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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나는 장애에 감사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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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아들이나 딸보다 꼭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중증 장애를 가진 자녀의 부모들입니다. 모든 일을 보호자 없이는 해결할 수 없으니 자신이 없는 상태의 장애 자녀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눈을 떴다/ 온 우주에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몸만 둥둥 떠 있다/ 유일하게 감각이 살아 있는/ 이 잔인한 귀도 눈을 뜬다// 지금은/ 남의 손이 아니면/ 소변조차도 뽑아낼 수 없는 몸뚱아리// 알람 소리에/ 감정 없는 기계적인 메마른 손길이/ 아랫도리에 관을 꽂는다’

장애 자녀 두고 눈 못 감는 부모
장애 극복하는 해결책은 교육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구상솟대문학상을 올해 받은 설미희 시인의 ‘친밀한 타인’이라는 작품의 일부입니다. 이 시는 중증의 장애인과 활동 지원사의 관계를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화자는 하루 24시간 돌봄이 필요하고 타인은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삶은 때로 잔인합니다. 제 주변에는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아들을 두고 어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어떻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요. 남은 아버지에게 그 아이에 대해 차마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올해 만해실천대상을 받은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16년 전 서울대생을 데리고 미국 캘리포니아에 지질 조사를 나갔다가 운전하던 차량이 뒤집혀 목 아래가 완전히 마비됐습니다. 그때 나이 44세였고, 사고 사흘 뒤 목을 다시 접합하는 수술을 받고 깨어났습니다. 한창때 아들의 사고를 본 부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선택한 것은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가족의 곁을 떠났다고 합니다. 부모와 함께 있으면 영원히 자립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6개월 만에 강단에 복귀했고 전동 휠체어와 입으로 작동하는 마우스 등 스스로 개발한 IT 기기를 이용해 강의와 연구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그는 “호킹 박사는 말도 못 했는데 나는 말은 할 수 있다”며 웃는 긍정의 아이콘입니다. “사고 뒤 울어본 적도, 우울증에 빠진 적도 없다”며 “이렇게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될 줄 몰랐다. 작은 데에만 집착하며 앞만 보고 달릴 뻔한 나를 넓은 세상으로 이끌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장애에 감사한다”며 사재를 들여 ‘ROPOS(Rising our potential in Science)’라는 교육 사업을 통해 이공계 장애인 엘리트 양성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그는 “2년 전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의 영전에 이 상을 바친다”는 애틋한 수상 소감을 밝혔습니다. 비록 자립하기 위해 아버지의 곁을 떠났지만 아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을 아버지의 절망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18일 최종회 시청률 17.5%로 동 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된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소재로 한 것입니다. 자폐증이지만 뛰어난 집중력과 암기력으로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마침내 대형 로펌의 정식 변호사가 되는 장애인의 성공담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정신분열증을 심하게 앓았던 미국의 수학자 존 내쉬를 떠올리게 합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로 소개된 내쉬는 23세에 매사추세츠 공과대 교수로 임용된 천재였으나 환시(幻視) 등 내면의 심한 혼란을 겪습니다. 그가 끝내 정신장애를 극복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진 관계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쟁을 수학적으로 연구한 게임 이론 확립에 기여한 공으로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까지에는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아이들의 심한 놀림감과 폭행 대상이 되어 급우들을 피해 다녀야 했던 딸을 지켜내면서 끝내 성공시킨 드라마 속 우영우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선천적 또는 후천적으로 정신적·신체적 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이상묵 교수는 장애인이 겪는 3대 고통으로 경제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 그리고 가족의 고통을 꼽으면서 이런 고통을 극복하는 길은 자립 생활과 고소득 직업이라고 말합니다. 즉 장애의 고통을 극복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특수교육 대상자의 27.2%만이 특수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교육부 통계를 보며 우영우의 성공 스토리는 드라마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한 장애인의 실상을 미화하지는 않았을까요.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부모의 눈물을 닦아주고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을 져주기 위한 제도를 촘촘하게 갖추는 것이 진정한 복지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할 것입니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