들 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다른 것에 대한 혐오와 배타성이 증가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한중 양국 간에도 이런 면이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 이외에 정당·지자체·기업·시민사회·언론·대학 등 여러 주체가 참여하는 다층적 협력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방안으로는 양국 간에 민간 차원의 상호 혐오 및 배타성 극복을 위한 한중 공동 기구 설립을 고려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중 공동 신문·방송국·대학·연구소 등 설립도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방안은 한중 청년 세대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각계 전문가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대화와 협력의 공간을 열어주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장정아 인천대 중국학술원 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 김상선 기자

장정아 인천대 중국학술원 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 김상선 기자

▶장정아 인천대 중국학술원 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첫째, 양국 국민은 상대 국가에 나타나는 현상을 고정된 것으로만 보지 말고 그 변화를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소분홍 세대와 애국주의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언론 보도가 많다. 그런데 사실 한국의 청년 세대만 봐도 때로는 매우 민족주의적이고 때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또 어떤 때는 진보적이다가도 보수적일 때도 있다. 이는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근저에 깔린 어떤 것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을 대할 때, 마치 상대의 말이나 행동, 현상이 고정되어 있다고 여기고 그 변화를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둘째, 정부가 주도하는 교류는 한계가 크다는 점이 점점 드러나고 있으므로 교류는 민간에 더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그간 정부가 주도했던 교류들이 한중 관계의 질적인 도약을 가져왔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고, 양국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 힘을 발취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교류의 주체가 되면, 정치적 갈등이 생겼을 때 통로가 막힐 수밖에 없다. 반면, 민간에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어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 청소년들을 초청해 한국 청소년들과 함께 만화나 사진을 배우게 하고, 양국 청소년들이 어떤 이해관계나 우열에 상관없이 평화에 대해 함께 토론하며 우정을 쌓았던 경험도 있다. 또 한국에서 발굴한 자료를 중국에 가져가 현지 연구진들과 함께 국경지대나 농촌으로 조사를 나간 적도 있다. 양국 청년들에게 이러한 경험들이 계속 축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직접 주최를 해야만 실적이 되는 그런 관행과 제도를 과감히 바꾸고, 민간이 더 나설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간에서는 한국인과 중국인들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더 많이 들을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 사회 안에서는 정부와 국민의 생각이 당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같은 국민끼리도 서로 화해가 불가능할 만큼 생각이 다른 것을 당연하다 여긴다. 그런데 다른 나라, 다른 사회인 중국을 하나의 뭉텅이로 보고, 그 국민을 하나의 목소리로 인식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그래서 최근 한중 양국 모두 상대방 정부와 일치하는 국민의 목소리만 서로 보고 듣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한중 양국 청년이나 문화예술인들이 서로 만나 국경을 가로지르는 공감대를 형성한 사례가 많다. 중국인들과 만날 때, 단순히 국민이라는 하나의 신분으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신분으로 서로 다른 위치에서 보다 다채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다양한 가능성을 우리 전문가들이 계속 발굴해 나가야 한다.

이동철 용인대 중국어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이동철 용인대 중국어학과 교수. 김상선 기자

