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가 9월 정기국회를 앞둔 28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제3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사과·반성·쇄신 없이 국민 눈높이 안 맞는 꼼수
권성동 2선 후퇴 요구 분출, 책임지는 모습 필요
이준석 전 대표가 낸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자 국민의힘이 대책을 내놨다. 그제 다섯 시간에 걸친 의원총회를 연 끝에 당헌·당규를 정비한 뒤 새 비상대책위를 꾸리기로 했다. 비대위 구성이 문제였는데, 또 다른 비대위를 꾸려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혼돈에 빠진 당의 내분 수습책으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의힘의 처방에 대해선 꼼수를 꼼수로 막으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당헌·당규는 당 대표 궐위나 최고위원회 기능 상실 등을 ‘비상 상황’으로 보고 비대위를 두도록 했다. 하지만 법원은 비상 상황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결국 당헌·당규를 무리하게 해석해 밀어붙이다 이 지경이 된 셈인데, ‘최고위원 절반 사퇴’ 등으로 비상 상황을 구체화해 위법 소지만 피해 보려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국민의힘 측은 집권 초기부터 집안싸움으로 잠잠할 날이 없었던 데 대해 진솔한 반성과 사과부터 해야 한다. 하지만 당 내분 수습책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를 두려운 심정으로 살피기보다 여전히 이 전 대표와의 결별에만 매달리는 모습이다. 이러니 당내에서조차 “반성과 성찰 없이 법원과 싸우려 하고, 이제 국민과 싸우려 한다”거나 “국민과 당원을 졸로 보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사태를 정리하려면 대표적인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이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권성동 원내대표의 2선 퇴진이 불가피하다. 권 원내대표는 당 윤리위원회의 이 전 대표에 대한 징계를 ‘사고’로 해석하고 대표 직무대행을 맡았지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는 윤 대통령의 문자를 노출해 파문을 초래했다. 이후 비대위 전환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최근 법원 판결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당 중진들도 어제 잇따라 “권 원내대표의 사퇴가 수습의 첫 단추” “권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게 정치와 민주주의, 당, 대통령을 살리는 길”이라며 용퇴를 요구하고 있다. 새 비대위 대신 원내대표를 새로 뽑아 지도부를 일신하자는 주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구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국민의힘이 새 비대위 구성을 고집할 경우 이 전 대표가 추가 법적 대응을 예고한 바 있어 혼란이 장기화할 소지가 있다. 여당의 난맥상을 정리하려면 윤 대통령이 ‘당무와 무관하다’는 태도를 버리고 당·정부·대통령실을 망라해 ‘대통령의 뜻’을 내세워 자기 장사를 하는 측근 그룹과 과감히 결별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국정 운영의 동력은 연찬회에서 같은 식구끼리 의기투합한다고 회복되는 게 아니라 민심을 제대로 읽을 때 가능하다. 추석을 앞둔 고물가 등 민생 위기는 깊어지고 있다. 사흘 후면 예산안 처리와 규제 완화, 연금 개혁 등 국정 과제의 성패가 달린 정권 교체 후 첫 정기국회가 개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