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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규정 바꿔 새 비대위”…정신 못 차린 국민의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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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가 9월 정기국회를 앞둔 28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제3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가 9월 정기국회를 앞둔 28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제3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사과·반성·쇄신 없이 국민 눈높이 안 맞는 꼼수

권성동 2선 후퇴 요구 분출, 책임지는 모습 필요

이준석 전 대표가 낸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자 국민의힘이 대책을 내놨다. 그제 다섯 시간에 걸친 의원총회를 연 끝에 당헌·당규를 정비한 뒤 새 비상대책위를 꾸리기로 했다. 비대위 구성이 문제였는데, 또 다른 비대위를 꾸려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혼돈에 빠진 당의 내분 수습책으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의힘의 처방에 대해선 꼼수를 꼼수로 막으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당헌·당규는 당 대표 궐위나 최고위원회 기능 상실 등을 ‘비상 상황’으로 보고 비대위를 두도록 했다. 하지만 법원은 비상 상황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결국 당헌·당규를 무리하게 해석해 밀어붙이다 이 지경이 된 셈인데, ‘최고위원 절반 사퇴’ 등으로 비상 상황을 구체화해 위법 소지만 피해 보려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국민의힘 측은 집권 초기부터 집안싸움으로 잠잠할 날이 없었던 데 대해 진솔한 반성과 사과부터 해야 한다. 하지만 당 내분 수습책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를 두려운 심정으로 살피기보다 여전히 이 전 대표와의 결별에만 매달리는 모습이다. 이러니 당내에서조차 “반성과 성찰 없이 법원과 싸우려 하고, 이제 국민과 싸우려 한다”거나 “국민과 당원을 졸로 보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사태를 정리하려면 대표적인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이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권성동 원내대표의 2선 퇴진이 불가피하다. 권 원내대표는 당 윤리위원회의 이 전 대표에 대한 징계를 ‘사고’로 해석하고 대표 직무대행을 맡았지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는 윤 대통령의 문자를 노출해 파문을 초래했다. 이후 비대위 전환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최근 법원 판결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당 중진들도 어제 잇따라 “권 원내대표의 사퇴가 수습의 첫 단추” “권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게 정치와 민주주의, 당, 대통령을 살리는 길”이라며 용퇴를 요구하고 있다. 새 비대위 대신 원내대표를 새로 뽑아 지도부를 일신하자는 주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구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구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국민의힘이 새 비대위 구성을 고집할 경우 이 전 대표가 추가 법적 대응을 예고한 바 있어 혼란이 장기화할 소지가 있다. 여당의 난맥상을 정리하려면 윤 대통령이 ‘당무와 무관하다’는 태도를 버리고 당·정부·대통령실을 망라해 ‘대통령의 뜻’을 내세워 자기 장사를 하는 측근 그룹과 과감히 결별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국정 운영의 동력은 연찬회에서 같은 식구끼리 의기투합한다고 회복되는 게 아니라 민심을 제대로 읽을 때 가능하다. 추석을 앞둔 고물가 등 민생 위기는 깊어지고 있다. 사흘 후면 예산안 처리와 규제 완화, 연금 개혁 등 국정 과제의 성패가 달린 정권 교체 후 첫 정기국회가 개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