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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30년전처럼 중국은 지금 한국이 절실하다" 김하중이 찌른 정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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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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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10년 세월이 세 번이나 지나는 동안 한국은 선진국으로 도약했고, 중국은 미국을 바짝 뒤쫓을 정도로 국력이 급성장했다. 탈냉전기에 한국과 중국은 서로의 전략적 필요 때문에 1949년 중국의 공산화 이후 처음 손을 잡았지만,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한 신냉전 시대를 맞아 새로운 관계 설정을 모색하고 있다.

[단독 인터뷰] 한·중 수교 30주년 '산증인' 김하중 전 주중대사 #노태우 정부, 수교 서둘렀지만, 중국도 정치적 이유로 서둘러 #단절됐던 중국과 직접 교섭 가능해져 한반도 불안정성 줄여 #중국, 2016년 사드 배치 때 수교 이후 처음 감정적 반응 드러내 #이기적인 중국 소황제 세대, 민족주의 정서와 결합할 경우 우려 #중국은 한국 도움 필요한 시점…사드 정상화·칩4 등 추진해야 #외교에서 대통령이 가장 중요, 통찰력 발휘하면 G8 도약 가능

 김하중 전 주중대사는 서울 자택 서재에서 진행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지난 30년의 한·중 관계를 진단하고 미·중 패권 경쟁기에 한국의 대외 전략 방향에 대해 조언했다. 김 전 대사는 "대통령이 지혜와 통찰력을 갖추고 다양한 인재를 잘 등용하면 한국은 G8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김하중 전 주중대사는 서울 자택 서재에서 진행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지난 30년의 한·중 관계를 진단하고 미·중 패권 경쟁기에 한국의 대외 전략 방향에 대해 조언했다. 김 전 대사는 "대통령이 지혜와 통찰력을 갖추고 다양한 인재를 잘 등용하면 한국은 G8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30년 전 한·중 수교는 전략적으로 수지타산이 맞는 외교적 결단이었을까. 미·중 패권 경쟁이 치열한 국제질서 격변기에 한국의 대중 외교 및 대외안보 전략은 어떠해야 할까.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김하중(75) 전 주중대사를 서울 자택으로 찾아갔다. 30년 전 한·중 수교 교섭 현장에서 직접 뛰었고, 최장수 주중대사(2001년 10월~2008년 3월)와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김 전 대사는 언론 접촉을 피하며 그동안 13권의 책을 집필했다.
 -지난 30년 한·중 관계를 돌아보면.
 "1992년 8월 수교 이후 첫 10년(1993~2002)에는 한국의 김영삼·김대중 대통령과 중국의 장쩌민 주석을 비롯한 리펑·주룽지 총리 등 3세대 지도자들이 신뢰를 구축했고 양국 관계는 급속하게 발전했다. 두 번째 10년(2003~2012)에는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 등 4세대 지도자들이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견지한 노무현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다음 남북관계가 악화하고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 채택으로 6자회담이 중단되는 등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자 이때부터 중국은 한·중 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검토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10년(2013~2022)이 시작된 2013년 출범한 시진핑 정부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전략 목표로 제시하고 미국에 '신형 대국관계' 구축을 공식 제의하며 대국 행보를 시작했다. 미국이 중국의 제의에 별다른 호응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2016년 7월 박근혜 정부가 갑자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하자 중국은 한국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악화했고, 지금까지도 불편하고 긴장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92년 9월 28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양상쿤 중국 국가주석과 건배하고 있다. 북방외교를 성공시킨 노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한 최초의 한국 국가원수로 기록됐다. [중앙포토]

1992년 9월 28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양상쿤 중국 국가주석과 건배하고 있다. 북방외교를 성공시킨 노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한 최초의 한국 국가원수로 기록됐다. [중앙포토]

1992년 10월 중국공산당 14차 당대회에 참석한 당시 실질적 최고지도자 덩샤오핑.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국제적으로 고립됐던 중국은 이 무렵 정치적 돌파구가 절실해 한-중 수교에 적극적이었다.[중앙포토]

1992년 10월 중국공산당 14차 당대회에 참석한 당시 실질적 최고지도자 덩샤오핑.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국제적으로 고립됐던 중국은 이 무렵 정치적 돌파구가 절실해 한-중 수교에 적극적이었다.[중앙포토]

