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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얘기 했길래…국정원장 보고에 여야 모두 "브리핑 말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오늘은 백 브리핑(back briefing) 안 합니다.”
22일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 회의 도중 여야 간사인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과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이날 회의는 윤석열 정부의 북한 비핵화 로드맵 ‘담대한 구상’에 대해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맹비난한 상황에서, 북한 정보를 총괄하는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직접 현안 질의를 받아 관심이 쏠렸다.

상임위 중 비공개로 열리는 정보위는 그간 회의 직후 여야 간사가 비공식적인 ‘백 브리핑’을 통해 회의 내용을 전했는데, 이날 회의 내용은 완전히 외부에 차단됐다. 회의장을 빠져나오던 다른 정보위원들도 “간사에게 물어보라”며 일제히 입을 닫았다. 이례적인 상황에 정보위 소속 의원실 보좌관들조차 “얼마나 민감한 정보이기에 회의 전체를 비공개하냐”고 말할 정도였다.

조해진 국회 정보위원장 및 인사들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647호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가운데 회의준비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조해진 국회 정보위원장 및 인사들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647호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가운데 회의준비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無 브리핑’ 내막엔…국정원 정보 바라보는 여야의 불만

여당 간사인 유 의원은 브리핑하지 않은 이유로 “비밀회의에 백 브리핑이 있다는 게 모순적”이란 이유를 댔다. 하지만 중앙일보 취재 결과, 비공개 결정 배경엔 국정원의 보고를 둘러싼 여야 간의 알력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참석자에 따르면, 먼저 “백 브리핑을 하지 말자”고 외친 건 여당 측이었다. ‘담대한 구상’을 거칠게 비판한 ‘김여정(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담화문’을 비롯해 미사일 발사 동향 등 예민한 현안에 야당 의원들이 질의를 쏟아내자, 한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법상 정보위는 비공개가 원칙이니, 국정원 보고 내용을 브리핑하지 말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여당 입장에선 정부에 불리할 수 있는 정보가 외부로 노출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이 현안 질의에 충실한 답을 내놓지 않아 불만이 있던 야당 의원들도 결과적으로 이 제안을 수용했다. 이날 김 원장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 고발 배경 등을 묻는 민주당 측 질의에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변드릴 수 없다”며 대답을 거부했다고 한다. 회의에 참석한 한 민주당 의원은 “당연히 김여정 담화 등 여러 현안을 질의했지만, 국정원이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며 “이미 알려진 사실만 반복한 수준이어서 따로 백 브리핑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여야 언성 높아진 정보위…‘깜깜이 회의’ 이어지나

이날 정보위 회의에선 여야 의원들 간 언성이 높아진 대목도 있었다. 국민의힘 의원이 문재인 정부 당시 국정원 특수활동비 지출 내역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언론 보도를 인용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항의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김 원장의 답변 태도와 정보위 회의 진행 방식도 문제 삼았다. 정보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회의에서 “국정원장이 답하기 싫은 현안 질의에 ‘얘기할 수 없다’고만 답하면 정보위는 무력화된다”며 “결국 국정원이 원하는 내용만 갖고 브리핑하란 건데, 이런 식으로 국회를 운영하는 게 타당하냐”고 지적했다고 한다.

여야 모두 나름의 불만이 쌓이면서, 브리핑 없는 ‘깜깜이 정보위’가 계속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유상범 의원은 이날 오후 회의 정회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전까지 백 브리핑을 해온 게 옳은 건지는 생각해봐야 한다”며 “백 브리핑 자체를 계속할지 안 할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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