▶이동철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한중, 동아시아, 글로벌 이 세 가지 차원에서 말씀드리겠다. 첫째, 한중 관계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해를 확장하고, 오해를 해소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한중 교류사를 살펴보면 그간 사람들은 한국 문화가 중국의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만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한국이 중국에 영향을 준 부분도 상당히 많다. 한의학의 중요한 고전인 『황제내경(黃帝內經)』은 「소문(素問)」과 「영추(靈樞)」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추」는 중국에서 소실돼 고려 시대 때 다시 송나라로 전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동의보감의 경우는 중국에서 훨씬 더 많이 인쇄됐다. 현대에 와서는 한류가 그러하다. 한류라는 개별적 현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이 문화산업 정책과 제도에서 한국의 대중문화 정책을 많이 따라 했다는 사실이다. 또 한 가지를 예로 들자면, 중국 사회과학원에서는 문학을 연구한다. 이는 중국사람들이 생각하는 '사회과학'과 한국인들의 인식 속 '사회과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작년 김치 파동에서도 중국이 말하는 '파오차이'와 우리의 김치는 서로 다르다. 같은 용어를 쓰고 같은 대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구체적인 내용에서 다른 것들이 많다. 이러한 차이를 서로 정리하면서 오해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동아시아 차원에서 한국의 역할이다. 18세기 이후, 200~300년 사이 동아시아 세계는 점차 분열됐다. 이제 이를 어떻게 복구할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사실 한국이 나설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많다. 일본은 과거 패권 국가로 군림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나서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1900년대부터 '라틴어 대사전'이라는 방대한 사전을 편찬해오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동아시아 한자어 사전' 같은 것을 공동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디아스포라 연구에서도 한국이 절대적인 우위를 갖고 있다. 우리는 중국 동북지역에 조선족이 있고, 일본에는 자이니치가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에는 이런 무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위를 가진 부분을 어떻게 더 선도적으로 연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셋째, 글로벌 차원에서의 기회이다. 분야마다 순위는 좀 다르겠지만, 전 세계 언어 중 대중문화에서 한국어의 영향력은 3위다. 한류는 단순한 영향력 차원을 넘어 자국 문화유산을 현대적인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낸 경험과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 밖에도 중국 연구 분야에서 과거에는 홍콩이 중국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점이었는데, 지금은 홍콩에 언론의 자유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제는 한국이 중국 연구의 글로벌 거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연구는 단순히 지역적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 혹은 문명 같은 보편적 모델 구축이라는 큰 틀에서 고민해야 한다. 중국 연구는 한국의 국가전략, 문화전략에도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상선 기자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상선 기자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첫째는 언론의 책임이다. 언론이 책임감을 갖고 SNS 같은 사적 영역의 내용을 공공의 영역으로 옮기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둘째는 공공외교의 강화다. 결혼 이민자, 유학생, 노동 이민자 등 한국에 이미 와서 생활하는 분들에 대한 관리가 시급하다. 재한 중국인들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이런 부분을 유념해 정책을 펼치길 바란다.

표나리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 김상선 기자

표나리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 김상선 기자

▶표나리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지난해 한중 외교부 장관 회담 이후, 한중 간 교류 협력 프로그램은 대략 160개가 진행 중이다. 내용은 전통문화와 한중 외교사 두 가지에 집중되어 있다. 문화적 유사성을 강조하는 것이 양국 간 우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이제는 바둑이나 젓가락, 박지원과 최치원 등 동아시아 전통문화 콘텐트에 대한 집착을 지양했으면 한다. 현대적인 이슈, 아시아 외 지역에서 발원한 문화라 할지라도 현재 한국과 중국의 일반 대중들이 관심 갖는 분야라면 충분히 협력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최근 한국에서 화제가 됐던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우승자 임윤찬을 보면서 중국의 피아니스트 랑랑(郎朗)이 생각났다. 그 역시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전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다. 한중 교류 협력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문화 교류를 할 때, 이제는 전통문화를 넘어서 이 두 스타 연주자의 협연을 추진하는 등 새로운 접근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한중 간 역사 문화 교류는 깊게 들어가면 결국 문화 종주권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너무 많이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한국이 과거 중화 중심 체제 속 동아시아 국가였다는 인식을 많이 갖고 있는데, 그래서 중국이 항상 모든 것을 중국에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는 우리가 동아시아 국가이기 때문에 갖는 편견일 수도 있다. 해외에 있는 비아시아인들은 아시아의 고급문화를 생각할 때 보통 일본을 떠올린다. 대중문화 부분에서는 K-POP 같은 한국의 문화를 떠올린다. 최근 문화 쪽에서 중국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다. 이런 점에서 한국이 좀 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 문화 산업의 해외진출 과정에서 표절이나 지재권 문제 등으로 한국 기업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대비하고 제도적 차원에서 경쟁을 도와야 한다. 올해는 한중 수교 30주년이면서 대만과 단교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물론 단교 이후 나름대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대만도 체면이나 명분을 상당히 중시하는 중화권 사회다. 앞으로는 우리가 대만과의 관계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켜야 관리를 좀 더 체계화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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