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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인데 병원 안온다" 이 메시지로 '세모녀 비극'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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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22일 찾은 경기도 수원시 권선동 한 다가구주택. 전날(21일) 세 모녀로 추정되는 시신 3구가 발견됐다. 초인종 위에는 가스검침원의 연락달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채혜선 기자

지난 22일 찾은 경기도 수원시 권선동 한 다가구주택. 전날(21일) 세 모녀로 추정되는 시신 3구가 발견됐다. 초인종 위에는 가스검침원의 연락달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채혜선 기자

질병 정보 연계가 '수원 세 모녀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도 이를 포함해 신용카드 사용 내역 조회, 휴대폰 위치 추적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사건처럼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를 경우 종전과 다른 방법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에서 다소 강한 수단을 꺼내 들었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의 A씨는 암, 두 딸은 희귀병과 알려지지 않은 다른 질환을 앓았다. 빚 독촉을 피해 다녀야 했고, 건강보험료를 16개월 체납하면서 건보 이용 자격도 원칙적으로 중단됐다. 게다가 소득이 0원이었다. 최고 위기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런데도 건보료 체납만 당국에 포착됐을 뿐 중증 질병 정보는 위기가구로 판단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난 5월 서울 종로구 창신동 모자 사건의 80대 여성 B씨는 심장병 등의 지병 때문에 거의 거동하지 못했고, 50대 아들은 부정맥·고혈압 등을 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에는 고혈압약과 진통제 약병이 늘려 있었다고 한다. 이 가족도 정기적으로 치료받지 않았고 약도 제대로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관할 구청은 사건 후에도 이들의 진료 기록을 볼 권한이 없었다.
한국소비자연맹 소비자중심건강포럼 오상우 위원장(동국대 의대 교수)은 "중증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지 않으면 '왜 안 오느냐'고 알아볼 수는 있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않는 사실을 정부기관에 알릴 수도 없다. 개인정보 누설을 금지한 법률 때문"이라며 "고령화로 인해 노인, 특히 자녀와 떨어져 사는 독거노인이 느는 점을 고려하면 중증 환자의 진료 여부를 모니터링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약 정보가 계속 올라간다. 환자가 약을 제대로 먹는지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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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도 질병 정보를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건보료 체납, 단수·단전 등의 34개 위기 신호 중 두 세 개가 겹쳐야 복지부가 위기가구로 선정하고, 지방자치단체가 확인한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24일 언론 브리핑에서 "위기가구로 선정할 때 (이번 수원 세 모녀 사건처럼) 건보료 체납 한 가지만 있어도 장기 체납인 경우 포함한다거나, 중증질환 정보를 포함하면 훨씬 빨리 판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 실장은 "건강, 의료이용 정보를 결합하면 좀 더 빨리 현장 조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대주가 사망한 경우도 위기 신호에 포함되지만, A씨는 남편이 사망한 시기(2020년)와 건보료 연체 시기(2021년)가 일치하지 않아 위기가구로 분류되지 않았다. 이런 시점 차이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복지부는 24일 조규홍 1차관 주재로 전문가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신용카드 회사의 협조를 얻어 카드 결제 지역을 확인하거나 실종자 소재 파악 때처럼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한다. 전 실장은 "민감한 정보라서 법적 검토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노대명 사회보장정보원장은 "위기 정도가 심한 가구를 지자체가 먼저 확인하게 하고, 주소지가 다를 때 추적해서 찾아내야 한다. 질병 정보를 연계할 수 있게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웅재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위원장은 "위기 상황에 부닥친 가구를 접촉할 만한 사람이 정부기관에 정보를 알려주는, 일종의 '신고 권고자'를 둬야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며 "병원 같은 데가 신고 권고 역할을 할 수 있다. 외국도 그런 방법으로 찾아낸다"고 말했다.

◇수정=변웅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직함을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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