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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현대重, 인력 300명 빼갔다" 4개 조선사 공정위 제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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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케이조선·대한조선 등 4개 조선업체가 자사 인력을 부당하게 유인해 채용하고 있다며 업계 1위인 한국조선해양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했다. 사진은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도크 모습. [사진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케이조선·대한조선 등 4개 조선업체가 자사 인력을 부당하게 유인해 채용하고 있다며 업계 1위인 한국조선해양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했다. 사진은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도크 모습. [사진 현대중공업]

국내 조선업체들이 업계 1위인 한국조선해양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했다. 핵심 인력을 부당하게 빼갔다는 이유에서다. 지금까지 국내 조선사 업계가 원자재 가격 협상, 해외 수주 등에서 공동 대응하는 등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분쟁은 이례적이다.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부문 중간지주회사로,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등을 거느리고 있다.

조선 4사, 이번 주중 ‘부당 유인’ 소장 내기로 #한국조선해양 측 "부당한 채용 없었다" 반박 #불황 끝나면서 인력난 심해진 게 근본 배경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케이조선·대한조선 등 4개 조선업체는 이번 주중 한국조선해양의 핵심 인력에 대한 부당 유인 행위에 대해 공정위에 제소할 방침이다. 공정거래법에선 부당하게 경쟁사의 핵심 인력을 유인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조선 4사는 소장에서 “한국조선해양 측이 핵심 인력에 접근해 통상적인 수준 이상의 연봉 제시, 보너스 제공 등 조건을 제시해 유인 행위를 하고 있으며 이를 은폐하기 위해 경력직 공채 지원을 유도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서류 지원 때는 가점 부여, 서류심사 면제 혜택을 준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선해양플랜트산업은 공정의 표준화·자동화가 어려운 작업 조건으로 숙련된 노동과 기술력이 필요한 대표적 기술집약 산업”이라고 덧붙였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A사 관계자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올 초에만 현대중공업이 경력직 채용으로 수십 명을 빼갔다. 숙련된 생산 인력은 물론, 공정관리·연구개발(R&D) 인력까지 가리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B사 측도 “지난해까진 직원 이탈 사례가 거의 없었는데 올해 들어 기술직에서만 30여 명이 나갔고, 이 가운데 3분의 2가량은 한국조선해양으로 갔다”며 “기술 인력은 최소 5년 이상 근무해야 제 역할을 하는데 이들이 빠져나가면서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의 ‘핵심 인력 빼가기’는 올해 들어 가속화했다는 게 4개사의 공통된 주장이다. 2019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서면서 대우조선해양 인력들이 옮겨가기 시작했고, 인수 무산 뒤에도 인력 빼가기가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3월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의 부당한 인력 유인을 금지한다는 합의서를 산업은행과 체결한 뒤에도 인력 빼가기가 계속됐다고 한다.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무산된 뒤 조선업 일감이 늘면서 인력난이 심화했다는 게 조선업계의 설명이다. 2019년 대우조선해양 거제 조선소에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진수하고 있다. 사진 대우조선해양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무산된 뒤 조선업 일감이 늘면서 인력난이 심화했다는 게 조선업계의 설명이다. 2019년 대우조선해양 거제 조선소에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진수하고 있다. 사진 대우조선해양

조선업계에선 지난해와 올 상반기,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서 현대중공업으로 이직한 직원이 300명이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액화천연가스(LNG)선,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설비(FPSO) 등 고도의 노하우가 필요한 연구·설계 인력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열린 ‘조선 5사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 간담회’에 참석자들은 물론 각사 최고경영자들이 한국조선해양 측에 인력 유출 문제를 제기하고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국조선해양 측은 이에 대해 “그동안 불황 이후에도 지속해서 인력을 채용해 왔으며 통상적인 공개 채용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부당한 인력 빼가기라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고 지원자가 동종사 출신이라고 해서 부여되는 우대는 없다”며 “경력직 채용 절차는 모든 지원자가 동등한 조건으로 진행됐다. 공정위 제소가 이뤄지면 절차에 맞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14년 조선업 불황 이후 각 업체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이때 주요 인력이 대거 이탈했는데, 지난해 이후 수주 물량이 늘면서 인력난이 시작된 게 갈등의 배경이다. 업계 1위인 한국조선해양이 인력 빼가기에 나서면서 도미노처럼 중소업체까지 인력난이 심화했다는 것이다.

처우가 좋은 회사로 이직하는 것을 ‘부당한 유인’ ‘인력 빼가기’로 볼 수 있느냔 시각도 없지 않다. 중소 조선사 관계자는 “돈을 더 많이 주는 회사로 옮기겠다는 걸 막을 순 없고 수주가 늘어 인력이 부족한 건 이해하지만, 작은 업체도 생존해야 하니 ‘씨감자’ 정도는 남겨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신형 대한조선학회장(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은 “불황 당시 국내 조선업계가 숙련된 인력 문제에 대해 근시안적으로 접근한 게 문제였다”며 “사이클 산업 특성에 맞게 장기적으로 수요를 예측해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LNG운반선 수주가 늘면서 조선업계는 2014년 이후 계속된 불황의 끝이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사진은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운반선. 사진 삼성중공업

LNG운반선 수주가 늘면서 조선업계는 2014년 이후 계속된 불황의 끝이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사진은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운반선. 사진 삼성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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