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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만 논설위원이 간다

결혼시장의 남녀 미스매치, MZ세대 비혼 부추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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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교환이론으로 본 비혼의 사회학

윤석만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지난 24일 통계청은 올해 출생아 수가 25만 명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역대 최저를 기록했던 2021년(26만 명)보다 1만 명 이상 줄었다. 2분기 합계출산율(0.75명)도 OECD 평균(1.59명)의 절반에 불과해 세계에서 인구소멸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로 기록됐다.

역대 최저 출산은 신혼부부가 지난해 처음 20만 쌍 아래로 떨어진 탓이 크다. 비혼 출산을 꺼리는 문화적 특성상, 혼인은 출산의 가장 큰 독립변수이기 때문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다자녀 여부 등 다른 영향도 있지만, 혼인은 출산의 결정적인 변수”라고 했다.

지난해 혼인 처음 20만 건 밑으로
소득 남성 〉 여성, 결혼 성공률 5배
상승혼 욕구, 여성이 남성보다 커
남녀 지위 비슷해져 문화지체현상

2000~2015년 30만 건대 초반에서 엎치락뒤치락했던 혼인 수가 처음 30만 건 밑으로 무너진 건 2016년이다. 2017년 출생아 수도 처음 4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이후 혼인과 출생아 수는 1~2년의 시차를 두고 매년 7~10%씩 급락했다. 가뜩이나 초저출산 국가인데 혼인율이 계속 떨어져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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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엇이 청년들의 결혼을 가로막고 있을까. 집값과 양육비 상승 같은 경제적 부담, 출산에 불리한 근로 환경 등의 이유가 있지만 이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그래서 사회학의 주요 이론인 교환이론의 관점에서 남녀가 지닌 자원을 둘러싸고 결혼 시장에서 벌어지는 미스매치 현상을 분석해 봤다.

결혼은 가치교환의 시장

미국의 사회학자인 노발 글렌 텍사스대 교수는 “상품을 거래하듯 결혼도 개인의 속성과 가치가 교환되는 시장의 속성을 갖는다”고 말했다(『결혼을 통한 지위 획득』). 직업과 소득, 외모와 나이, 학력 등이 맞물려 서로의 가치를 교환하기로 최종 합의한 것이 결혼이라는 이야기다.

결혼을 교환이론으로 처음 바라본 사람은 인류학자인 킹슬리 데이비스였다. 그는 1941년 카스트 사회의 결혼을 연구한 논문에서 높은 계급의 남성과 혼인한 낮은 계급의 여성이 뛰어난 외모를 지녔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그는 남성의 지위와 여성의 외모가 교환돼 신분상승혼(hypergamy·하이퍼가미)이 나타난다고 했다.

최근에는 20·30대 남성을 중심으로 하이퍼가미 담론이 다시 소환된다. 『합리적 남자』의 저자 롤로 토마시는 “자신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우월한 남성을 배우자로 원하는 하이퍼가미는 여성의 본능”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은 자신과 아이를 잘 지켜줄 수 있는 상대방을 선호한다는 설명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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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성은 출산·육아의 경력단절 가능성 때문에 남편의 소득을 고려하지 않을 순 없다. 그러나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본능으로 결혼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은 환원론적 오류”라고 지적했다. “아내가 남편보다 고소득·고학벌인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여서 하이퍼가미를 본능이라고 일반화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가부장제의 관습과 의식이 남아 있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상향혼 욕구는 두드러져 보인다. 2020년 보건사회연구원의 ‘결혼의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배우자의 기대소득으로 월 300만원 이상을 생각한 비율은 여성(74%)이 남성(14.8%)의 5배나 됐다.

실증 연구 결과도 같다. 윤호영 위스콘신대 박사가 국내 결혼정보회사 회원 1만 7026명을 분석한 연구(『결혼시장에서의 가치교환』)에 따르면 남성이 여성보다 고소득이면 같을 때보다 혼인율이 1.7배 높았다. 반대인 경우엔 0.3배로 급감했다. 남성이 여성보다 돈을 더 많이 벌면 결혼 확률이 5배 이상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지만 이런 기대를 충족하는 남성은 많지 않다. 교육부의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연보(2018)에 따르면 대학 졸업자 중 월 300만원 이상 직장에 취업한 비율은 12.5%에 불과했다. 지난 5월 사람인이 조사한 898개 중소기업 신입사원의 평균 연봉(2881만원)도 이 기준에 한참 못 미쳤다.

