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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적대적 공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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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정민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민 논설실장

이정민 논설실장

수도권 택시 대란은 예견됐던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이라고 하나, 본질은 ‘정치의 실패’에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두 거대 정치 세력의 무능과 담합이 빚은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1960년대 생긴 택시 면허제를 기반으로 형성된 택시산업은 차량 공유·승차 공유 같은 모빌리티 혁신이 일어나면서 이미 지각변동이 예고된 셈이었다. 인공지능·빅데이터의 진화가 가져온 자동결제 시스템, 목적지 우선 배정 같은 혁신 모빌리티 서비스는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었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은 낡은 울타리 지키기라는 쉬운 길을 택했다. 혁신 대신 빗장 걸어 잠그기다. 선거와 표 때문이었다.

택시대란은 빗장 걸기 담합 때문
득표전략과 교환한 국가의 미래
거대 양당의 독과점 체제 바꾸고
정치에도 경쟁 원리 도입해야

2년 전 총선을 한 달 앞두고 렌터카 이용 차량 호출 서비스인 ‘타다’를 퇴출시킨 과정을 지금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서로 으르렁대던 양대 세력의 적대적 공생 관계로 볼 수 있어서다. 당시 문재인 정권이 택시업계의 반발과 택시기사들의 표를 의식해 타다 퇴출을 주도하자 야당이던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찬성’ 당론을 못 박아 타다 금지법의 본회의 통과를 밀어붙였다. 모빌리티 혁신과 택시산업의 미래가 달린 중대 문제를 두 정당의 손익에 맞춘 득표 전략과 교환한 것이다. 그러니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언젠 터져도 터질 뇌관이었던 거다.

비슷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문재인 정권 출범 한 달 후인 2017년 6월, 여야가 본회의를 통과시킨 첫 번째 안건이 중앙당 후원회를 통한 정치자금 모금을 합법화하는 법안이었다. ‘차떼기’ 등 불법 정치자금이 문제되자 정치개혁 차원에서 중앙당 슬림화와 정치자금 모금을 폐지했던 건데, 두 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11년 만에 부활시켰다. 돈 걷어서 당권 다툼하는 고비용 중앙당 정치가 적대 세력 간의 찰떡 공조로 다시 가능해졌다.

장황한 얘기를 늘어놓은 건 정치의 실패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으며, 더는 정치가 민생과 국가의 발목을 잡게 놔둬선 안 된다는 우려가 최근 높아지고 있어서다. 새삼 거론할 것도 없이 요즘 정치권은 ‘비정상의 상시화’다. 우선 원내 1, 2, 3당 모두 비상대책위 체제라는 희한한 상황이 이를 상징한다. 민주당이 28일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를 열지만, 친 이재명계와 친 문재인계는 내전 상태다. 민주당 지지자들조차 등 돌리게 할 정도로 참담한 수준이다. 지난 주말 있었던 호남 권리당원 투표율(35.49%)은 전국 평균(36.44%)보다 낮았다. 민주당의 심장부에서 터져 나온 심각한 경고음은 대표 당선이 유력해보이는 ‘이재명 체제’와 민주당의 앞날에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민주당은 누구를,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국민의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준석 전 대표와 윤핵관들의 비열한 권력다툼은 이들에게 나라를 맡겨도 괜찮은가 하는 근본적 회의를 갖게 한다. 선거에 이기고도 집권 석 달 만에 비대위를 꾸리게 된 정치력 부재는 말할 것도 없고 ‘내부총질’ ‘양두구육’ ‘나치 탄생’ ‘신군부’ 같은 막말과 오만불손은 그들을 찍었던 지지자들을 둥지 밖으로 내몰고 있다. 당권 장악과 총선 공천권을 노린 활극과 자신들 이익을 위한 헌신 외에는 존재의 의미를 설명할 길 없는 먹먹함이 국민들을 절망과 깊은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진중권 전 동양대교수는 중앙일보 기고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세력은 정당성 위기에 빠져 있다.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은 물론이고 대안 정당인 정의당마저도 지지자들에게 자기들을 왜 지지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날카로운 진단이다.

정당성 위기에 빠진 정당들이 퇴출되지 않는 건, 독과점 체제 때문이다. 이들은 혐오와 증오의 무한 증폭으로 강성 팬덤을 광신도로 유인한다. 군중의 트라우마에 증오와 복수 감정을 윤활유 삼는 흑백 정치다. 노무현의 죽음과 박근혜 탄핵의 상처가 고작 진영 정치의 성을 더 높이 쌓는 소재로 소비되는 현실은 소선거구제에 기반한 양당 체제가 수명을 다했음을 보여주는 시그널이다. 적대적 공생 관계를 이어온 ‘독과점 정치’를 마감해야 할 필요가 더 커졌다. 그간 몇번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독과점 체제를 지탱하는 선거·정당법과 정치문화가 철옹성처럼 둘러쳐져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정치에도 경쟁원리를 작동시켜 정치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자는 운동이 일부에서 일고 있다. 주도하는 이는 민주당 5선 이상민 의원(대전 유성을)이다. 그는 “양당의 독과점 구조 때문에 경쟁원리가 작동안 돼 정치 서비스의 품질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며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들이 (정치인을) 부려먹을 수 있다 싶으면 택하고, 아니다 싶으면 교체할 수 있도록 소비자의 선택권을 다양하게 넓혀줘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정당이 나와 정당끼리 경쟁하는 체제가 목표점이다. 다양한 정당이 출현할 수 있도록 소선거구제→중대선거구제로 바꾸고,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20석→10석으로 낮추고, 군소정당에 대한 자금 지원을 파격적으로 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이 의원의 분투에 지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