 -수교 협상 당시 한국과 중국의 계산은.
 "당시 노태우 정부는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청와대 측은 협상을 가능한 조속히 끝내려고 서두르는 경향이 있었다. 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면서 보니 중국 측도 상당히 수교를 서두르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1992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중국과의 수교가 당장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중국 측과 접촉 시 수교가 어렵다면 일단 중간 단계(연락사무소 등)를 거치는 것이 어떤지 물었지만, 중국 측은 그럴 필요가 없으며 바로 수교를 하는 것이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중국은 1989년 천안문 사태로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었는데 덩샤오핑이 1992년 초 개혁·개방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남순강화(南巡講話)에 나섰고, 그해 10월에 장쩌민이 총서기로 연임하기 위한 14차 당 대회를 앞두고 있었다. 조기에 한·중 수교를 성사시켜 대만에 타격을 주고,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한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당시 수교는 전략적·실리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나.
 "수교 이후 인적교류는 물론이고 폭발적인 통상 증대와 경제 협력으로 IMF 위기를 극복했으니 수교는 올바른 선택이었다. 만일 수교가 없었다면 1993년부터 시작된 북한 핵 위기 와중에 한반도 정세는 매우 불안정했을 것이다. 남북 간에 갈등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요청했고, 중국이 나름대로 역할을 해왔다. 한·중이 단절됐던 과거 수십 년간 우리는 중국과 직접 접촉할 수 없어 미국·유럽·일본 등 제3국을 통해 소통해야 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 수교 덕분에 우리가 모든 일을 중국과 직접 접촉하고 협상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수교는 중요하고 큰 의미가 있다."
 -지난 30년 양국 관계 흐름을 바꾼 결정적 사건을 꼽으면.
 "박근혜 정부가 2016년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중국은 상당히 감정적 태도를 보였는데 1992년 수교 이후 중국이 한국에 대해 이렇게 감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이는 한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키는 결정적 계기였으며 한국인들은 사드 사태에다 김치 종주권 논쟁 등을 통해 중국의 태도에 놀라고 실망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태도는 수교 이후 한국에서 쌓아왔던 긍정적 인식을 상당히 퇴색시켰다."

2016년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 뒤 돌아서고 있다. 그해 7월 한국의 사드 배치 방침 발표 이후 양국 관계가 급랭했다.[중앙포토]

2016년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 뒤 돌아서고 있다. 그해 7월 한국의 사드 배치 방침 발표 이후 양국 관계가 급랭했다.[중앙포토]

 -윤석열 정부가 사드 정상화를 선언했다.

 "사드는 동맹관계인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배치하는 안보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는 국민이 동의하면 안보주권 차원에서 사드를 정상화해야 한다. 다른 나라가 싫어한다고 국가안보를 희생할 수는 없다. 지난 9일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 외교부 장관 회담에서 사드 문제에 대한 중국 측 반응은 지금까지와는 다소 달라보였다. 앞으로 한국과 미국이 중국 측에 충분히 설명하면서 추진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 국민감정은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

 "대부분의 한국인은 중국인과 쉽게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볼 때 한국과 중국은 전혀 다른 나라다. 국가 정체성이나 가치 측면에서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며 궁극적으로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나라이고, 한국은 완전한 자유를 향유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그래서 앞으로 양국 민간 교류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79년부터 한 자녀 정책 시행 이후 태어난 중국의 40대 이하는 이기적인 '소황제(小皇帝) 세대'인데 민족주의 정서가 더해졌을 때 국제사회에서 어떤 행동을 보일지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이다."
 2020년 7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은 핑퐁 외교(1971년)의 주역이었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 기념 도서관에서 역사적인 연설로 국제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포용정책은 닉슨 대통령이 유도하고자 했던 중국 내부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면서 "자유주의 국가들은 중국 공산당의 행동을 바꾸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후 미국은 유엔·유럽연합(EU)·나토(NATO)·G7 등을 총동원해 중국을 압박했고 중국은 전략적으로 고립되는 양상이다.
 -중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됐는데 '중국몽' 실현이 가능할까.
 "덩샤오핑 시대부터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 때를 기다리며 재능을 감추고 실력을 기른다) 외교를 구사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뤘다. 2013년 시진핑 체제가 등장하면서 중국몽을 내세우자 이때부터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이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20년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이 그동안 조용히 추진해 온 일들을 낱낱이 폭로했는데 이로 인해 중국의 의도와 계획이 전 세계에 알려져 외교적 타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6월 스페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발표된 신전략개념에서 중국을 '나토의 새로운 위협'이라고 선언해 중국 외교에 치명타를 가했다. 중국으로서는 지난 수 십년간 공들여 쌓은 서방 국가들과의 국제관계가 손상돼 관계 회복이 매우 중요한 과제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만 전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NATO) 정상회의 기간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미 동맹 강화 의지를 강조했다.[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NATO) 정상회의 기간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미 동맹 강화 의지를 강조했다.[대통령실 제공]

 -한국은 안보·가치동맹과 경제·이익동맹 사이에서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일각에서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중에 선택해야 한다고 자꾸 말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선택할 필요가 없다. 누구든지 많은 친구가 있지만 누가 친한지 순서를 공개하는 바보는 없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는 동맹 관계를 강화하면서 가까운 이웃인 중국과는 긴밀한 우호협력 관계를 유지하면 된다. 국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중국 입장에서 앞으로 한국만큼 중국의 입장을 전달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런 국제적인 환경 변화를 한국은 한·중 관계 발전에 활용할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다. 반도체 칩4,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쿼드 참여 문제 등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고, 앞으로 다자 회의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장기적·전략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면 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손해가 발생해도 감수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 대외 전략을 조언한다면.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한·미·일 3국 협력은 특히 한·일 관계가 경색되는 것을 견제하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겸손하면서도 지혜롭고 통찰력이 있어야 다른 나라로부터 존경받고 우리가 원하는 국익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직업외교관들을 최대한 활용하되 필요하다면 학연·지연·혈연을 떠나 실력과 인격을 갖춘 다양한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만일 대통령이 이렇게 한다면 한국은 얼마든지 G8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김하중 전 주중대사가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중국인 서예가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김하중 전 주중대사가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중국인 서예가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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