남녀 이상형의 미스매치

소득은 결혼시장의 중요한 교환가치지만, 여성보단 남성에게 더욱 엄격한 변수로 작용한다. 지난 6월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신혼부부 1466쌍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혼인 당시 남녀의 평균 연령은 각각 37세, 33.9세였다. 평균 소득은 남성(6500만원)이 여성(4200만원)의 1.6배가량 됐다.

소득뿐 아니라 학력에서도 상향혼 욕구는 여성이 강하다. 서울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직장인 최모(33·여)씨는 “나와 학력이 비슷하거나 더 나은 남성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대 딸을 둔 박모(55·여)씨도 “사위 될 사람의 학벌이 딸보다 못하면 조금 꺼려질 것 같다”고 했다.

『배우자 간 학력격차 변화와 결혼 선택』(신윤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학력이 높을수록 유배우자 비중이 높고, 여성은 학력에 따른 격차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남성은 최근으로 올수록 ‘교육수준이 낮은 집단이 높은 집단에 비해 (혼인율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의견도 이런 실태를 반영한다. 인권위는 남녀 데이팅 앱과 관련해 “남성에게만 학벌을 인증케 하고 여성에겐 제한이 없다”며 개선을 권고했다. 결혼·연애 시장에서 학벌에 대한 남녀의 다른 기대치가 인권위에 진정될 만큼 만연해 있다는 뜻이다.

사실 부모세대에는 이런 통념이 지배적이었고 충족하기도 쉬웠다. 남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여성보다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1970년 18∼21세 여성 중 대학생 비율은 3.3%에 불과했다. 1980년엔 대학 입학자 중 남성이 72.6%, 여성은 27.4%였다.

하지만 현재의 남녀 신입생 비율은 50.8%, 49.2%로 거의 같다. 엘리트 코스 중 하나인 로스쿨 입학생의 남녀 성비도 51.8%, 48.2%로 비슷하다. 오히려 올해 9급 공무원 합격자는 여성(55%)이 더 많고, 서울의 중등교원 합격자도 80.9%가 여성일 만큼 여초(女超) 현상이 심각한 곳도 많다.

혼인율 떨어뜨리는 남성 양극화

이런 현상은 선진국도 비슷하다. 나오미 칸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결혼시장』에서 혼인율 하락의 근본 원인이 남성의 소득 양극화라고 지적했다. “중간층 남성을 줄이고 다수를 하층으로 만드는 불평등 구조가 가정의 토대를 흔들며, 여성들은 갈수록 줄고 있는 믿음직한 남성 배우자를 찾아 헤맨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30대 고졸 남성 실업률은 1970년 3%에서 2011년 12%로 증가했다. 칸 교수는 “12%는 노동시장 밖에 있고, 10%는 간헐적 실업 상태이며, 20%는 일의 양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졸 남성의 42%는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이며 46%는 결혼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남자의 종말’이란 말도 나온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해나 로진은 “1960년대 6%였던 여성 약사가 지금은 60%에 달할 만큼 많은 영역에서 남성보다 우위에 있다”며 “기술 발달로 물리적 힘 대신 사회적 지능과 소통능력 등 여성 우위의 역량이 노동시장에서 각광받기 때문”이라고 했다(『남자의 종말』).

불평등 정도 역시 남성이 더욱 심하다. 미국에서 30년간 여성 지니계수는 19.8% 늘었지만, 남성은 35% 급증했다. 이렇게 남성의 지위가 쪼그라들수록 자신보다 소득·학력이 높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는 여성의 수도 줄어든다.

그렇다 보니 젊은 세대는 결혼은커녕 이성 교제도 원만치 않다. 2021년 염유식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성관계를 맺지 않았다고 밝힌 19~29세 남성 비율(42%)이 60대(29%)보다 많았다. 전체 남성 중 20대의 섹스리스 비율이 가장 높았고, 그 이유로 절반 이상이 ‘파트너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쪼그라든 남성의 지위를 감안해 여성이 기대수준을 낮추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다. 김중백 교수는 “결혼시장에서의 미스매치는 달라진 제도와 현실을 개인의 의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일종의 문화지체현상”이라며 “집단의 문화와 생각이 바뀌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제도적인 대안으론 칸 교수의 지적처럼 계층이동성을 높여 양극화를 완화시키는 방법이 거론된다. MZ세대의 시사평론 유튜버인 이경민씨는 “당장 실천가능한 일로 한쪽 성만 혜택을 입는 칸막이부터 없애야 한다”며 “이공계 여학생 장학금이나 여대에 속한 로스쿨·약대처럼 제도적인 남성 차별부터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