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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권성동 체제로는 사태 수습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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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 비대위 구성 후 거취 결정” 시간 벌기  

사퇴 후 새 지도부 구성하고 새 출발 해야

국민의힘 내홍이 갈수록 태산이다.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자체가 문제였다는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새 비대위를 꾸리기로 한 국민의힘에서 어제 권성동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이준석 전 대표의 징계 이후 당 대표 직무대행을 한 그가 비대위 체제를 꾸렸다가 사달이 났는데, 또 당의 키를 쥔 것이다. 만약 새 비대위가 생기면 신임 비대위원장도 그가 정한다. 이쯤 되면 ‘도로 권성동, 기승전 권성동’이란 표현마저 부족할 지경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에 앞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김성룡 기자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에 앞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김성룡 기자

그나마 새 비대위는 실현 가능성마저 불투명해졌다. 이 전 대표 측이 어제 비대위 활동 중단을 위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추가로 냈기 때문이다. 최근 법원 판결에 따라 “‘무효 비대위’가 임명한 ‘무효 직무대행’과 ‘무효 비대위원’이 당을 운영할 권한이 없다”는 주장이다. 새 비대위를 꾸리려면 전국위원회 의결이 필요하지만, 서병수 전국위 의장은 거부 의사를 밝혔다. 국민의힘은 이제 꼼수를 동원하는 무리한 시도를 그만해야 한다.

석 달 가까이 이어지는 여당 내분의 중심에 권 원내대표가 있다. 새 비대위를 꾸리기로 한 의총 이후 사퇴 요구가 쏟아졌지만, 그는 어제 비대위 회의에서 “제 거취는 새 비대위 구성 후 스스로 결정하겠다”며 거부했다. 시간을 벌어 소나기를 피해 보겠다는 꼼수로 보인다. 안철수·최재형 의원과 당 중진들이 권 원내대표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요청으로 6월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김태흠 충남지사도 “사태 수습 후에 거취를 정하겠다는 것은 후안무치”라며 “원내대표만 사퇴하면 되는데 멀쩡한 당헌·당규 개정이니 헛소리만 하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권성동 체제로는 집권여당이 처한 작금의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 권 원내대표는 이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합의에 이어 9급 공무원 발언, 윤 대통령과의 문자 노출 등 리더십 위기를 반복해 왔다. 여당 지지층 가운데서도 사퇴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국민의힘은 사법부 결정에 반하는 새 비대위 추진을 중단하고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권 원내대표가 스스로 물러나고, 당은 서둘러 원내대표를 선출해 새로운 당 지도부를 국민에게 선보여야 한다.

윤 대통령이 어제 출근길 약식 회견에서 “의원과 당원들이 중지를 모아 내린 결론이면 존중하는 게 맞다”고 말한 것은 부적절하다. 새 비대위를 추진키로 한 꼼수를 두둔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권 원내대표 등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을 감싸고 돌 경우 책임을 묻는 국민의 시선은 윤 대통령을 향할 가능성이 있다. “비대위 탄생은 윤 대통령의 문자 때문이었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며 배후에서 당을 컨트롤하는 것은 정직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처신”(유승민 전 의원)이란 반응이 이미 나오고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