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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서방제재에도 현금 넘쳐…석유·가스 팔아 130조원 챙겼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2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성당 앞 분수대에서 한 아이가 뛰어놀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성당 앞 분수대에서 한 아이가 뛰어놀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가 올해 7월까지 에너지 수출로 130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를 팔아 번 돈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보다 더 많았다. 이는 경제 제재로 러시아를 압박하려 한 미국과 유럽의 시도가 통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는 “천연가스를 경제적 무기로 삼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유럽에 대한 공급을 크게 제한하고 있다”며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분을 메워주는 것이 석유”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러시아가 1∼7월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판매해 올린 매출 970억 달러(약 130조원) 가운데 740억 달러(약 100조원)가 석유에서 나왔다.

지난 1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의 영웅에게 영광을"이란 구호와 함께 러시아 군인의 모습이 담긴 선전 포스터 앞을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의 영웅에게 영광을"이란 구호와 함께 러시아 군인의 모습이 담긴 선전 포스터 앞을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의 석유 판매량은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에도 크게 줄지 않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 7월 러시아는 원유와 경유, 휘발유 등 석유 제품을 하루 평균 740만 배럴 수출했다. 이는 연초와 비교하면 약 60만 배럴 감소에 그친 수치다. 반면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해 수출금액은 오히려 늘었다. 러시아가 올해 석유판매로 벌어들인 매출액은 월평균 200억 달러다. 지난해(146억 달러)보다 37% 증가했다. 이를 바탕으로 러시아 경제개발부는 올해 에너지 수출 수익을 지난해(2442억 달러)보다 38% 증가한 3375억 달러로 예상했다. 엘리나 리바코바 IIF 차석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는 현재 현금 더미에서 헤엄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은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러시아의 주요 자금줄인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에 제재를 가했다.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침공의 책임을 묻는다는 명분과 함께, 러시아 경제를 압박해 푸틴 대통령이 전쟁비용을  충당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WSJ는 “러시아의 석유판매 수치는 이러한 서방의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중국 유조선 양메이후호가 지난 6월 러시아 연해주 나홋카 인근의 코즈미노 석유 터미널에 정박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유조선 양메이후호가 지난 6월 러시아 연해주 나홋카 인근의 코즈미노 석유 터미널에 정박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는 제재에도 러시아가 석유를 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러시아 원유 수입을 늘렸다. 인도는 이전까진 손대지 않던 러시아 원유를 정부가 주도해 하루 평균 100만 배럴까지 들여오고 있다. 인도 국영 석유업체 ‘인디언 오일’은 러시아 국영 석유 기업 로스네프트와 2028년까지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중국도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을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하루 평균 65만 배럴에서 지난 6월 110만 배럴로 늘렸다.

대표적 원유 생산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마저 러시아 원유를 사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시설에서 정제하거나, 이란산 원유와 혼합해 UAE의 푸자이라 항구 등을 통해 국제 시장에 판매되고 있다.

지난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석유 정제 시설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석유 정제 시설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이는 러시아가 원유 가격을 시가보다 낮게 불러 이들 국가들에 팔고 있기 때문이다. WSJ는 “사우디 국영 석유 기업은 싼 러시아 원유를 사들여 시장 가격으로 국제 사회에 팔아 이윤을 남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석유업체 PJSC의 전직 임원인 에브게니 그리보프는 “러시아 석유는 (서방 제재에도) 다른 시장을 찾았다”며 “원유를 싸게 팔아도 (러시아는) 전쟁 비용을 대고도 남는다”고 평가했다.

반면, 컨설팅 회사인 크리스톨에너지의 캐롤 나할 최고경영자(CEO)는 “러시아 원유가 제재에도 불구하고 국제 시장에 팔리면서 유가 상승을 억제해 서방에 도움이 되는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배럴당 130달러에 육박하던 국제유가는 최근엔 100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이 같은 석유 제재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입장차는 크다. WSJ는 “유럽연합(EU)은 올해 12월 5일부터 러시아산 석유의 EU 수출을 대폭 금지할 계획이지만, 미국은 유가 안정을 위해 수출 금지보다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유가상한제를 여전히 선호한다”고 전했다. 유가 상한제는 러시아 석유를 사들일 때 일정 가격 이상으로 구매하지 않기로 국제사회가 합의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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