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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9분 비행"에 발칵…수퍼 부자가 '기후 악당'된 까닭

중앙일보

입력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전용기를 타고 ‘산호세→샌프란시스코(약 60㎞)’로 갔다. 걸린 시간은 단 9분이다. 통근 열차로 5정거장(1시간) 거리인데…, 할 말을 잃었다."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가 지난 2020년 9월 3일 독일 베를린 인근의 테슬라 공장 건설 현장에 방문했다. EPA=연합뉴스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가 지난 2020년 9월 3일 독일 베를린 인근의 테슬라 공장 건설 현장에 방문했다. EPA=연합뉴스

미국 뉴욕에 사는 한 네티즌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머스크 전용기를 추적하는 SNS 계정에서 찾은 이 같은 ‘9분 경로’ 사진을 첨부했다. 이 글을 본 다른 네티즌은 "머스크는 원한다면 아래층 화장실까지 F-15(전투기)를 타고 갈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 전용기 추적 사진은 지난 5월에 올라온 사진인데 뒤늦게 화제가 됐다고 뉴욕포스트가 전했다.

세계 부자 1위(약 338조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지난 5월 초 미국 산호세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전용기로 간 경로. 약 60㎞ 거리를 전용기로 타고 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았다. 사진 트위터 캡처

세계 부자 1위(약 338조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지난 5월 초 미국 산호세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전용기로 간 경로. 약 60㎞ 거리를 전용기로 타고 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았다. 사진 트위터 캡처

"전용기 타는 상위 1%, 기후위기에 허세 부려"

최근 잇단 폭염과 가뭄 등 이상기후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으면서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키는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유명인사들의 전용기 이용 보도가 이어지자 이들 전용기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 공개하는 이들이 늘었다. 비행기는 석유 기반 연료를 사용해 탄소 배출이 심한 이동 수단 중 하나다. 특히 전용기는 민항기와 달리 제한된 인원이 짧은 거리에도 이용하는 탓에 ‘탄소 악당’으로 꼽힌다.

전용기를 택시 타듯이 하는 유명인사들은 머스크뿐만이 아니다. 영국 디지털 마케팅 회사 야드(Yard) 조사 결과,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는 올 초부터 지난달까지 전용기를 170번이나 사용해 가장 많은 탄소(8293t)를 배출한 유명인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4465t),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3493t) 등도 전용기를 수시로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모두 기후위기를 걱정했던 대표적인 유명인사들이라 비판이 더욱 거셌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대중들은 상위 1% 부자들이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허세를 부리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최근 기후위기 대응 법안에 공을 들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용기를 타고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DC에서 사저가 있는 델라웨어주(州) 윌밍턴으로 가는 것도 도마에 올랐다. 140㎞ 거리인데 차로는 2시간, 전용기로는 24분이 걸린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초 취임 이후 이달 초까지 49번이나 윌밍턴 사저에 갔다고 데일리메일이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24일 델라웨어주에서 휴가를 마치고 워싱턴DC로 돌아가기 위해 전용 헬리콥터인 마린원에 탑승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24일 델라웨어주에서 휴가를 마치고 워싱턴DC로 돌아가기 위해 전용 헬리콥터인 마린원에 탑승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전용기 4시간 이용=1인 연간 탄소 배출량 

지난해 유럽의 운송및환경연합(TE) 보고서에 따르면 전용기는 1시간 동안 2t의 탄소를 배출한다. 유럽연합(EU) 내 1인당 연간 탄소 배출량은 8.2t이다. 즉, 전용기 4시간 이용과 1인당 연간 탄소 배출량이 맞먹게 되는 셈이다. 또 전용기의 승객 1인당 탄소 배출량은 민항기보다 5~14배, 열차보다는 50배가 높았다.

전 세계 전용기는 약 3만대에 달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미국에 2만여대(71%), 유럽에 1800여대(6%)가 있다. 전용기를 사거나 임대해 사용하는데 모두 만만치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고 포브스가 전했다. 전용기 가격은 사양에 따라 300만~6억 달러(40억~8000억원)이고 조종사를 고용하고 유지보수 등에 쓰이는 비용도 어마어마하다. 임대의 경우 비행기 크기, 승객수 등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는데 시간당 최대 1만2000달러(1400만원)가 든다. 한마디로 ‘수퍼 부자’들만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잠시 주춤했던 전세기 이용이 백신 보급과 함께 이동의 자유가 생기면서 지난해부터 증가세로 전환했다. 항공데이터 리서치 회사 윙스(wingx)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전세기의 비행이 330만회로 기록됐는데, 이는 지난 2019년보다 7% 늘어난 수치"라고 분석했다.

기업에서도 CEO와 이사회 의장 등 고위직이 사용하는 전용기 이용이 활발해졌다. 지난해 미국 기업의 전용기 사용이 10년 만에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상장된 시가총액 상위 500개 기업의 지난해 전용기 사용액이 전년대비 35% 증가한 3380만달러(450억원)로, 지난 2012년 이후 최대로 집계됐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BBC는 "수퍼 부자들과 경영 리더들은 팬데믹 시대에 안전한 여행을 위해 전용기를 더 자주 이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가디언은 "전 세계 인구 1%가 비행과 관련된 탄소 배출량의 절반을 기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용기 사거나 타면 세금 더 내자 

고급 전용기 업체인 비스타젯 승무원들이 지난 2015년 5월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럽 비즈니스 항공박람회에서 자사가 운영하는 전용기 내부를 정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고급 전용기 업체인 비스타젯 승무원들이 지난 2015년 5월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럽 비즈니스 항공박람회에서 자사가 운영하는 전용기 내부를 정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 같은 비판 여론 속에 전용기를 규제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클레망 본 프랑스 교통부 장관은 지난 20일 일간 르파르지앵에 기고한 글을 통해 전용기 비행을 규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기업 등이 전용기 사용을 자제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거나 과세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 나아가 오는 9~10월 EU 교통장관 회의에서도 이 같은 이슈가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에선 이달 초 10만 캐나다달러(1억원) 이상의 전용기를 구매할 경우, 전체 구매 금액에서 10%에 해당하는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캐나다 정부는 "과도한 연료 소비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전용기 구매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용기의 과도한 규제를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용기가 장기 기증 수송 등 의료 응급상황에서 필요한 경우도 있다"면서 "전용기를 ‘악마화’하기보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고려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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