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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에 깔려 숨진 배달기사…"운전석 앞 2m 아예 안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20년 11월 광주 북구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와 관련해 지난해 3월 현장 검증을 벌이는 모습. 광주지방법원=연합뉴스

2020년 11월 광주 북구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와 관련해 지난해 3월 현장 검증을 벌이는 모습. 광주지방법원=연합뉴스

2022 안전이 생명이다 ④

지난해 8월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도로에서 교통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화물차 앞으로 이동한 오토바이 배달원을 화물차 운전자가 보지 못하고 출발해 배달원이 깔려 숨졌다. 2020년 11월에는 광주 북구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 횡단보도를 지나던 모녀를 보지 못한 화물차가 이들을 치어 2살 아이가 사망했다.

두 사고의 공통점은 높은 위치의 운전석에 앉아있는 화물차 운전자가 차량 앞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고를 당한 배달원과 모녀 모두 운전자가 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서 있었다. 화물차 사고는 찰나의 부주의가 큰 사고로 이어진다. 다른 차종보다 인명 피해의 가능성이 높은 만큼 화물차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운전자는 물론 주변 보행자의 주의가 더욱 필요하다.

23일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화물차 교통사고 치사율(사고 건수 대비 사망자 수)은 2.63%로 이륜차(2.23%)나 버스(2.18%) 등 다른 차종보다 높다. 전국에 등록된 차량 약 2491만대 중 화물차는 363만대로 14.5%에 불과한데,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전체의 23.6%를 차지한다. 그만큼 화물차 관련 사고가 위험하다는 의미다.

실험을 위해 5t 화물차 2m 전방에 신장 1m짜리 사람 모형을 둔 모습.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실험을 위해 5t 화물차 2m 전방에 신장 1m짜리 사람 모형을 둔 모습.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어린이 사망자가 종종 발생하며 국민적 우려를 일으키는 화물차 사각지대 사고가 대표적이다. 교통안전공단 실험 결과 승용차의 측면 사각지대는 5~30도인 반면, 2.5t 화물차의 경우 전방 1m(신장 1m 내외·만 4세 평균) 안이 모두 사각지대인 데다 양옆 사각지대도 30~40도로 컸다.

5t 화물차는 전방 사각지대가 2m로 더 넓다. 키 1m 안팎의 사람이 차량 앞쪽에 서 있으면 승용차 운전석에서는 사람을 볼 수 있지만 5t 화물차 운전석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화물차의 높은 차체와 트인 시야로 사각지대가 적다는 인식이 많지만 사실 차체가 크고 높아질수록 전방 사각지대가 넓어진다는 게 공단의 실험 결과다.

5t 화물차 운전석에서는 2m 앞에 서 있는 신장 1m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5t 화물차 운전석에서는 2m 앞에 서 있는 신장 1m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실험에 참여한 이상하 공단 화성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 부교수는 “운전자는 화물차에 큰 사각지대가 있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사각지대에 경고 장치와 보조 거울을 설치하는 것으로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보행자도 화물차 가까이선 내가 서 있는 곳이 결코 안전한 위치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화물차의 경우 차체가 길어 발생하는 ‘내륜차(앞바퀴와 뒷바퀴 궤적의 차이)’ 때문에 회전 시 앞바퀴가 보행자 앞을 지나가더라도 뒷바퀴는 보행자를 덮칠 수 있다.

화물차는 대체로 운전 시간이 길다는 점도 사고 위험을 높인다. 지난해 사업용 차량 사고 중 졸음운전 등 안전운전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발생한 경우가 전체의 70%를 차지했다.

화물차의 안전운전 불이행 사고는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한 문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7년 버스 운전기사의 과로로 인한 졸음운전으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하자 2018년부터 운전자 휴식시간을 법적으로 보장했다. 그 결과 버스의 연평균 사고 감소율이 13.7%(2016~2020년)로 다른 전체 사업용 차량의 감소율인 9.4%보다 1.5배 높았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화물차에도 운전자 의무 휴게시간을 여객자동차와 같은 기준으로 강화했다.

정부는 현재 승용차 중심으로 운영되는 고속도로 졸음쉼터에 화물차 주차면을 확대하고, 화물차 전용 졸음쉼터를 신설하기로 했다. 화물차 과적으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 화주(貨主)의 부당한 요구로 과적한 화물차의 경우 화주를 처벌하도록 했다. 쿠팡 등 비사업용 화물차를 보유한 업체에 대해서는 안전점검과 순회 안전교육 등 관리 방안을 제도화할 방침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중앙일보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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